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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말스런 여자 Feb 17. 2024

2월의 단상

봄은 오나?

그럼, 언제 한 번이라도 거른 적 있나, 왜 그렇게 봄은 기다릴까?

봄이 오면 뭘 어쩌겠다고. '아니, 봄은 희망이고, 치유고, 소망이고, 추운 겨울을 이겨낸 거고...  어쩌고 저쩌고 말할 필요도 없이 한 마디로 꽃피는 봄날이라는 거다.' 말만으로도 좋은 봄날, 설레는 봄날이라는 거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여, 우린 봄날을 기다리지만 그 뒤에는 곧바로 푹푹 찌는 여름은 안 오나?

오기가 바쁘게 내빼는 봄날이  가면, 구슬땀 뻘뻘 흘리며 땡볕에서 일해야 하는 날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건만. 그러는 세월 속에, 고구마 줄기를 확 잡아당기면 주렁주렁 달린 고구마가 줄줄이 사탕처럼 뽑혀 올라오고, 온갖 곡식과 과수들의 풍성한 계절인 가을도 찾아오고.


또 엄동설한에는 뜨끈뜨끈한 구들장 밑에 두 다리 뻗고 띵까띵까 하며 여유가 있는 삶도 있을 거고. 

어린 시절에 그저 재밌게만 읽었던 개미와 베짱이.

어쩌다 보니 더러는  춥고 배고픈 베짱이처럼 안과밖이 덜덜 떨리는 세상살이를 만나기도 하고.


언제부터인지, 짧은 2월 속에 봄이 웅크리고 있음을 느낀다. 머리가 아닌, 정보도 아닌, 일기예보도 아닌. 지금까지 살아온 내 몸의 감각이 예민한 촉수처럼 알아차린다. 세월이 갈수록 '산다는 게 참 잘 살았네 하는 것보다 사는 게 참 허당이네.'라는 아픔도 알아챈.


삶은 감사해야 한다, 사는 게 적극적이어야 한다,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늘 웃어라, 웃으면 복이 온다. 바꿀 수 없으면 상황을 받아들여라, 현재는 선물이다 등등. 온갖 좋은 말이나 문장들은 돈 지불할 필요도 없이, 귀에 못 박힐 틈도 없이, 온갖 메시지로, 동영상으로 차고도 넘친다. 이 세상에 차고도 넘친 것 중에 하나가 온갖 군데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파고드는  메시지와 홍보물이나 영상물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도 지금 그 한몫을 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달보다 짧은 2월은, 이 달도 벌써 남은 날이  지나간 날보다 더 짧아졌다.

내 삶의 남은 날들처럼. 이젠 황혼 녘처럼 짧은 시간과 온갖 미사여구의 넘치는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사는 날들이 엄마 품에 안겨 젖 뗀 아가처럼 편안하지는  않다.  산 다는 건 늘 문제 속에 있기 때문일까?  내가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는 명답도 정답도 없을 터. 내 몸이 그리 반응하는 걸 어쩌겠는가. 내 머리가 깨닫기도 전에, 내 인지 기능이 이건 이러이러하니, 저건 저러저러해야 한다는 여과과정으로 걸러질 틈도 없이, 몸이 먼저 그렇게 체득해 버린 건 아닌지.


겨울과 봄 사이에서, 지금  창밖에 보이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태반이 두꺼운 겨울 외투 차림이다. 몸은 이제 그 두꺼운 옷을 벗어버려야 한다는 걸 안다. 내 몸뚱이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걸 한 발 앞서 가며,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보았던 춥고 배고프고 어설프기만 한 베짱이처럼 버티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몸은 봄 또다시 오고 있음을 그 무엇보다 먼저  감지하고 있다. 나의 필요와 결핍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허당인 대가리만 믿을 게 아니다.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말 없는 장승처럼 70 개수가 버텨낸 이 늙은 몸뚱이의 저력이 결코 만만치 않으니, 2월처럼 짧은 남은 生들도 살아내겠지.


   1월의 단상


일 년 12달 중에 벌써 한 달을 살았네. 난 한 달이 굴러갔는지, 기어갔는지 모르게 가버린 시간이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아봐도 이 생이 끝날 즈음에도 그저 잃어버린 시간 같은 느낌일까!

내가 살고도 내가 살지 않은 것 같은 시간.

그건 왜지?

산다는 건, 내가 내 맘대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일까?  막히는 교통체증은 상황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삶도 그런 건지.

꽉 막힌 정체에 투덜대 보니, 그건 어린아이 같은 투정일 뿐. 어른은 하릴없이 그저 견딜 뿐이다.

그러니 묵묵히 1월을 마무리하자. 내일은 짧은 2월이 당당하게 다가온다. 언제나 군말 없이 365일을 짜 맞추는 건 다른 달보다 모자란 2월이다.


오늘따라 바람 한 점 없는 햇살은 유난히 따듯하다. 차가웠던 한 달의 날들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위대한 자연은 값도 없이, 이유도 없이 침묵으로 전한다. 햇살은 스스로 햇살을 비추듯이, 가슴은 스스로 가슴을 지켜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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