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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미해 Jul 26. 2023

나의 냉소주의 기원을 찾아서

설익은 자의 단상 : <도둑맞은 집중력> 인터뷰 영상을 보고

https://youtu.be/1K0XXfMcTuQ


어제 밤에 본 영상. <도둑맞은 집중력>은 워낙 유명하고 여기저기 좋다는 말이 많아서 읽어보려고 했는데 너무 두꺼워서 엄두가 안났다. 근데 돌콩님이 저자를 인터뷰하셨길래 우선 이것부터 볼까 싶었다. 영상을 본 시점의 내 상태부터 적어보자면 본가에 머물면서 2일간 스크린 타임을 평소의 2배 가량 찍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상하게 본가에 머물면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기 어려워서 새벽부터 무언가에 집중한다. 그래서 수면 패턴도 엉망이었다. 비록 2일간의 엉망이었지만 내가 느낀 불쾌함은 무척 컸고 디지털에 절여진 뇌는 당장이라도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었다. 휴대폰을 오랫동안 하다보면 모든 뇌의 방향이 스마트폰에 맞춰지는 느낌이다. '블로그에 댓글이 달렸나 볼까?', '인스타에 올린 게시글 반응을 볼까?', '유튜브에 재밌는 영상 없나?' 등등. 계속 스마트폰을 들춰보게 된다. 스마트폰을 키지 않아도 이미 내 뇌는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상태에 공허와 허무를 느낀 어젯밤에 이 영상을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너무 좋았고 난 당장 책도 읽을 생각이고 사람들을 모아 이 영상을 다 보여주고 싶다. 40분이라는 영상 길이는 처음엔 길게 느꼈지만 전혀 길지 않았다. 더 많은 이야기를 축약없이 풀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저하되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집중력은 모든 성취의 핵심이다.


집중력은 우리가 가진 초능력이 가깝다.



