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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Dec 16. 2023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개나리는 죄가 없지!

 2023년 12월 16일 개나리가 피어 있었다. 남부지방도 아닌 경기도 한복판에 앙상한 나뭇가지에 노란 꽃잎이 매달렸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개나리, 축복받아 마땅한 존재가 시간 감각 없이 한겨울에 피었다고 뉴스에도 나왔다. 개나리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


 꽃도 지고, 잎도 지고, 겨울잠에 들어갈 준비도 했었던 개나리였다. 쌀쌀한 날씨가 시작하더니 어느새 20도 가까이 올랐고, 봄비(?)처럼 비도 제법 내렸다. 겨울잠을 시작하려다 다시 세상에 나왔다.


 봄이 빨리 왔음을 직감하고 꽃봉오리를 피워낸 개나리였다. 지구 온난화로 세상이 더워졌고, 온도 상승에는 인간이 원인 제공자이니, 개나리를 비난할 수 없다.


 신입 직원을 볼 때마다 엉뚱한 생각이 문득문득 스쳐간다. 과거의 나와는 다르게 '인턴'과 같은 세상 경험도 많이 했고, 당황하는 모습도 찾기 어려운 '인생 2회 차'로 보이는 능수능란한 후배들을 보면 과거의 어리숙한 내가  떠오른다.


 그때 어리숙한 내 주변엔 영악한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엔 싫었고 힘들었다. 하지만 오래 함께하다 보니 말도 안되는 가스라이팅에 길들여졌다. 사람 보는 눈이 없고, 세상을 보는 시선과 시야도 비뚤어졌던 그때 나를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 어린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보다는 더 잘난 사람들과 아직도 비교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인데. 달라진 계절처럼 현실 인식을 못하는 건 나였다. 살면서 힘든 시간 안 보낸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본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처럼 그때보다 단단해진 내가 있는 거라고.


개나리는 죄가 없지. 날씨가 냉탕과 온탕으로 오가며 변덕스러웠고, 세상에 딱 맞춰서 내보낸 꽃봉오리인데. 12월에 꽃이 핀 거냐며 핀잔을 줄 수 없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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