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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미해 Mar 23. 2023

'아픔'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

설익은 자의 몸과 마음 연대기 

난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아니다. 초,중,고 내내 1년에 결석을 3~4번은 늘 했었다. 고등학생 때 특히 많이 했던 년도엔 조퇴 포함 10번이었나. 대학교 입시 직전에 결석이 너무 많아 걱정된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서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픈데도 나와서 공부하는게 성실함이라면 난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게 낫다고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당시엔 아픈 나를 탓했는데 지금 보니 아픈 날이 있었음에도 최선을 다한 내가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갑자기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왜 하냐면 지금 내가 아프기 때문이다. 난 애초에 기관지도 약하고 위도 약한데 면역력도 안 좋았던건지 여러 가지가 몰려와서 집에서 쉬는 중이다. 집에서 쉬다보니 자연스레 드는 자잘한 생각과 내가 아팠던 날들. 나의 아팠던 날은 어떤 변천사가 있었는지 정리해보고 싶어 글을 쓰려고 한다.


초중학교 시기엔 몸이 안 좋아서 학교에 안가게 되면 너무 좋았다. 합법적으로(?)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를 걱정해주는 가족들의 시선이 좋았다. 맞벌이 가정에서 자란 나는 초중학교 시절에 부모님의 관심을 내가 원하는 만큼 받지 못했는데 아플 때만큼은 충족되었달까. 하지만 1일만 지나도 왠지 모를 죄책감이 밀려오곤 했다. 눈치도 보이고 내가 과연 이렇게 쉴 만큼 아픈 것이 맞는지, 과장된 아픔을 스스로 창조해내고 있는 것인지 판별하려 애썼다. 부모님은 오랫동안 일을 제쳐두고 나를 보살필 상황이 되지 않기에 더 바빠지신 모습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괜찮은 척을 하고 학교에 가려고 했던 기억이 종종 난다. 어린 아이였던 나에게 '아픔'은 힘들다는 느낌보다는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던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어린 아이라고 티를 냈지만 결국 다시 어른스러운 척을 하는 어린 아이로 금새 돌아오고야 말았다.


고등학교 시기엔 몸이 안 좋아지면 억울하고 화가 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당장 해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아픈 내가 너무 싫었다. 애초에 과로 상태이기도 했지만 감기처럼 갑자기 찾아온 존재 앞에선 정말 억울했다. 이땐 악을 쓰고 콧물이 나든, 기침이 나든 어떻게든 공부하려고 했다. (물론, 자처해서 쉬었던 날도 많다. 지금 떠올려보면 야자시간인데 기숙사 침대에 누워있던 날들이 많다.) 사실 아프면 정신도 살짝 혼미하고 두통이 와서 제대로 공부의 효율을 낼 수도 없는데 악착같이 붙들고 있던 내가 미련스러우면서도 안쓰럽다. 이 시기엔 부모님도 걱정보다도 빨리 나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아무래도 공부를 해야 하고, 시간 확보가 경쟁력이니까? 참 벅차게 보냈다. 


성인이 된 이후엔 본가에서 떠나 지내다보니 타지에서 아팠다. 20대 극초반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얼마나 걱정해주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부모님에겐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귀여운 마음이나 갸륵한 마음조차 품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시기가 찾아왔고 그 앞에서 그냥 털썩 - 주저앉을 수 밖에 없기도 했다. 초중고까지는 신체적인 아픔이 상대적으로 그 내부에서 원인이 있었다면 성인이 된 이후엔 정신적인 영역과 연결된 신체적인 아픔이 주로 나타났다. 사실 이걸 명확히 구분할 수 있나 싶긴 하다. 21살까지 만성 두통에 시달렸고 늘 두통이 있었기에 앵간해선 두통약을 먹지도 않았다. 난 모든 사람이 이 정도의 두통은 늘 가지고 사는 줄 알았다. 두통이 없는 상태란 나에게 희귀한 상태였다. 그 외에도 시달린 여러 신체적인 아픔은 곧 정신적인 아픔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정신적인 아픔과 헤어지고 독립된 신체적인 아픔을 겪고 있는데 일상 생활을 하는 데에 불편함이 있다는 것 외엔 괜찮다. 물론, 처음엔 수업을 빠져야 하고 여러 모임과 약속에 못 나가게 되어 슬펐지만 지금 아픈 것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껏 낡아버린 신체로 이전과 같은 효과를 내려고 애쓰지도 않고 오히려 시기적절한 아픔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근래에 밀려오는 여러 약속과 사람과의 접촉에 많이 피로해있었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고 자체적으로 전원이 꺼질 뻔한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아프게 된 거라 집에서 쉬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는게 꽤 좋다고 여겨진다. 아픔으로써 학교 근로도 가지 않고, 수업도 안 가고, 알바도 안 가게 되니 자연스레 연결이 꺼지게 되더라.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끊어지는 것도 때론 절실히 필요하다. 


아픔을 삶에 찾아오는 모든 일로 치환하여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아픔이 적시에 찾아와 외부와 내부의 균형이 자연스레 맞춰졌듯이 다른 일들도 그 시기에 꼭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픔의 연대기를 적어보니 더더욱 이 생각이 나에겐 잘 들어맞는다고 느낀다. 그래도 서서히 낫고 있으니 다음주엔 다시 일상을 잘 살아가봐야지. 아파도 놓지 않는 책과 글, 그리고 적절히 멀리 하려고 애쓰는 스마트폰. 이 틈에서 몸도 마음도 돌보는 중이다. 정신과 신체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 이후로 둘을 잘 돌보려고 애쓴다. 앉아있는게 조금 벅차더라도 좋은 텍스트를 읽으려 노력하고, 방은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아픈 나의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시험기간에 대한 압박이 몰려오지만 깔끔히 낫고 몰아서 집중하자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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