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참 잘 되었네.
아플 거 같다. 예상은 했다. 중이염은 한 달 넘게 차도를 크게 보이지 않았다. 먹먹한 왼쪽 귀. 의사선생님 이야기로는 귀와 코 사이 지점에 공기가 통하는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에 가래가 달라붙어 있어서 소리가 잘 안들리는 거라고 하면서 나를 안심시켜주셨다. 큰 병은 아니지만 사소하기에 푸념하기도 어려운 '잔 병'이다.
이번 주 중반부터 기절모드였다. 수요일 점심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갑자기 정신이 까무러치는 것 같았다. 어깨가 굳어 올라가는 것 같았다. 개미들이 돌을 들고 내 뒷목에서 머리로 이동하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왜 그랬지. "재미없는게 아니에요. 피곤한 거에요" 라던 한 영양보조제 광고문구가 떠 올랐다.
내 놓은 집을 사람들이 보러왔다. 네 팀이 보러 왔는데 한 팀이 계약을 원했다. 그런데 날짜가 너무 안맞아서 조율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날짜 조율을 부동산에 요청했다. 그리고 나서 연락이 없었다. 내가 전전긍긍하자 놀러왔던 선배와 남편은 날 놀려댔다 "쟤, 에프터 기다리는데 연락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남자 같아" "차였네 차였어"나는 매사 연애처럼 삶을 사는 경향이 있다. 사람이 아닌 사건과. 그래서 너무 좌절하거나 너무 즐거워한다.
아픈 와중에 갓 지은 밥이 먹고 싶어졌다. 어렸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면 외롭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최근 몇년간, 내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매력이 많다" 였다. 근데 그렇다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다. 그냥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외로울 때는 정말 나에게 잘 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나한테 정성껏 밥을 지어주었다. 그래봤자 16살 된 쿠쿠 압력밥솥이 밥을 했지만. 사박사박 씻긴 쌀을 밥솥에 쌀을 조심스레 쏟았다. 반찬까지 해줬으면 좋겠지만 그럴 기력은 없었다. 냉장고에 다행히 아파트 장에서 산 인기 많은 돈까스가 비상식량으로 있었다. 후라이펜에 식은 돈까스를 바작바작하게 데우고. 엄마가 비상반찬으로 주셨던 오이볶음을 꺼냈다. 이럴때 맑은 된장국 하나 있었으면 했지만 밥이 워낙 잘 되어서 아쉬움이 가셨다. 돈가스 소스를 못찾아서 이케아 케찹을 꺼내 놓았다. 하인즈나 오뚜기보다 아주 약간 검은 색이 돌았다. 잠시 롯데리아의 유난히 달디단 케찹이 떠올랐다.
"우와, 밥이 참 잘 되었네. 이 케찹 맛있다"
남편이 말을 했다.
"응 그거 이케아 케찹인데 묘하게 맛나지?"
밥이 참 잘되었다. 약간 덜 익힌 스파게티 면 같았다. 찰지고 꼬득거렸다. 밥냄새게 고소했다. 밥을 곰곰히 씹어 삼켰다. 따뜻함과 익숙한 맛이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데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이 피어올라왔다. 내장지방의 원인이자 탄수화물의 최고봉 흰 밥인데 아플 때는 왜 꼭 이 갓지은 흰 밥이 먹고 싶은지 모르겠다. 바삭해진 돈까스랑 아작아작한 오이볶음나물. 그리고 시원한 신김치를 급한마음과 먹고 나니 긴장이 풀어졌다. 이럴 때 맑은 조개국물에 풀은 된장국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뭐. 내가 스스로에게 주려고 차린 밥상이 백퍼센트가 되는 건 참 어려운 일이기에.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백퍼센트가 될 수 없다는 건 불변의 진리라도 되듯 오늘도 온전하지 않은 나만의 백퍼센트가 이렇게 내 밥상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