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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일하기싫어 Nov 02. 2024

가장 공평한 것은

선 위의  두 점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것은 무엇일까.

모든 생물이 태어나면서부터 똑같이 부여받는 혜택은 무엇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모두가 같은 양을 사용하고 있는 것.     



‘시간’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동등한 자세로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아무리 사용해도 동나지 않을 만큼 방대한 무형 자원일 것이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만큼의 길고 긴 형태.

무한히 길게 늘어선 시간의 선.     

 

그 어느 지점.

정확히 콕 집어낼 수 없지만, 그 어딘가에 내가 잠시 얹혀 시간을 나눠 사용하고 있다.

늘어선 시간의 선은 무한하게만 보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찰나만큼 짧고 유한하다.

기억은 없지만 태어나면서 ‘띡똑’ 소리와 함께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카운트 다운 되고 있었다.

    

시간은 공평하지만 대신 빠르게 지나간다.

지나간 시간은 영속성이 없기에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두 번의 기회도 없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간절함은 시간을 시계라는 작은 장치에 가뒀고 더 나아가 벗어나지 못하도록 손목에 부착하고 다니게 했다. 하지만 지나가는 시간을 결국 가둘 수는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에 그쳤다.

더 큰 시간은 넓은 종이에 숫자를 나열시켜 놓고 늘 어디서든 눈길이 닿는 벽에 잘 보이게 걸어 뒀다. 숫자로 표시된 시간 위로 동그라미와 별표를 그리면서 다가올 시간을 대비하며 두 번의 기회가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시간을 가둬 체크하고 큰 종이에 숫자를 나열시켜 놓고 다가올 시간을 대비하려 할수록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점점 줄게만 느껴진다.     


종이 위로 동그라미, 별표로 표기된 큰 시간이 늘어만 간다.

모두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어?'

'그런데….'     


내 시간을 위한 시간이 없다.

이상하다.

‘이상해.’

시간의 유한함을 알고 난 뒤부터 시간을 효율적으로 표기하며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 시간은 없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 시간이 뭔지도 모르겠다.

'내 시간에 무엇을 해야 했었지?'

'애초에 뭘 하고 싶었던 거야?'

'남는 시간이 있긴 한 거야?'

'시간이 없어.'

'시간이 부족해.'

'남은 시간은 얼마 큼인 거지?'

'두려워. 지금 시간은 언제인 거야?'   

  


'째깍째깍 째깍째깍'



배려심 없는 시간을 가둬 두고자 만든 손목에 달린 시계는 애초에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에 시계 속 시간은 잠시라도 멈춰주지 않고 흘러간다.          

다급한 질문에 답도 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이 스치듯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끊임없이 과거, 과거, 과거, 과거의 찌꺼기들을 만들며 지나간 흔적을 가득히 남겨 두고 지나간다.


오히려 시간의 속도는 예전보다 더 빠르게 바뀌었다.

속도를 내며 다가오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의 끝점.

줄어가는 시간이 얼마 남은지도 모른 채 과거에 연연하는 데 여념이 없다.  

   

지나간 시간을 추억 카테고리 속 테이프들로 정리해 두었다. 빛바랜 회상이란 영사기를 통해 투영된 지나간 시간을 흰 천장에 비춰 본다.

영사기로 투과되는 밝은 빛 때문인지 나의 과거, 지난 시간, 추억 테이프 속 모습, 장면들이 찬란하게만 보인다. 스치듯 지나간 추억영화의 한 줄 평은 아름다웠다.

삶이란 아름다웠던가.

밝게 비추고 있는 줄 모른 채, 존재 자체가 빛이 나는 존재였다는 것을 모른 채, 왜 밝은 빛을 찾아서 한없이 헤매는 어둠 속 나방 같이 살아왔을까.

새까만 하늘에서의 애처로운 날갯짓이 왜 의미 없다고만 생각했을까, 정작 내가 반딧불이처럼 짙푸른 녹황색 빚을 내며 훨훨 날고 있었다는 것을 왜 그땐 몰랐을까.     


      

'나에게 시간이 없다.'          



'....'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것.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주어지고 지금 이 순간에도 사용되고 있던 것.

태어날 때부터 손에 쥐어진 어두운 혜택.

태어난 순간, 밝은 운명 빛에 가려져 몰랐던 시간의 이면.  








                                                               

'죽음'                       



  

시간이 내게 준 유한함의 마지막 시간 끝점을 동그라미와 별표로 표시해 뒀다.     

종이에 기록되었던 어떤 시간보다 잊지 않기 위해, 상기시키기 위해서 표기해 뒀던 나의 죽음.  

        

태어날 때 차트에 시작점이 기록되듯 시간의 마침표 또한 차트에 기록된다. 공간을 채웠던 울음소리는 내가 아닌 주변인으로,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내 시간의 끝을 당분간 기념해 줄 것이다.

알지 못했던 시간의 끝점은 예고 없이 불현듯 디데이를 맞이했다.     



난 늘어선 시간의 선 위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잠깐 시간을 사용했었고 그 시간이 허락된 끄트머리.

죽음에 이르렀다.     


늘 후회하며 과거에 얽매이며 쫓기듯 시간 선 위를 내달려 왔지만 정작 끝점을 지나치고 보니

평등하게 나누어진 그것으로부터 내가 시작되었고 모두가 그러했듯이 나 또한 공평하게 끝을 맺었다.

         

시간과 죽음은 동일 선상에 놓인 두 점일 뿐.     


모든 건 공평했고 동등하게만 흘러갔다.      


              


공평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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