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똑같은 곳에서 '고인 물'로 살다 보니 다른 분야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있었다. 그 위에 강력한 고정관념과 선입관까지 보태서.
한 교육과정을 통해서 평소에 만날 수 없는 예술 방면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저녁과 더불어 알코올이 들어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 싸한 기운이 느껴졌을 때, 바로 일어서야 했건만... 술에 취했는지, 분위기에 취했는지, 먼저 나가겠다는 말을 못 하고 모임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못한 말을 옆에서 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길고 긴 술자리가 이어졌다.
예술 분야였지만 상상 속의 모습과 달랐다. 자유분방함대신 위계질서가 있었다. 신입 시절, 회식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장면과 비슷했다. 모임은 그 후에도 한 번 더 만났으나 '신입시절 회식' 같은 장면은 반복되었다. 여전히 나는 과거의 나처럼 거절하지 못했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알코올을 조절했고, 택시가 보이던 큰길에서 먼저 차에 탔다는 점은 그나마 달라진 점이었다. 이건 도망에 가까웠다.
술자리가 긴 모임은 늘 기분이 나쁘게 끝났다. 처음 몇 잔 술이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지다가, 조금 더 들어가면 급격하게 우울해지는 마법이 있었다.
전과 다른 현상이었다. 거의 삼 년 술을 마시지 않아서일까? 체력이 전처럼 좋지 않아서인지, 금방 취하고, 그다음 날까지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긴 술자리를 유도하는 모임은 언제나 후회가 남았다. 빨리 빠져나오거나 아님 처음부터 가지 않았어야 했는데...
처음엔 강력한 한 사람이 원인이라고 '씁쓸함'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진짜 문제와 원인은 바로, 나였다.
나는 왜 모든 시선과 시야가 타인에 맞춰진 것일까? 오래 알았던 사이도 아니고, 회사생활처럼 정해진 인간관계도 아닌데. 나는 왜 타인의 관점에 기껏 나를 맞춰놓고, 힘들다고 이렇게 징징거리는 걸까?
몸이 힘들면 분위기가 깨지든 말든 그냥 일어났어야 했다. 누가 잡더라도, 마시고 싶지 않은 술을 멈췄어야 했다. 며칠간 잠을 못 자서 피곤했던 날이었다. 그런 날은 일찍 집에 가서 쉬었어야 한다. 이 나이가 되도록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고 챙기지 못하는 나, 거절 못하는 내가 미워서 씁쓸함이 오래 감돌았던 것이다.
나는 나를 이렇게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 아무리 자기 계발서와 동영상을 보아도 현실에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미워하는 새로운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오래 씁쓸해했다.
오늘 소소한 저녁 모임에 거절 의사를 밝혔다. 오늘은 컨디션은 좋았지만 연말의 끝을 혼자 보내고 싶었다. 물론 이 모임은 지난번 모임처럼 과한 술자리의 모임은 아니었다. 하지만 직전 모임이 마음을 씁쓸하게 해서였는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아는 사람들의 모임은 구성원을 보면서 시간과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는데, 새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었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만나면 방전돼버리는 나의 짧은 에너지. 무례함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소심하고 무력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내가 가졌던 특정 분야에 대한 선입관과 고정관념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 될까?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른 분야를 알려다가 뒤끝 있는 나를 더 알게 된 시간이었다. 스스로를 보호할 의무와 권리를 잊어서는 안된다.
어떤 순간에도, 어떤 시간에도 중심에는 내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