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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Dec 28. 2021

주식하는 엄마, 안 하는 딸

나는 주식을 하지 않는다. 엄마가 주식을 했기 때문이다. 주식하는 엄마의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는 경력 20여 년 차의 소액 개미 투자자다.


젊은 시절의 엄마는 결혼하자고 쫓아다니는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엄마의 주장만이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에. 그래도 젊은 시절 엄마의 사진을 보면 그 말이 허무맹랑한 말은

아닌 것 같다. 터키색 투피스를 입고 있는 사진 속 엄마의 모습은 지금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으니까.


엄마는 바쁜 외할머니 대신 남동생들을 챙겨 먹이고 보살피며 좋은 대학에 보냈다. 그것은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막상 본인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래서 본인이 가지지 못한 것을 배우자에게서 찾았나 보다. 엄마는 가난하고 후줄근했지만 이름 있는 대학을 졸업한 아빠와 결혼했다.


그래도 아빠는 성실하고 착했다. 착해서 지인의 보증도 냉큼 섰다. IMF가 터지고 대한민국이 술렁이던 그해, 우리 집은 겹겹이 파도를 만나 휘청거렸다. 아빠의 지인은 파산하여 도망갔고, 그 빚은 우리 집 차지가 됐다. 엄마는 십여 년간 알뜰살뜰 모아 장만한 첫 집을 팔았다. 내 기억에 엄마가 우는 모습은 그때 처음 보았다.


아빠의 월급 대부분은 빚을 갚는 데 쓰였다. 엄마는 가족들에게, 지인들에게 돈을 빌렸다. 아빠의 인맥보다 엄마의 인맥이 빛을 발했다.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식들에게만큼은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아 했다. 집은 팔았어도 우리를 전학시키지 않으려고 살던 동네에 전셋집을 구했다. 우리가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니게 했다. 대신 집에서 아이 셋을 돌보며, 돈을 벌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동네 엄마들 모임에서 새로운 주제가 급부상하고 있었다. ‘요즘 이걸로 돈 많이 번다더라.’, ‘누구 엄마는 외제 차를 샀다더라.’ 타자조차 치지 못했던 엄마는 알음알음 물어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깔았다. 그렇게 엄마는 주식을 시작했다.


잠시 스쳐 가는 취미 생활 정도일 줄 알았는데 주식은 서서히, 더 깊숙하게 엄마의 삶에 들어왔다. 집안에는 바글바글 끓는 김치찌개 소리 대신에 딸깍딸깍 마우스 클릭 소리가 울렸다. 주방에서 분주하게 요리하던 엄마 대신, 몇 시간이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었다. 엄마는 우리 생활에 변화를 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에게 가장 큰 변화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하교하고 집에 오면 엄마는 나를 보지도 않은 채 ‘왔어?’ 한 마디만 건네고 컴퓨터만 들여다보았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게 어린 나의 낙이었는데, 그 즐거움이 사라져 버렸다. 엄마의 관심은 나보다 빨강, 파랑의 삼각형과 숫자들이 가득한 모니터에 쏠려 있는 듯했다. 눈길을 돌려 집안을 살펴보니 우리 가족들의 흔적들로 지저분했다. 깔끔했던 엄마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어느새 아빠보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이 마음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경제신문을 구독했고, 드라마 대신 주식방송을 시청했다. 식탁 위에는 과일 대신 수십 권의 주식 책들이 쌓여갔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끈기가 있고 열성적인 사람인 줄 미처 몰랐다. 엄마의 수첩에는 신문기사 조각들과 메모로 가득 찼다. 동네 엄마들과 통화를 하면서도, 퇴근하고 온 아빠를 보면서도 어제 매도한, 오늘 매수한 주식을 신나게 이야기했다.


엄마는 종종 나에게도 주식 이야기를 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내 속마음을 가감 없이 뱉어버렸다.


“엄마, 너무 주식만 하는 것 같아. 엄마라면 우리를 더 챙기고 집안일을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난 엄마 주식하는 거 싫어. 정말 싫어.”


꽝꽝꽝. 그동안 내 마음속에 자리한 응어리를 뽑아 엄마 마음에 박아 버렸다. 그리고 그날, 엄마와 소리 높여 싸웠다. 만약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식의 말을 들었더라면 몇 배는 더 화를 냈으리라. 하지만 당시의 나는 엄마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 단지 씩씩거리며 방 안에 들어왔다. 엉엉 울면서 원인 제공자를 욕했다. ‘이 모든 게 다, 주식 때문이야.’


엄마가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추측건대 조금이나마 살림에 보탬이 되는 정도 같았다. 마이너스가 아닌 게 다행이었다. 가족들끼리 고기를 구워 먹으며, 엄마는 아빠에게 이번 달 고깃값은 벌었다고 했다.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을 입안에 넣으며 생각했다. 흥, 주식 덕분에 먹는 고기라고? 그렇지만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엄마의 일상적인 대화도 변했다. 물건 하나 사면서 미국 경제와 중국 경제를 논하는 엄마라니. 엄마가 읊는 단어들이 어렵게 느껴졌다. 때로는 아빠보다도 엄마가 더 박식해 보였다. 주식은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해놓고는, 본인이 투자한 종목이 상한가를 찍는 날엔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주식이 계속 떨어질 때는 슬퍼하기보다는 계속 갈 것인가, ‘손절’을 할 것인가를 골똘히 고민하던 엄마. 버석거리던 엄마의 삶에 촉촉한 빗방울이 내리는 것 같았다. 그 빗방울은 무언가에 대한 열정이었고, 배움에 대한 즐거움이었고, 소소한 수입이었고, 자신의 또 다른 쓸모였다.


엄마의 주식에 대한 불 끓던 열정은 내가 수험생이 되자 다소 사그라들었다. 대신 그 열정을 나에게 쏟아부었다. “너 일요일이라고 퍼질러 잘 거야? 얼른 일어나서 학원 안 가?” 주식에 대한 나의 원망도 방향을 틀었다. 아, 왜 주말엔 주식시장을 쉬어서 날 고달프게 하는 걸까, 왜 요즘 주식시장은 내 성적보다도 엄마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걸까, 하면서.   


엄마는 지금도 주식을 한다. 얼마 전,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요즘 주식투자는 어떤지 물어보았다. 엄마의 대답이 길어진다.


“엄마도 이젠 주식 별로 안 해. 그냥 조금 사뒀다가 한참 뒤에 들여다보는 거지 뭐. 갑자기 그건 왜? 설마, 너도 주식해?”

“아니. 요즘 주변에서 다들 주식 이야기 많이 하길래. 엄마는 어떤가 해서,”

“아…. 난 너도 하는 줄 알고. 넌 안 할 거잖아.”

“응, 그렇지 뭐.”


그렇게 어영부영 전화를 끊으려는데 엄마가 급히 한마디 한다.

“넌 절대 주식하지 마. 알았지?”


 뚝-. 끊어진 전화를 붙든 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왜?


엄마의 생각처럼, 바람처럼 나는 여전히 주식에 관심이 없다. 주식을 잘 몰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주변에서 주식으로 돈을 잃은 경우를 많이 보아서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주식하는 엄마에게는 관심이 생겼다. 엄마가 어떤 종목을 샀는지, 얼마나 벌었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대신 엄마가 주식을 왜 하고 있는지, 오랫동안 주식을 한 소회는 어떤지, 경제신문에서 어떤 섹션을 가장 흥미롭게 읽고 있는지, 언제까지 주식을 할 것인지는 궁금하다. 그래, 조만간 물어봐야지. 아, 왜 나보고 하지 말라고 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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