영상을 필기하며 들었는데 위에 적은 세 문장이 정말 와닿았다. 저자는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느끼는 성취의 경험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서 그 성취에는 모두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즉, 집중력은 성취의 기본 준비물인 셈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저하되는 집중력은 우리에게 성취를 못하게 방해할 뿐더러 성취 자체를 냉소하게 만든다. 오랜 기간동안 열심히 노력하는 것에 대한 냉소주의는 이미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데 그 이면에 집중력 저하도 한 부분 있을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심히 찔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기자라는 직업 준비나 대학원 진학 고민을 앞두고 두 선택지를 묘하게 얼버무리며 외면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과연 내가 무언가에 오랫동안 집중해서 하나만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룬 성취를 보면 사실 그 성취를 이루며 다른 것을 아예 중단하지 않고 나름대로 내 취미도 영위하고 추가 사이드 프로젝트도 해왔는데 난 이상하게 한 가지에만 집중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다 자신이 없는 태도는 금새 냉소주의로 빠지고 말았다. 냉소는 내가 손쉽게 합리화하면서 말그대로 쿨해보일 수 있는 선택지다. 나의 냉소는 이런 형태를 지녔다. '요즘은 어떻게 한 직업으로 먹고 살아. 여러 직업을 하는 시대가 온다는데 하나의 직업에 너무 많은 것을 투자하는 건 좀 후회할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하지. 그리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 그게 꼭 특정한 직업이어야 할까?' 등등. 물론 난 이미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바탕으로 나라는 브랜드를 어느 정도 구축해가고 있긴 하다만 그것을 브랜드로 몰고 갈 경우 소진될 자아는 생각해본 적 없다. 냉소주의로 빠지면서 무언가를 또 막연하게 최고로 끌어올리고 있던 건 아닌가 싶더라. 그리고 무엇도다도 이런 단정을 짓기엔 너무 어리고 아직 제대로된 실패도 못 겪어봤다. 지금 내가 오랜기간동안 무언가를 노력한다고 해도 그 기간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된다고? 이렇게 냉소주의에 대한 반박을 하게 된 지는 얼마 안되었다. 냉소주의로 계속 생각하고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성장에 대한 갈증이 피어난 것 같다. 아무래도 냉소주의는 무언가를 더 성장하게 만들지 못하고 안주하게 만드니까 계속 안주해있다가 도저히 못참고 일어난 것이다. 냉소주의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위 영상을 보고 냉소주의의 기원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냉소주의의 기원을 알았다고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위한 힘도 있어야 하지만 그 장기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일상에서 파악하는 능력 또한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그리 길지 않아서 책에서 볼 생각이다. 그 뒤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집중력 회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저자는 수전 손택의 ‘연민 피로’라는 개념을 말했다. 연민, 공감이라는 감정 자체 때문에 사람들이 지치는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때문에 지치는 것이라고 했다. 진짜 입이 떡 벌어져서 놀랐다. 내가 불안하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고 생각했는데 '불안'이라는 감정이 '연민 피로'일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공부를 하면서 완전히 불안감이 해소되진 않아도 어느정도 해소되는 이유가 사회적 문제의 실체와 구조가 보이고 그러니 해결 방향이 흐릿하게라도 보여서 그런 것 같다. 이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막연한 두려움과 내가 당장 광화문 광장을 뛰쳐나가야 하는지 재판을 보러 다녀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결국엔 어느 행동도 취하지 않았기에 더 불안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랬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무언가 보이는 단계까지는 온 것 같다. 내가 보는 것도 정말 일부의 일부일테지만 전보다는 덜 불안하다. 해결 방향이 보이고 있으니 나름대로 어떤 식으로 행동을 취하면 될지 감이 온다. 그래도 '내가 무언가를 취할 수 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구나' 이런 감각이 생기면서 나의 언어로는 '불안'이라는 것이, 수전 손택의 언어로는 '연민 피로'라는 것이 사라져갔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멀티 태스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나는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번년도 초부터 체감하고 있었다. 업무량이 많을 때는 여러가지 일을 하고 일의 단위가 아니더라도 여러 활동을 동시에 했지만 동시에 내 머리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다양한 것을 빠르게 잘 처리할 수 있었던 능력의 핵심은 빠르게 끊고 전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아리 일을 하다가도 빠르게 끊고 학생회 일로 넘어가는 식이다. 자기 직전엔 모든 것에 대한 아이디어나 피드백이 한꺼번에 이루어져서 벌떡 일어나 적다가 새벽에 취침한 적도 많긴 하다. 아마 이때는 일을 하지 않는 상태인데도 두뇌는 풀가동이라 그게 흘러나와 잠을 방해했던 것 같다. 이번년도 초부터 일정 다이어트랄까, 여러 일을 하지 않고 지내며 휴대폰 사용도 계속 줄여오면서 일상에서도 한 번에 하나만 집중하게 되더라. 늘상 걸을 때마다 노래를 듣곤 했는데 정말 컨디션이 좋은 날이 아니면 듣기 힘들다. 산책하면서 바닥도 살펴봐야하고 주변 경치도 살펴봐야하는데 노래까지 들으려니 하나에 집중하기가 힘들더라. 이런 식으로 한 번에 하나만 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 사실 우리가 표면적으로 체감하는 'task'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시각, 촉각, 청각, 미각이 하는 모든 인지도 'task'가 아닐까. 가만히 있기만 해도 나의 감각들은 풀가동중이다. 