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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Feb 18. 2024

인생 독고다이

그리고 웬만하면 아무도 믿지 마세요. 우리는 가족이라 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 더 조심하세요. 누구에게 기대고 위안받으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인생 독고다이라고 생각하시면서 쭉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이효리, 국민대 졸업식 축사 중 -


 나는 인생을 참 쉽게 살려고 했다. 나라는 사람을 믿지 못했고,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믿었다. 요행을 바랐고, 요령을 믿었다. 그 시작은 이랬다.


 대학교 4학년 2학기부터 읽기 시작했던 자기 계발서가 그랬다. 그다음은 사람, 회사에서 와서 말발이 좋다는 소시오패스도 독실하게 믿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사람에 휘둘리다가 다시 책, 자기 계발서도 돌아왔다.

El cho(The Ship's boy),  Adolfo Guiard 1887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 뭔가 웅장한 울림이 있었다. 뭔가 새롭게 시작할 힘도 생겼고, 굉장한 목표를 적고 나면 곧 위대한 사람이 될 것만 같은 희망도 있었다. 그렇지만 '작심삼일'이 무한 반복되었고, 곧 역시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보잘것없다는 패배감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 자기 계발서도 좀 멀리했었다. 몇 년 후에 코로나 시기가 왔고, 집에서 영상을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느 날, 자기 계발에 관련한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다. 이건 책보다도 더 강렬한 울림이 있었다. 영상은 자극적이었고, 영상의 배경음악까지 완벽한 10분간의 다큐멘터리였다. 영상에서 말하는 저자의 책도 읽어 보았고, 영상에서 홍보하는 책도 꽤 읽어 보았다.


 자기 계발은 하지 않고, 자기 계발에 관련한 영상과 책을 마스터했다. 그렇게 나는 노력은 하지 않고, 노력이 필요하다는 영상과 굳센 마음만 가졌다. 한 마디로 '정신 승리'였고, 또 하나의 '세뇌'였다.


 그렇게 보다가 100만 구독자가 넘는 자기 계발서 회사가 만든 '북클럽'에도 가입해 보았다. 세바시 프로그램에서도 강연을 했다는 것과 엄청난 구독자가 말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 있었다. 그런데 북클럽이 좀 이상했다. 예를 들면 어제 막 출간된 책이 '북클럽 선정 책'이었다.


 출처를 알아보니, 북클럽의 운영자가 출판사 관계자였다. 이제 막 나온 책을 구매하게 했고, 서평을 각각의 sns에 올리거나 네이버카페에 작성 후, 다른 사람의 서평에 몇 건 이상의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기와 같은 미션 완료 후에 줌으로 책모임이 시작되는 형식이었다. 마케팅에 책 모임이 이렇게 사용됨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시도해 보았다. (매번 베스트셀러 순위에 드는 책을 내는 출판사였다)


 선정된 두 권의 책을 읽고, 허탈함이 왔다.


 책이란 각각의 호불호가 있지만 내용이 너무 빈약했다. 그럼에도 독후감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독후감을 읽어 보았다. 다들 '너무 좋았고, 이런 점을 본받겠다'는 내용으로 비슷한 내용의 연속이었다.


 두 번째 책을 읽다가 중도 포기했다. 정말 몰입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유튜브에서 보았던 너무 재밌고, 너무 잘 만든 소설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책의 반절도 읽지 못했다. 이런 글에 독후감을 써도 될까?


 두 번째 독후감은 정말 너무 좋았다는 내용으로 적어보았다. 하지만 며칠 후 두 편의 독후감을 삭제하고, 카페를 탈퇴했다. 정말 별로라고 느낀 책을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소개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큰맘 먹고 가입한 책 모임이 그랬다.


 그다음은 자기 계발에 유명한 강사의 영상을 보다가, 강사가 운영하는 플랫폼에서 다양한 '인강 결제'를 해보았다. 물론 도움이 된 것도 있지만 대다수는 '돈과 시간 낭비'였다.


 수업을 수강할 때는 나만 아는 고급 정보 같고, 왠지 앞서가는 마음이 들고, 이렇게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살기 시작했으니 곧 성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웅장한 결심과 달리 노력은 스스로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게으름이 문제였다.


  흔히 '성공학'이라고도 불리는 자기 계발서의 함정이었다. 뭔가에 강하게 이끌리고, 그들만의 리그처럼 단체 카톡방이 들어가고, 유료 강의를 결제하는 순서였다. 그렇게 나는 앞서 나가는 듯하지만 실상은 늘 똑같은 하루였다. 미라클모닝 역시 일어나는 형식에 주력했을  뿐, 일어나서 활동한 콘텐츠는 미약했다.


 영상만 보아도 자기 계발이 되는 것만 같은 착각에 나는 오랜 시간과 돈,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어디가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게으른 내가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해졌고, 나라는 사람에 대한 불신만  커졌다.


 얼마 전 보았던 이효리의 졸업식 축사가 어떤 명언보다 인생의 진리를 말하고 있었다. 가족처럼 다가왔던 소시오패스들, 맹목적으로 믿었던 나보다 낫다고(?) 생각한 사람과 영상들. 이런 건 가짜였다.


 진짜는 내가 살면서 체득한 경험, 좌충우돌, 시행착오가 자기 계발이었다. 그동안 인생의 어떤 요령과 편법을 익히려고 살아온 게 아닌지, 이제야 마음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남의 말을 쉽게 믿고, 쉽게 의지하려고 했던 마음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내 발목을 붙잡었다. 그렇게 나의 가장 좋은 시기를, 인생의 황금기를 날려 버렸다. 실상은 하루하루 티 나지 않고, 지루하기도 한 연습과 노력의 과정을 혼자서 조용히 밟아나갔어야 하는 것이다.


 유튜브로 자기 계발서를 볼 시간은 있고, 공부할 시간과 운동할 시간은 없는 나라는 사람이었다. 인생을 너무 쉽게 살려다, 내 인생 내가 꼬아버린 시간이 자기 계발 실패의 역사였다.


 너무 쉽게 살려다가, 너무 어렵게 살아버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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