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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쁨작가 마드쏭 Sep 03. 2023

나에겐 큰아버지가 없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 상 

"큰아버지..." 

"......"

"송아, 네가 큰아버지 불렀어?" 

 옆에 앉은 작은어머니가 사촌동생에게 묻는 질문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 질문에 내가 잘못 부른 것임을 깨달았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어졌다. 큰아버지를 부른 건 사촌동생이 아니라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도로엔 차들이 넘쳐나는데 우리 집엔 자동차 한 대 없었다. 그래서 성묘 갈 때, 친척들과 여행 갈 때면 우리 식구는 늘 친척 어른의 차를 얻어 탔다. 그날도 여름방학에 친척들과 계곡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차 뒷좌석에 앉아 작은아버지께 뭔가를 여쭤보려고 했는데 음악소리 때문인지, "작은아버지"라고 부르던 내 목소리가 작았는지 대답이 없으셨다. 


'작은아버지가 아니라 큰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맞나..? 아버지보다 동생이지만 첫째 작은아버지면 큰아버지인가?' 


 아직 어른 무릎 위에 앉아갈 정도로 어렸던 나는 '삼촌'이라고 부르다 호칭을 바꾸려니 무엇이 맞는지 어려웠다. 호칭이 어렵기도 했지만 작은아버지를 큰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아버지 존재감이 위축되어 있었다. 



 삼 형제 중 첫째였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네 아들 중 장남이셨던 나의 아버지. 남자 형제만 있는 집안에 딸이 환영받을 법도 한데 할아버지는 어머니께 "애들이 아들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아쉬울 것 없으셨던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는 늘 부족한 자식이었다. 거기에 아들 하나 없이 딸 둘만 낳았으니 더 챙겨줄 필요가 없으셨던 듯하다. 할아버지의 관심과 지원은 장남인 아버지를 제쳐두고 모두 작은 아버지들에게 돌아갔다.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친척집에 있을 때 늘 나를 눈치 보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실 때마다 저 말이 어떤 식으로 외면당할지 신경 쓰였고 나 또한 어른들께 말 한마디 하는 게 조심스러웠다. 다행스러운 건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을 제외하곤 종조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의 사촌형제들과 나의 외가에서 만큼은 아버지를 존중해 주셨다. 



 할아버지에겐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셨지만 나에겐 어릴 적 친구 같은 아버지셨다. 언니와는 네 살 터울이라 내가 초등학생 때 언니는 한창 공부해야 할 사춘기 중학생이었다. 주택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왈가닥 언니와는 다르게, 또래 친구들을 많이 알기 어려운 아파트 단지에서 내성적이었던 나는 휴일이면 아버지가 내 친구였다. 여자아이들에게 흔한 고무줄놀이는 못했지만 아버지와 함께 했던 공기놀이는 자신 있었다. 겁이 많아 자전거를 잘 타지 못했지만 처음 자전거를 가르쳐주신 것도 아버지셨다. 한창 공부할 시기에 독서실에서 늦게 올 때면 독서실 앞까지 마중 나와 어두운 밤길을 지켜주신 것도 아버지셨다. 아들만 둘 있는 이웃 아주머니가 자기 아들과 어린 나를 바꾸자고 농담스레 했을 말을 듣고 노발대발하셨다는 아버지다. 남들보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부족했던 아버지셨지만 나에겐 아낌없이 사랑을 주셨다. 




 아버지가 나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지지는 분명히 느꼈지만, 정작 아버지 자신은 충분한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하셨다. 그래서일까?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는, 모래 위의 성처럼 불안했다.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 쓰여 말도 많이 하지 않았다. 친척 집에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책장에 꽂힌 책 읽는 게 더 편하고 재밌었다. 그래서 난 옆에 있어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아이였다. 



 어쩌면 아버지가 받지 못하셨던 사랑과 인정을 다 받아내기 위해 그동안 내 삶의 선택은 타인의 인정 여부였는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그럴싸한 직업을 가지고 배우자를 만나 자식들을 보란 듯이 키워내고 싶었을지도. 어머니가 악착같이 돈을 모아 언니와 나를 학자금 대출 한번 없이 대학교를 졸업시켜 주신 것도 그런 마음이셨을 거다. 남들 못지않게 잘 살아라고 말이다. 


 마드쏭, 잘 살고 있니? 

부모님이 받으셔야 할 몫까지 남들 인정받으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니? 


 작년까진 남의 인정여부가 선택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었다. 타인의 인졍여부가 기준일 때는 어떤 선택도 마음이 불안했다. 하지만 요즘, 남의 인정보다 나의 원함에 소리를 기울이니 마음은 편안해지고 즐거워졌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행복하신가요?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봐요. 

'마음아, 넌 어떠니?' 



전 이제 남 눈치 보지 않고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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