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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소영 Nov 07. 2022

꽃에 대한 사유

마음에 드는 꽃집이 생겼다. 출장가는 길 강남역 신분당선 방향 지하상가를 지나치다가 발견하게 되었는데 어찌나 각양각색의 꽃들이 소담하게 피어있는지 한 눈에 반해버렸다. 인근에 꽃집이 여럿 있지만 이 집 꽃들은 유난히 탐스럽다. 바쁜 와중에도 한동안 넋을 놓고 꽃을 감상했드랬다.


누군가 내게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꽃다발 한아름이다. 어릴때는 비싸기만 하고 딱히 쓸데도 없으며 남는 것이 하나 없는 꽃 따위를 왜 사는걸까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주위에 연인들이 알콩달콩 데이트하는 모습을 그닥 부러워하는 편은 아닌데도 이따끔 애인에게 꽃다발을 받고 행복해하는 걸 보면 솔직히 샘이 나기도 한다. 결혼 후에도 신랑이 선물한 꽃들로 카톡 프로필 사진을 장식하는 지인도 있다. 사랑받는 여자의 표본인거 같아 내 눈에는 마냥 좋아보이더라. 사람사는거 다 똑같고 그들이 사는 세상도 가까이서 보면 현실멜로이겠지만 계절이 바뀔때마다 아내를 위해 꽃을 챙기는 남자는 분명 마음에 여유가 있고 따뜻한 사람일꺼다. 특별할게 하나 없는 날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받는 꽃이 단연 최고라는 걸 아는 사람이니까.


예전에 다니던 직장은 1분기가 시즌이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연일 야근을 밥 먹듯이 했었다. 피곤에 절어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있는데 본사에서 방문 온 팀장님이 불쑥 프리지아 한 다발을 품에 안겨주는게 아닌가.

"일하느라 봄이 온 것도 몰랐죠?"

그때 처음 알았다. 꽃 한다발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만큼 퍽퍽하고 건조하던 내 일상이 단번에 물기를 흠뻑 머금어 촉촉해졌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할 일은 투성이었으나 사무실을 가득 메운 향긋한 꽃향기가 지독한 일복에 시달리던 나를 살렸다. 내가 꽃 중에 프리지아를 가장 좋아하게 된 연유도 그 때문이다. 힐링받았던 그 날의 기억이 아름다운 잔상으로 오래 남은 것이리라.


그렇게 시작된 꽃에 대한 나의 사랑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꽃이 좋아진다더니 영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가보다. 나는 화사하게 피어있는 꽃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화양연화가 떠오른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가 소중한지도 모르고 흘려보낸 절정의 순간들을 간직하고 싶어하는 열망으로 꽃을 바라보는게 아닐까. 한 송이 꽃을 피어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비바람을 견디어야 한다. 그토록 고단했을 시간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에 길가에 핀 작은 풀꽃 하나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것일테다. 생명 하나하나에 깃든 그 신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봤자 결국 꽃은 시들지 않냐고 시니컬한 시선을 던지는 이들에게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 언젠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살지 않느냐고. 영원하지 않다고 해서 우리네 인생이 가치 없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자연속에서 피고 지도록 놔두지 못하고 인간의 욕심으로 기어이 꽃대를 꺽어 전시해놓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엄마는 선물받은 꽃이 시들면 쓰레기통에 차갑게 버리지 않고 곱게 말렸다가 뒤뜰에 묻어주시곤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이다. 나는 그런 엄마의 철학에 이끌린다.


누가 나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기를 바라지 않고 때때로 내가 누군가에게 꽃을 건넬 수 있기를. 혹은 나 자신을 위해서도. 내 것이 아닌 행복인양 멀리서 물끄러미 관망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내 삶에 들여놓기로 한다. 다음에는 꽃집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담뿍 품에 안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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