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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갈에누운백구 Mar 22. 2022

<하하하> 언제나 웃을 수 있는 사람

 


누군가에겐 동굴 같은 불길한 집이 누군가에겐 운을 틔워주는 안식처가 된다. 누구에겐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가 누구에겐 분수를 모르는 허세로 들린다. 똑같은 것을 보지만 느끼는 것은 모두 다른 다중의 세계. 그 차이가 술자리를 풍성하게 만든다. 그 괴리 속에 우울과 비극이 있더라도 지금 마시는 막걸리 한잔이 즐거웠으므로 그거면 됐다.


내레이터로 등장하는 두 남자, 문경과 중식은 통영에서 겪은 각자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사실 상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상대는 자신이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술안주 삼아 웃는다. 자신의 엄마 이야기 또한 “그 엄마 참 자식 많네”라며 술안주로 털어 넣는 이 기이한 술자리에서 이들의 삶은 술자리의 행복을 주었기에 의미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는가? 자신의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해맑게 떠들고 있는 이 두 사람을 보면 바보 같은 듯 귀엽기까지 하다. 이들이 극 중의 여자들에게 계속해서 덧붙이는 “귀엽다”는 말에 ‘세상을 잘 모른다’는 속 뜻이 들어있다면 우리는 이 두 남자에게 꽤나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이 두 남자를 지켜보며 우리는 어느새 이들을 안주로 삼는 관객석에 즐겁게 참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관전하는 우리의 위치는 멋 모르고 웃고 있는 두 사람의 상황만큼이나 위태롭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유준상과 김상중 배우가 등장해 초롱초롱한 눈으로 질문의 답을 기다리는 관객을 마주 본다면, 우리의 관계는 또다시 역전될 것이다.


영화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기에 본질을 향해 더 깊이 들어가 보자. 내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야기의 주연이자 조연으로 1인 2역을 맡고 있지만 그 사실을 자신은 모르고 있는 배우 중의 배우다.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주연 역을 충실히 수행했다가 상대의 이야기에서 조연 역할을 맡을 차례가 오면 이전의 기억을 씻은 듯이 잊고 언제나부터 그 사람이었던 것처럼 다시 연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람이 자신의 이중성을 깨닫고 배역 이전의 배역을 기억해낸다면 그때부터 연극엔 어색한 긴장이 감돌 것이다. <하하하>에서라면 문경의 이야기에 나오는 위선적인 인물의 정체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중식이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두 남자는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애써 하하하 웃으며 술잔을 부딪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술안주 삼아 관객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삶의 베테랑들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하하하>에서 유일하게 1인 1역을 맡고 있는 한 사람, 집게를 들고 여자 친구를 위협하는 부둣가의 거지는 삶을 참 모르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이야기에서도 변하지 않고 자신의 한 가지 배역에만 집중할 수 있는 좁은 역량을 가진 이 사람은 그렇기에 현실이라는 연극에서 배제되어 있다.


영화의 배경이 술자리라는 사실은 우리가  모든 가정을 상상해볼  있는 전제가 된다. 만약  자리가 술자리가 아니라 경찰서 취조실이었다면, 불륜이 고발된 법정이었다면   남자는 당장 2역에서 벗어나 현실을 마주했을 것이다. “ 사람의 증언   사람은 저가 맞지만 그중엔 제가  행동이 아닌 부분도 있습니다.....” 이야기에 진실을 향한 부연설명이 주저리주저리 많아지게 되는 순간 술자리의 즐거움은 단념해야 한다. 그리고 법정에서 겉과 속이 다른 2역을 연기했음을 실토하곤 우울증 약과 함께 도덕의 처분을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또한 한층 진지해진 눈으로 영화를 관람하고 있을 것이다. 잊지 말아야  것은 취조실이 아니라 즐거운 술자리에서도 우울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점에서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서 홍상수의 실제 삶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영화 감상의  부분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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