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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영 Aug 08. 2022

유익한 세상 만들기

미안한 마음에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우물쭈물했다.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강박적으로 싫어하는데 어쩌자고 이 선량한 사람을 자꾸 성가시게 하는걸까. 행여 나를 진상이라고 생각할까봐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불필요하게 서론만 길어졌다. 아차 싶었다. 오히려 귀한 시간을 뺐는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용건만 간단히 이야기 하겠노라고 구구절절 늘어놓은 말들을 애써 가다듬는데 이 사람은 세상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외려 나를 안심시킨다.

괜찮아요, 번거로울 거 없어요.
얼마든지 마음을 바꾸실 수 있어요


그는 시종일관 그래왔다. 발레스트레칭 강좌를 듣고 싶다며 처음 문의를 했을 때부터 친절하게 상담해주었고 마감이 된 시간에 자리가 나면 꼭 연락해달라는 나의 부탁을 결코 가벼이 넘기지 않았다. 또한 사물함 이용을 보다 편리하게 하고 싶어하는 사사로운 나의 사정에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뜨랬다.


어렵게 수강신청을 해놓고 이제 와서 환불을 하겠다니. 자본주의 세상의 우리들은 이해타산적 존재이며 경제적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동기를 유발시킬 수 있다. 제 아무리 선한 의도를 지녔던 사람도 막상 자기에게 득이 될 것이 없으면 정색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신의 수고로움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다니. 사려깊은 말 한 마디에 그 직원의 됨됨이가 느껴졌다. 나도 많은 민원인을 상대하다보니 실무 현장에서 배려를 실천하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폭염에 연일 장대비가 퍼붓는 터라 환불을 받으러 문화센터를 직접 방문해야 하는 것이 영 성가셨는데 꿉꿉했던 기분이 보송보송해졌다.


이후 며칠동안 일을 하면서 그를 떠올렸다. 내게 좋은 귀감이 되어 유사한 상황에서 나도 민원인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는 응당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옳다. 나는 시간을 내어 문화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 진심어린 칭찬글을 남겼다. 칭찬글의 주인공은 어쩔줄 몰라하며 상기된 목소리로 연락이 왔다. 덕분에 직장에서 신바람이 난다며 본인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인사한다. 덩달아 나도 즐겁다. 사실 칭찬글을 남기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가능하면 그때그때 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편이라 내가 가진 재능이 그 어느때보다 빛을 발하는 것 같아 뿌뜻하다.


한때는 내가 받은 부당한 대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에만 열을 올렸었다. 학생 신분으로는 종종 호갱노릇을 하다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려고 이러나 싶어 자각했던 것 같다. '어리버리하게 보이면 당한다'를 모토로 삼으며 야무지게 요목조목 따지곤 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똑부러지게 사는 건 줄 알았다. 조금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마인드로 철저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니 어느새 나는 타인의 실수는 한 점 용납하지 않는 야박한 사람이 되고 있었다. 모든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맞춘 사회는 없다. 살다보면 다소 불편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때마다 건건이 내가 겪은 불쾌함과 고충을 토로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사회 초년생 때 업무에 익숙하지 않아 이중결제를 해서 고객을 두 번 걸음하게 만들었는데 그 분은 경험이 부족해서 그럴 수 있다며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셨다. 사회인으로 호되게 신고식을 치르나보다 하며 끼니도 거르고 잔뜩 위축되어있다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을 만나고 갱생을 맛보았다. 나이가 들수록 관대한 포옹력을 발휘했으면 한다. 그리고 지적질보다는 칭찬질을 더 많이 하겠다.


기시미 이치로의 <마흔에게>라는 책에서 저자는 중년은 '생산성'보다는 '공헌감'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내가 세상에 공헌할 수 있고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느낌만으로 우리는 죽음의 심연에서 스스로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악플보다는 선플이 많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나의 유익한 글쓰기로 누군가의 잠재력을 발견해주고 행복을 선순환시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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