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대 사람
수염을 기른 한 인물이 4분의 3 각도 정면상으로 서있다. 남자는 가볍고 빳빳해 보이는 깃이 높은 흰 셔츠 위에 기하학적 패턴의 상의를 입고 드레이프 디자인의 겉옷을 입었다. 셔츠를 빼고는 모든 의상이 검정에 가깝다. 깨끗한 신발, 온화한 인상, 반들반들 윤기도는 콧방울로 미루어보건대 하루 종일 험한 육체노동을 하는 이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특정 지위나 권위를 드러내는 번쩍번쩍한 요소가 눈에 띄는 것도 아니다. 화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눈에는 호기심 어린 빛이 돈다. 인물 뒤로는 회갈색 배경이 깔렸다. 남자의 오른편 위쪽에서 빛이 들어와 그를 비추고 발 밑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림자로 눈을 따라가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 벽과 바닥의 경계가 없다. 결국 강조되는 것은 인물이다. 인물의 이름은 파블로 데 바야돌리드. 직업은 궁정광대이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바로크 미술의 대표화가이자, 펠리페 4세를 섬긴 스페인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이다. 그는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로마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는 영광을 누릴 만큼 명성도 자자했다. 초상화에 능했던 벨라스케스는 왕과 그의 가족들 뿐만 아니라 궁정에서 일하는 광대들의 모습도 화폭에 담았다.
벨라스케스는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을 때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을 그리기도 했다. 바로크 이전 르네상스 시대에는 높은 신분의 초상화를 그릴 때 실제보다 우아하거나 위엄 있게 미화되어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벨라스케스가 그린 이노센트 10세의 모습을 보면 자애로운 하나님의 대리인이라기보다는 까칠하고 욕심 많은 노인 같다. 교황이 앉은 의자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블랙홀처럼 표현되어 있으며 그림에서 가장 밝은 부분은 고생 한번 안 해봤을 것 같은 그의 매끄러운 손과 레이스가 달린 흰 옷뿐이다.
아프리카 출신의 스페인인이자 벨라스케스의 노예 조수였던 후안 데 파레야의 초상이 오히려 자신만만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다. 이 그림 안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부분은 그의 얼굴이다. 파블로의 초상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배경은 없다. 이 그림은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과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벨라스케스의 초상화 전성기라고 하는 1650년 전후에 그려졌다. 벨라스케스는 세비야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마드리드로 거처를 옮겼는데, 후안 데 파레야는 세비야 때부터 함께 했던 이였다. 후안은 벨라스케스의 일을 도우며 화가로서의 기질을 키워갔다. 당시 스페인 법으로 노예가 예술가로 일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고 붓을 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그의 재능을 알아봐 주었고 1654년에는 노예라는 신분으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후안은 자유민이 되어 마드리드에서 화가로 여생을 살았다. 후안 데 파레야의 작품은 현재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벨라스케스의 초상화는 과시적이지도 장식적이지도 않다. 그는 누군가를 그릴 때 자신의 눈에 비친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그린 듯하다. 내면까지도. 초상화 속 얼굴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눈을 마주치고 그림 속 인물과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인물 각각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가 잘 표현되어 있어서 목소리나 말투까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17세기 인물들이지만 감정과 공감을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 광대, 성직자, 노예로서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