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움 뮤지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 한동안 스피커에 꽂혀 있던 적이 있다. 원룸살이를 전전하다 한 평씩 집의 규모가 커지면서 집에 작은 가구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머무른다면 집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떠오른 게 바로 스피커였다. 그렇게 평범한 기성제품부터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고급 브랜드까지. 음질은 어떻고, 울림은 얼마나 하는지 등 나름 꼼꼼하게 비교 분석까지 해가며 알아봤다.
그런데 새 집으로 이사를 가도 라이프스타일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출퇴근 시간은 더 길어져 전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했고 커지는 집의 공간만큼 늘어만 가는 집안일에 음악소리와 함께 하는 삶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공간에서 머무르고 싶다는 로망은 어느새 사라지고 장바구니에 담겨있던 스피커는 점점 잊혀져 결국 사라졌다.
몇 해가 지나고 서울에 세계 최초의 오디오 뮤지엄이 개관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가 디자인한 한국 최초의 건축작품이라는 것에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개관하는 오디오 뮤지엄은 어떤 경험을 하게 해 줄지, 무엇보다 이루지 못한 나의 로망을 이곳에서는 경험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더 컸다.
버스에서 내리니 뜨거운 태양 빛이 불가마처럼 활활 타오르는 아스팔트의 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하필이면 8월 중에서도 가장 더운 날이었다. 더위를 조금이라도 피해볼까 싶어 발걸음을 옮기니 횡단보도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수직 건물이 눈에 밟히니 밝은 알루미늄 파이트 2만 개가 수직으로 건물을 감싸며 빛과 그림자가 마치 숲에 스며드는 효과를 내는 도심 속 자연을 표현한 곳. 세계 최초 오디오 뮤지엄 '오디움'이었다.
건축가 쿠마 켄고는 이곳은 훌륭한 소리를 감상하기 위한 공간이기에 인간은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연의 숲과 같은 건축물 속에서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박물관이 되기를 원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알루미늄 파이프를 사용해 숲속에서 비추는 햇살을 고안하여 날씨, 시간, 계절에 따라 계속해서 변하는 빛살을 표현했고, 알루미늄 파이프를 전면에 두께나 배치를 랜덤하게 적용해 자연이 지닌 무작위성과 자연에서만 나타나는 인위적인 질서를 넘어서는 무작위성에 도달하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가장 접근성이 좋고 잘 보이는 곳에 입구를 두는 박물관과 달리 오디움의 입구는 건물 후면도로로 이어지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곳에 자리한다. 계단은 계곡을 만드는 랜드스케이프 요소로 건축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로 박물관은 하나의 랜드스케이프를 지향한다. 계곡과 숲이 하나 되는 랜드스케이프를 통해 자연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공간과 숲의 관계성을 대형 계단으로 구현했다. 여기에 계단 벽면을 구성하는 돌은 두꺼운 석재를 거친 마감해 배치했다. 10센치 이상의 석재를 '혹두기'라는 마감을 통해 계단을 오르내리며 실제 계곡에 와 있는 듯한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관람객들은 돌의 거친 느낌과 중량감, 알루미늄 파이프로 표현된 숲의 경량감과 한데 어우러 계단을 지나며 박물관이 실체로 다가오는 시퀀스를 경험하게 된다. 즉, 도심에서 숲으로 들어오면서 마음의 안정과 함게 박물관에 들어가 특별한 소리를 체험하게 되는 과정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알루미늄 파이프가 밖을 향해 큰 곡선을 그리듯 열려 있는 입구를 넘어서면 숲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착각과 함께 밖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계곡의 거친 돌, 시원한 알루미늄과 달리 내부는 부드럽고 따뜻한 나무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강한 향이 나는 편백나무를 알레스카에서 공수해 사용해 마감을 했다.
나무는 시각과 함께 후각으로 인간의 감각을 깨우기 위한 장치로 이용된다. 그리고 벽면을 자세히 보면 일반적인 나무 마감이 아닌 '우드 드레프트' 방식으로 랜덤하게 나무 폭에 변형이 들어가 있는 걸 확인 할 수 있는데, 이는 나무의 부드러움과 자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자함이다. 또한, 바닥을 카펫으로 처리해 발끝에 전달되는 안락함으로 공간에 부드러운 인상을 주고 관람객의 발소리를 줄여 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유도한다.
숲속을 산책할 때 우리는 땅 위로 솟구친 나무를 만져보고, 새들의 노래를 듣고, 꽃향기도 맡으며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며 탐험을 즐기며 숲을 느끼려고한다. 마찬가지로 오디움 또한 소리의 여정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감각을 일깨우며 탐험을 즐기게 유도한다. 150년간의 오디오 발전사가 쳬게적으로 정리된 장소 안에서 철저히 검증된 소장품들을 집요한 시각으로 관찰하게 하고, 오직 소리에만 집중한 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통래 청각을 몰두하게 하고, 공간을 채우는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으로 후각을 매료시킨다.
조형미가 돋보이는 밝은 공간에 들어서 가까이 다가가면 꽃의 형태로 이루어진 기둥이 유돋 돋보인다. 오디움 전시의 마지막이자 공간의 시퀀스가 절정에 다다르는 구간으로 부드러운 패브릭 소재로 공간을 가득 매웠다. 부드러운 패브릭 소재는 소리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고 패브릭 자체를 조형적으로 연출하는 것이 이 공간의 테마다. 또한 패브릭은 소리만이 아닌 빛까지도 부드럽게 변형시킬 수 있다. 패브릭이 지닌 부드러움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소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꽃의 형태에 도달했고 그 결과, 꽃이 지닌 화려함이 이곳에 전시되는 오디오의 여러 디자인과 어우러져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공간으로 완성되어 소리와 빛이 관람각들에게 특별한 체험을 선사한다.
예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은 많지만 오디오를 주제로 특히 '소리'에 집중한 박물관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장소다. 그 특별한 장소에 특별함을 부여하기 위해 기존 박물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질감, 빛, 바람, 향기, 등 온몸의 감각을 일깨울 수 있도록 하는 요소들이 깃든 건물은 단순 시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박물관을 넘어 한 단계 발전된 그 이상의 발전된 박물관의 모습을 보여줌과 함께 특별한 경험을 향유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방문해보길 바란다.
글, 사진 | yoonzakka
- 운영시간
개관 목요일 - 토요일, 10:00 - 17:00
휴관 일요일 - 수요일
- 인근 주차장 혹은 대중교통 이용 추천
* 본 전시는 14세 이상 관람객을 대상으로 합니다. 사전 예약 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티켓은 상설전시와 특별전시 모두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무료입장객을 포함하여 시간대 예약을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