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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 Mar 07. 2022

식물 기르기

살아있는 것이 성장하는 것

작년에 친구가 식물 작업실을 오픈했다. 원래 꽃을 좋아해서 꽃꽂이를 오래 배웠는데 절화를 다루는 것이 언젠가부터 편치 않아졌다고 했다. 친구는 화분에 심어서 기를 수 있는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본업을 하면서 식물을 공부하고 흙, 화분 등을 연구했다. 작업실을 갖고 싶다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코로나로 닥친 위기를 기회 삼아 식물들을 잔뜩 기르고 판매도 하는 작업실을 구했다.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존경하는 마음,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그나마 키우기 수월하다는 청산호 하나를 주문했다. 나는 식물을 샀다 하면 얼마 못가 죽이는 사람이라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순전히 친구의 용기 있는 도전을 축하하는 의미로 구매한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일 년이 지나도 청산호가 안 죽고 잘 자랐다. 아주 신나게 이리저리 줄기를 뻗쳤다.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와 최근 모습을 비교해보면 많이 다르다. 원래는 줄기는 묶어두지 않는데 지나갈 때마다 자꾸 부딪쳐서 줄기가 한번 끊어진 후로 나름 조치를 취해준 것이다.

나는 잘 자라는 청산호로 용기를 얻어 추가로 식물을 더 들이기로 결심했다. 친구에게 청산호와 비슷한 환경(햇빛이 잘 들고 환기가 용이한 편이지만 건조한 내 방)이 필요하고 비교적 난이도가 높지 않은 식물을 추천받았다. 상담 끝에 친구네 작업실에서 세로그라피카 하나를 주문했다. 친구는 나를 식물 도매시장에 데리고 가줬다. 거기에서 또 다른 행잉플랜트인 틸란드시아 이오난사를 하나 더 샀고 친구에게 백묘국을 선물 받았다. 그것이 작년 11월. 백묘국은 집에 데려오자마자 가지고 있던 돌로 된 화분에 분갈이를 해주었다. 추운 날씨에도 적응을 잘한다고 했는데 창가에 두니 가여울 만큼 잎이 축 쳐져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지금은 응애가 자꾸 생기는 것 말고는 잘 자란다. 가끔 소주로 잎을 닦아 주는 데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 그래도 조금 덜 생긴다.

내가 식물 키우는  재능이 있었던가. 눈을 뜨면 식물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올해 설에 나는 베고니아 소요카제, 아스파라거스, 스피랄리스를 추가로 들였다. 물론 친구네 작업실에서 주문한 것이다. 짧지 않은 대화를 통해 그래도 내가  키워볼  있겠다 하는 식물들을 골랐다. 베고니아는 잎의 도트무늬가 아주 귀엽다.  방이 마음에 드는지 매끄러운 연녹색의 쭈굴쭈굴한  이파리들을 계속해서 피우는가 하면 꽃도 폈다. 꽃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열리는데, 반짝반짝한 연분홍색이다. 꽃잎  개가 위아래로 불룩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꽃이 열리면  안에 아주 작은 꽃잎  개가  있고 샛노란 수술이 보인다. 아스파라거스는 코케다마 이끼볼로 주문했다. 나는 평화활동가 친구가 만들어준 기다란 도자기 접시에 아스파라거스를 올려두고 키우기로 했다. 하나의 작은  같은 모양을  채로 줄기가 길게 하나  뻗어 있는 아스파라거스 수형과 녹갈색 도자기가  어울렸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스피랄리스는 햇빛을 받으면 기다란  끝이 뽀글뽀글해진다. 아프리카 식물인데 여름엔 잠을 자서 잎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내가 키우게 된 식물은 총 7개나 된다. 여기에 스티로폼 박스 텃밭도 있다. 작년에 서울 식물원에 갔다가 메꼬지상추 토종씨앗을 받아왔는데 그걸 심어야 하는 3월이 온 것이다. 3월이 되자마자 애인이랑 종로 5가의 종묘상 거리에 갔다. 흙을 사면서 부추, 루꼴라, 딜 씨앗도 샀다. 집에 와서 우리 집 강아지랑 동네 재활용장 가서 스티로폼 박스를 주워와 박스 바닥에 구멍을 뚫어 흙을 붓고 씨앗을 뿌렸다. 지금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상추, 딜 새싹이 조금씩 올라왔다. 부추, 루꼴라는 아직 소식이 없다.

청산호의 파리 날개 같은 작은 이파리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단단한 줄기와 어울리지 않아서 웃기고 귀엽다. 최근엔 제일 긴 줄기 끝에 알통 자랑하는 것 같은 팔이 하나 더 생겼는데 그것도 매일 관찰하고 있다.  아스파라거스는 새로운 줄기가 위로 슬금슬금 올라왔다가 옆으로 쑤욱 길어져서는 가시 같은 잎을 짜잔 내는데 그 스피드가 놀랍다. 세로그라피카와 틸란드시아는 더듬이 같은 새 잎이 삐죽삐죽 튀어나온다. 스피랄리스는 키도 많이 컸지만 끝이 동그랗게 말리기 시작했다.


식물들은 어쩜 저렇게 조용히 자기 방식대로 꾸준히 잘 자라는지. 사실 죽이지만 말자하고 시작했는데 계속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놀랍다. 나는 정체된 상태라는 생각이 들면 불안해져서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이것저것 항상 하는데 내 식물들을 보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발전하는 것 같다. 살아 있으면서 환경에 적응하고 주어진 상황 안에서 취할 수 있는 것들을 취하며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가끔 뭐가 안 맞아서 잎이 갈변하기도 하고 벌레의 습격을 받기도 하고 햇빛을 한쪽으로만 받아서 잎이 뜬금없는 모양새로 치우져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살아있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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