저자는 영상 속에서 뇌에 관해 명백히 알려진 사실 중에 '우리는 한 번에 딱 두 가지에 대해서만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우리가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게 아니라 빠르게 왔다갔다 한다는 것이고 전환 비용 효과가 따른다고 했다. 우리는 빠르게 전환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가 집중력을 위해 방어하는 행위 말고도 공격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방어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디지털 디톡스 챌린지나 스마트폰 잠금 어플을 사용한다거나 그런 것이다. 나는 우선 이 방어 행위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나의 경험상 방어 행위는 영구적인 효과성을 지니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점진적으로 변해야 비로소 변할 수 있다. 갑자기 극단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면 처음에는 충격이 크게 와서 효과는 잘 느껴지겠지만 여러 기간에 걸쳐 느낄 효과를 한 번에 몰아서 느낀 것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쉽게 원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디톡스 챌린지나 스마트폰 사용 줄이기는 대개 '인내심'과 연결되어있다.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참아야 한다. 무언가를 참는 것은 결코 지속될 수 없고 우리가 챌린지 내에서 참을 수 있는 이유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인생 자체를 챌린지로 보고 끝이 없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인내심이 아니라 다른 것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스크린 타임이 3-4시간인데 주변에서는 내 스크린 타임을 보고 휴대폰 사용을 줄여야겠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말을 첨언한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는 것 말고 스마트폰 사용 대신에 무얼 할지부터 생각해보라고. 스마트폰 사용보다 자신에게 더 큰 유인이 될 행동이 무엇일지 생각해보라고. 사실 이런 말을 하기 전에 일상에서 재미와 행복을 느끼는 정도의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미리 말했어야 하긴 하다. 스마트폰 사용 대신에 스마트폰 사용이 주는 즐거움에 비레하는 일상의 즐거움이 없다면 내 조언은 철저히 실패하기 때문이다. 나의 적은 스크린 타임은 어떤 구조로 정착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스마트폰 사용을 안해도 집에서 할 게 많고 충분히 즐겁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외의 즐거움을 맘껏 누리다보면 스마트폰이 시시해진다. 그리고 이전에 보이지 않던 불편한 구석이 느껴진다. 내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나 읽는 책에는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향한 혐오와 수치스러움을 자극하는 여러 게시글이 확 느껴진다. 문제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내가 노력하고 스마트폰의 부정성을 알아도 본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마트폰에 다시금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방어 외에 공격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비단 개인의 의지 문제나 습관 문제로 몰아가기엔 더 큰 문제들이 많고 개인을 스마트폰으로 밀어넣는 sns의 시스템이 그중 하나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총 세가지 구조를 언급하며 각가의 특징과 결국 우리가 취해야 할 그나마 최선의 구조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는데 글에는 적지 않겠다. 이 글은 나의 감상이나 생각에 가깝기에 영상을 그대로 옮겨오는 식이 되진 않는 게 나을 것 같다. 구조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가 생각났다. (실제로 다큐 속 핵심 인물을 영상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책 <도파민네이션>과 <대량살상 수학 무기>도 생각났다. 여기에서 재밌는 사실은 두 책의 저자가 다큐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책을 이미 읽은 상태에서 다큐를 봤는데 도파민 관련 부분에서 책을 떠올리던 와중에 인터뷰 대상자로 <도파민네이션> 저자가 등장했다. 저 다큐멘터리와 두 책과 <도둑맞는 집중력>까지 다같이 보면 참 좋을 것 같다. 절대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는 부분이 참 많다.



난 이 영상에서 좋았던 점이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지난 학기 사회심리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구조적인 문제가 종종 놓치는 문제가 많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회학 수업을 듣는 지금, 그 구조성을 더 알아가려는 시작에 놓여있다.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종종 시스템의 실패를 부정하기 위해서, 시스템이 추구하는 가치를 견고히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리고 가장 간편한 방법이기도 하다. 여기서 정확히 짚고 가야할 것은 개인적인 문제로 간주하는 것과 개인적인 요인을 분석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는 것. 개인적인 요인을 분석해서 이후 해결까지 나아간다면 참 좋겠지만 그게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린 뒤 사회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빠져버리는 형태 같다. 저자는 집중력 저하가 개인적인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을 화나고 속상하게 하는 것에 더 오래 주목하는 부정편향이 있다고 했는데 그 부정편향이 휘어잡고 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나의 행복, 친구의 행복, 가족의 행복, 사회의 행복을 이룰 수 있을까? 저자가 말했듯이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개인은 주체성을 가지니 일개 개인인 나부터 노력해봐야겠다. 계속해서 타인과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하고 내가 획득해낸 일상을 잘 사는 법을 알려줘야겠다. 그와중에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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