작년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두 개의 브런치 북을 준비해서 응모했다. 사실 내 책이 안될 걸 알면서도 도전해보고 싶어서 준비했던 거다. 브런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내 글 수준은 내가 제일 잘 알지 않나. 한참 부족하지만 그저 도전이 주는 그 에너지가 좋아서 시작했다. 사람 마음이 웃긴 게, 안될 걸 알았으면서도 막상 안되니 우울해지고 글을 쓸 마음이 사라졌다. 출판 프로젝트에 마음을 집중해서 인지,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실패감에 빠져서 인지, 한동안 글 쓸 마음이 도통 생기지 않아 몇 달을 그렇게 보냈다.
그래도 결국,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글을 쓰며 받는 그 따스한 기운이 그리웠고, 글쓰기가 주는 마음의 안정을 원했다. 두 아들의 엄마로 살고 있는 바쁜 하루 중에 오롯이 혼자 글을 쓰는 그 시간이 귀한 "나만의 시간" 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음의 정리뿐만 아니라 복잡한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게 나에겐 글쓰기이다.
그 두 권의 책을 볼 때마다 종종 응모 실패작이라는 꼬리표를 내 스스로 붙였다. 그렇게 두 권의 책은 내 마음속에 파묻고 매거진에 글을 조금씩 올렸다. 아직 다 하지 못한 여행 이야기를 적기도 하고, 시드니에서 살아가는 일상 에세이를 쓰기도 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핸드폰에 있는 브런치 앱을 열었다. 브런치 홈에 낯설지 않은 책 이름이 보인다. 웬일인가. 내 책이다. 처음 있는 일에 반신반의하며 책을 열어보니 정말 내가 쓴 게 맞다. 끝에 쓰여있는 "브런치가 추천합니다"라는 이 말이 내 가슴에 꽂힌다. 감동이 갑자기 밀려온다.
어떤 이에게는 이게 별일 아니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이 일은 크나큰 격려로 느껴진다. 실패작도 때론 실패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고. 글을 꾸준히 쓰라고, 포기하지 말고 써보라고,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해보라는 신호로 느껴져서 마음이 울컥한다. 당장 어떤 결과를 보지 못해도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가다 보면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가 있을 수도 있다고 누군가 속삭이는 것만 같다. 당장 경제적인 보상이 없어도, 출판 계약을 하지 못해도, 그냥 온전히 글쓰기 자체만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이 든다. 더 단단해지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한동안 잠잠했던 알람이 계속 울린다. "누구누구가 구독합니다"는 메시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하다. 이 부족한 글을 읽고 구독을 결정해주는 분들이 신기하기도 하다. 어쩌면 그분들에겐 별거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그 버튼 하나로 난 다시 키보드에 내 마음을 실을 힘을 얻는다. 길거리를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생각지 못한 응원의 메시지를 받은 느낌이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이에게 이런 마음을 느낄 수 있구나 싶다. 내가 실패했다고 느낀 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이 전달된다. 자꾸 누군가 따뜻한 눈길로 잘하고 있다고 무언의 미소를 건네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 이틀만의 새로 생긴 구독자수가 일 년 동안의 있던 구독자 수를 넘어섰다. 물론 숫자에 연연하는 건 아니지만, 이 숫자가 상징하는 그 마음이 감사하다. 내 글을 과연 누가 읽어줄까. 대답 없는 공허한 벽에 말하다가 갑자기 반대편에서 '똑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 글이 읽히고 있음에 심장이 뛴다. 그 이틀 동안, 내가 진짜 살아있는 느낌이다. 그 노크 소리가 내 가슴을 두드린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은 이거구나 싶은 마음이 다시금 찾아온다. 실패도 막을 수 없는 일, 육아에 지친 육신도 막을 수 없는 일, 그게 나에게는 글쓰기다. 당장 돈을 벌 수 없어도, 그저 글 쓰는 행위만으로 괜찮은 것, 그걸로 위로를 받는 하루가 쌓이다 보니, 글쓰기에 더 애정이 간다. 그래 해보자. 나를 위해, 나의 소중한 구독자분들을 위해.
호주 퍼스 여행 중 찍은 사진. Stay on paths. 실패해도, 부족해도 이 길을 걷자.
실패에도 반전은 있다. 생각해보니 지금 살고 있는 시드니도 반전 중에 하나이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는데 되지 않아서 오게 된 호주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진 몰랐다. 15년 후에도 난 여전히 이 곳에 있다. 인생의 묘미 중에 하나는, 미래를 아무리 계획해도, 우리는 미래를 모른다는 것 아닐까. 내가 아직까지 시드니에 살게 될지 20대 초반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 워킹 홀리데이에 떨어진 덕분에(?) 호주에 오게 되었고, 그 실패 하나로 내 삶은 참 많이 바뀌었다. 현재에서 당면하는 실패는 상당히 커다랗고 비참하다. 우울하고 씁쓸하며 나의 모든 걸 앗아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실패가 시간이 한참 지나 과거가 되어버리면, 실패가 결국 그리 실패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적어도 난 그랬다. 시드니에서 몸이 아파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수술한 뒤에 집에 머물러 있을 때만에도 절망감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그때 그 실패 덕분에 난 밀어두었던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었다는 사실도 잊고 지냈던 공부를 말이다. 실패는 생각보다 여러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매일도 달라질 것이다.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실패를 퍼부을 것이다. 물론 성공과 실패가 교차되겠지만 말이다. 실패를 직면했을 때, 그 실패를 온전히 실패로만 보지 않고 그 뒤에 있는 뒷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싶다. 이 실패 뒤에 있을 일들은 날 또 어떤 길로 데려다줄까. 시드니에 온 것처럼, 다시 공부를 하게 된 것처럼, 브런치에 글을 계속 쓰게 된 것처럼, 이 실패는 또 어떤 반전을 보여줄까. 그렇게 넉넉히 생각하는 날이 조금 더 많아지길 혼자 다짐하는 늦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