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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zakka Oct 16. 2024

보는 것이 아닌 경험하는 것

박태준기념관

우거진 숲과 하얀 백사장이 그리는 곡선에 무연히 바다를 바라보기 좋은 고요함으로 가득한 임랑마을은 부산 기장에서도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소박한 마을이다. 이름마저 따뜻한 '임랑'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송림(松林)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波浪)의 두 글자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이곳의 나무와 농가 주택 3채가 있던 땅 위로 마치 알을 품듯 자연스럽게 둘러싼 형태로 지어진 건축물이 있다. 가족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고인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박태준기념관이다.



병풍 같기도 부채를 길에 늘여놓은 것처럼 보이는 알루미늄 패널은 성벽처럼 빽빽하게 감싸고 있는 부분도 있고 일부는 틈을 열어 두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패널은 사이사이 이음부를 만들어 다양한 각도에서 조립해 부드러운 곡면을 표현했고 은은하게 반짝이는 하늘색 알루미늄 외장재는 빛의 밝기에 따라 그 모습이 시시각각 변해 철이라는 소재가 가진 일반적인 거칠고 차가운 느낌에 반전을 준다. 



땅 위에 건축을 지을 때 특히, 기념관 같은 추모와 정보를 전달하는 건축은 시각적으로 강하게 부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시각적으로는 강하게 인식이 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다. 하지만 경험적인 것은 훨씬 더 강렬하게 인지되며 오랫동안 머릿속에 잔잔히 남는다. 가령 바람에 찰랑이는 나뭇소리라든지, 발자국에 부딪히는 자갈소리, 햇빛에 반사되는 빛과 그림자 같은 걷고 앉으며 느낀 경험들은 뚜렷하진 않더라도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다. 



기념관이 들어선 땅은 박태준 회장의 삶의 자취가 배어 있는 그 자체다. 기념관 내부에 들어서면 콘크리트가 그리는 둥근 호를 따라 발걸음이 이뤄진다. 뚫린 벽과 천장 사이로 들어오는 강렬한 햇빛의 그림자를 따라 

수정원에 들어서면 어떠한 소음도 나지 않는 고요함이 가득하다. 물·바람·빛이 어우러진 중정은 박태준 회장이 생전에 좋아했던 개잎갈나무가 정면에서 자리를 지키고 주변으로 작은 나무들이 감싸고 있다. 나무 아래는 포스코에서 재료를 가져다 만든 작은 철제 의자가 있는데 그 자리에 앉아 중정을 둘러보면 맞은편으로 임랑 마을을 지키던 200년 된 해송 두 그루가 정원에 고풍을 더하며 멋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콘크리트 벽 아래 뻥 뚫린 구멍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공간의 시각적인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중정에 서 있으면 벽이 밖의 공간이 되기도 벽에 서 있으면 천장이 뚫려 있는 자연을 마주하는 중정은 밖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 공간 경험을 하는 방문객들은 건물 자체를 둘러보는 단순한 과정이 아닌, 공간에 있는 순간마다 개인의 감각과 연결되어 공간과 상호작용하며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중정을 지나 다시 통로를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공간에 들어서면 단조로운 콘크리트 재료에 목재가 추가되어 공간에 반전을 꾀하고 은은하게 나는 나무 향이 코 끝을 스친다. 여기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중정의 풍경과 해송 두 그루의 당당한 자태를 보고 있으니 중정의 풍경에 다시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지나 화랑 밖으로 나오게 되면 건물 곳곳 녹슨 붉은 강철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입구의 기념비부터 수장고 외장재, 건물 곳곳에 설치된 벤치 모두 포스코에서 공수한 스틸 후판(두꺼운 철판)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이 붉은 철판은 단순한 건축 재료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짙어져 장소가 지닌 역사성을 묵직한 울림처럼 전달하는 메시지 역할이기도 하다.



멀찍이 건축을 바라보며 느낀 경험을 곱씹어본다. 공간을 구성하는 절제된 재료의 사용과 장소를 위한 장소로의 가장 순수하고 직접적인 표현에서 나온 간결한 공간 구성 등 이곳에서 경험하는 건축은 감각적이고 사유적이다. 바닷가 작은 마을에 자리한 건물은 바다의 소리와 함께 흐르는 시간 속에서 건축이 가진 시각적인 체험을 넘어 몸으로 체험하고 인지하는 본능적이고 본질적인 경험을 이끈다. 이곳을 방문해 무연히 걸어도 보고 앉아도 보며 떠오르는 그 모든 것들이 지극히 이성적일 수도 감성적일 수도 있지만 그저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글, 사진 | yoonzakka






- 운영시간

09:00 - 18:00(월요일 정기 휴무)


- 주차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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