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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리스 부인 Oct 03. 2022

퇴사만이 답일까?

퇴사! 권할 수도 없고 말릴 수도 없다.

개인적으로 알던 후배가 퇴사를 했다.


'오늘 퇴사하였습니다.'   '마흔이 되기 전에 퇴사하기'   '조용한 퇴사'


'퇴사'로 검색하면 나오는 글들이다. 과연 퇴사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일까?


그러기 전에 왜 퇴사를 하는 것일까?


신문 경제면에 나오는 글의 제목만 봐도 한국 노동 시장은 여러 가지 모순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1.  구직자는 일자리가 없다는데, 기업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2.  신규 구직자가 쌓아야 할 스펙은 점점 높아지지만, 기업은 바로 일할 수 있는 경력직이 필요하다.

3.  위험이 있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곳을 원하지만, 안정적이고 정년이 보장된 직장이 필요하다.


이런 모순된 구조 속에서는 취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상당수가 자신의 기대와 눈높이에 맞지 않은 직장에 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다니는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나은 조건의 회사 문을 두드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학생이 다시 반수나 재수를 하여 좀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하려 하는 것과 유사한 일이다.

더 나은 직장이나 관심 있는 분야로 이직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눈높이에 맞지 않은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 발생한 스트레스와 불만이 퇴사로 이어지지 않나 싶다.


여기서는 '퇴사를 하지 말고 참고 버텨라'라는 종류의 말을 하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퇴사를 하고는 싶은데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붙잡는 여러 가지 구구절절한 이유에 대해 나눠보고 싶을 뿐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퇴사한 것이 10년도 더 된 시점이라,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총 3번의 퇴사를 하였다. 그중에는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져서 한 비자발적 퇴사도 있고,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인간관계에 의한 퇴사, 그리고 더 나은 기회를 잡기 위한 자발적 퇴사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과감하게 퇴사를 하지 못했던 구구절절한 고민과 이유가 있다.(아마 다른 사람도 공감하리라 싶다.)


 1. 경제적 이유(부양가족)

 - 퇴사를 하면서 가장 먼저 고민되는 사항이다. 경제적 사항은 부양가족의 여부와 직결되는 사항이다. 아무래도 미혼보다는 결혼을 하여 자녀가 있는 기혼자가 좀 더 퇴사를 할 때 망설이게 될 것이다.  미혼이지만 내 수입에 의해 부모나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자기 자신만 책임지면 되는 미혼이라도 재취업에 필요한 기간 동안을 견딜 수 있는 주거비, 식비 등에 대한 압박도 있을 것이다.  

물론, 퇴사하면서 재취업에 필요한 금전적 대비를 미리 하고 퇴사한다면 좋을 테지만, 업무 과중이나 대인관계에 의해 급작스런 퇴사를 하는 사람들 중에 여유자금을 충분히 마련하고 퇴사를 고려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의 경우 세 번의 퇴사를 하는 동안 미혼이었고,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도 없어 홀가분한 상황이었지만, 수중에는 아껴 써도 석 달 정도밖에 버틸 수 없는 돈 밖에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을 느끼곤 했다.


2. 앞날에 대한 전망(불확실한 미래)

 - '호기롭게 사직서를 던지고 나와 여행을 하며 글쓰기와 유튜브에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극히 한정된 사람에 해당되는 일일 뿐이다.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은 퇴사하기 전부터 글이나 영상으로 수익을 창출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일자리는 반나절만 지나면 (조금 삐걱거리겠지만) 다른 사람으로 대체 가능한 자리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자격이 이 회사에서 대체 불가능하다면 모르겠지만, 회사는 가는 사람 막지 않고 비슷한 능력의 새 사원이 오는 것도 막지 않는다. 물론, 형식상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은 할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 란 내가 나중에 지금 퇴사한 회사보다 더 나은 조건의 직업을 갖지 못하게 될 까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의 경우도 퇴사하면서 제일 걱정되는 것이 지금 나의 선택이 '도박'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직장에 다닐 수도 있지만, 지금보다 더 못한 처지(최악의 경우 아무 직장도 다니지 못하게 되는 것)로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퇴사를 가로막곤 했다.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말이 이 상황에 참 적절하다.)


3. 흘러가는 시간(내가 잡을 수 없는 시간)

 - 드라마 '미생'에 나온 대사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지옥, 생각보다 천천히 다가온다.

처음 퇴사하던 날, 나는 오전에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나와 영화를 보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 다시 영화를 보았다.(그때까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웃긴 것은 내가 퇴사를 하고 몇 주간에 본 그 수많은 영화들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으로 계속 다른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으니, 영화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올 리가 없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고민은 천천히 무겁게 다가온다. 나보다 젊은 구직자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고민과 아울러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되는 것은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다른 구직자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싫어했던 날이 새해 설날이었다. 직장이 어떻게 돼가고 있냐는 주변의 잔소리가 싫은 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한 해가 지나갔다는 두려움이 아닌가 싶다. (시간에 대한 압박감은 몰아서 온다. 하루하루는 크게 부담이 되지 않지만, 그 부담은 일 년이 넘어가는 날 한꺼번에 온다.)


그렇다고 퇴사를 하지 말아야 하나?

아니다. 이 글은 퇴사를 말리지 않는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스트레스를 받는 바에는 퇴사를 하는 것이 더 낳을 것이다. (특히, 대인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는 대단하다. 스트레스를 유발한 상대방과 떨어진다면 상관없지만 기약 없이 계속 같이 일을 해야 한다면 퇴사와 같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다만, 여러 번 퇴사를 했던 경험자로 즉흥적인 퇴사보다 사전에 조금이라도 상황에 대한 준비를 한다면 퇴사라는 충격을 완화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힘든 직장에서 견뎌내는 분들과 새로운 시작을 위해 퇴사를 준비하는 분들, 모두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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