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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말스런 여자 Dec 26. 2021

못다 부른 노래

못다 부른 노래

21.12. 26일 지금 낮 기온은 영하 10도다. 갑자기 훅 떨어진 어제에 이어지는 혹독한 추위다.

어젠 크리스마스를 분가하여 사는 아들과 보내기 위해 근처 가락 수산 시장에 들렀더니, 매서운 추위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장어집주인은 낮에는 그나마 괜찮지만 밤은 어떻겠냐고. 24시간 문을 여는 건 충청도 쪽에서 밤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란다. 얼음덩이들이 나뒹굴고, 살얼음판인 길 한복판에서 장사하는 노점상의 나이 든 여인들의 억척스러운 삶은 추위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다.


늘 하루의 일상을 주고받는 지인은 베란다에 화초들이 하룻밤 사이에 얼어버렸단다. 갑자기 닥친 한파의 기온 변화에 화초들이 적응할 수 없었나 보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한 계절이 지나고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오는 순환의 흔적들의 삶들이 내 인생에도 쌓이고 쌓였다. 앞으로도 갑자기 닥친 한파에 버텨내지 못한 화초들처럼 한 치 앞을 모르는 채,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걸어가겠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되짚어보면, 참 아프고 힘들었던 감정들이 먼저 알아달라는 듯 가슴을 헤치고 올라온다.

아직도 난 저 아름답게 수놓아진 화폭의 뒷면에는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있는 것처럼, 내 마음 저 밑바닥에는 잊히고 헤아려주지 못한 온갖 감정들이 가라앉아 있나 보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간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살아 있어, 지워지지 않고 마음에 떠오르는 그 흔적을 느껴보는 그 자체가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그것이 내 인생이라는 도화지에 그려진 내 내면의 풍경들일 테니. 아무것도 그려진 것 없는 텅 빔보다는, 나름대로 발을 내딛고 걸어온 그 자체로 의미는 충분할 터이다. 그리고 그 지나온 흔적들이 발판이 되어 미쳐 못다 부른 노래를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인생이라는 퍼즐판에 수도 없이 많은 시행착오의 퍼즐 조각들을 짜 맞춰 왔다. 이제는 그 판들이 얼추 맞춰지고, 윤곽도 드러나고, 남은 조각들도 제 자리에 끼워 넣기가 한결 편해진 인생의 시기이지 않을까 한다.


여전히 남은 퍼즐 조각들을 끼워 넣어야 하듯이, 못다 부른 노래를 부르는  아름다운 날들이 되도록  예기치 않은 한파를 내다보는 안목도, 버텨내는 맷집도 필요하겠지만. 그저 깜짝 선물처럼 받아보는 꽃 피는 봄날이라는 것도 있기에 살아볼 만하다고 나를 위로해보는 올해 12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백산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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