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다 품고 이해하듯 하더니
속 좁고 매정하기 짝이 없네
지난 주말 언니가 나와 통화 후 보낸 메시지다.
만약 당신이 이 메시지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언니의 메시지에 내가 의문을 품은 부분은 '속 좁고 매정함'이 아니라 '세상만사 다 품고 이해'였다.
내가 그랬나? 언제 그랬지?
결혼 후, 아니 취업 후 가까이 있으면서도 언니랑 자주 만나고 대화할 시간은 없었다. 최근 내 마음상태가 바뀌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언니는 어떤 부분에서 내가 세상만사 다 품은 것처럼 느꼈을까? 내가 그렇게 모순적인 삶을 살았나? 그렇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대해 잠시 괴로웠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궁금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면 단단히 오해한 것이다.
난 세상만사 다 품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예전보다는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지만 이해한다고 다 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리를 두게 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예전의 나라면 속 좁고 매정하다는 말에 변명하고 반박했을 것이다. 내가 왜 그랬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 내가 진짜 그럴지도 모르지.' 받아들였다. 내가 왜 그렇게 말을 하고 짜증이 났는지 그 순간엔 알지 못한다. 언니 감정에 돌을 던진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언니의 말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불편하게 생각했던 지점을 언니가 건드려서 나온 반응이었던 것일까?
그러나 거기에 대해선 이미 다 결론이 나고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들추어내니
"그래서 어쩌라고? 말하고 싶은 게 뭔데? 원하는 게 뭔데?"
바로 내뱉어버렸다. 언니가 빙 둘러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 그 시간이 싫었다.
감정을 풀지 못한 채 전화를 끊은 언니는 화나고 속상했겠지만, 전화를 끊고 나는 세 시간이 넘게 아주 깊이 잘 자고 일어났다. 언니 전화를 받기 전부터 자려고 했었지만 낮잠 치고 너무나 잘 자서 놀랄 정도였다.
자고 일어나 언니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무슨 말을 할까 고민했다.
'세상만사 다 품고 이해하며 사는 건 아니라고. 여전히 나도 주변의 상황에 삐죽 가시가 돋기도 한다고. 단지 예전처럼 내 감정을 스스로 이기지 못해서 가슴을 치거나 펑펑 울거나 힘들어하진 않는다고. 감정이 요동칠 때 나의 행동과 말, 감정을 떨어져서 볼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 언젠가 말할 날이 오겠지. 표면 위로 감정이 소용돌이 치면 치는 대로 받아들이고, 깊은 바닷속 고요함 같은 평정심 되찾기를 반복한다.
감정은 파도처럼 수시로 밀려오고 떠나기를 반복하며 나를 반응하게 만들지만
모두에게 존재하고 있는 내면의 깊은 고요함을 잊지는 않는다.
내가 언니에게 세상만사 다 품고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평정심 되찾기를 잘하기 때문이었을까?
결국 다음날 언니가 전화를 해서야 그 사건에 대해 오해를 풀고 화해를 했다. 하지만 아직 세상만사 다 품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해 글을 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속 좁은 나는 세상만사 다 품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내가 품고자 한들 다 품을 수는 있을까? 그러기 전에 병이 날지도 모른다. 오히려 거리를 두고 싶다. 아무렇게나 놓인 자연이 보여주는 조화로움이나 아등바등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 그냥 그렇게 바라보고 싶다. 때때로 안타까움이나 답답함에 타인의 삶에 개입하게 되더라도 그것도 한순간이다. 서로 주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없다.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오거나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그냥 바라보고 기다릴 뿐이다.
누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품는다기보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
손에 손을 맞잡고 하나의 에너지로 연결된다.
언니로부터 그런 메시지를 받게 된 사건을 돌아보니,
타인의 인정여부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운 가족에게 있어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것이 내가 인정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을 온전히 인정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도 알았다. 상대가 내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오히려 그들이 나를 잘 알지 못한다 생각하고 불만이 생겼다. 사실은 그 반대인데 말이다.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의 행동이나 말을 내가 그들에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관찰해야겠다.
매우 무의식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안에 투영된 모습을 통해 자신의 에고를 경험한다. 상대방 안의 무엇인가에 반응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같은 것이 있기 때문임을, 그리고 때로는 자신 안에만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자기 자신의 에고가 보인다. 이 단계에 오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것을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 에크하르트 툴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p.244
끌어당김의 법칙을 식상할 정도로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오늘은 어떤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가요?
지금 경험하는 것들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닌지 잘 살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