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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를담다 Jan 08. 2023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마주하며

조르바였던 그대에게

"어젯밤 10시에 봤는데 무슨 소리야!'

"아침 7시에 그랬데. 출근한다고 택시에서 내려서 자기 차 문을 열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네"


뇌출혈이었다. 심장마비가 같이 왔다고 했다. 아침 일찍 받은 엄마의 전화에 손이 떨리고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이 모든 일이 단 20분 만에 일어났다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만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달이 저물고 해가 떠올랐을 뿐인데 언니의 남자친구는 한순간에 우리와 다른 반대편 세상 속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가슴 아프지만 남의 일 같았던 이태원 유가족들의 울부짖음이 생각났다. 조금 전까지 옆에 함께 밥을 먹던 아이가, 친구가, 가족이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처럼 도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 하루를 시작하고 있던 나는 더 이상 어제와 같은 하루가 아니. 분명 어젯밤 내일을 기약하며 그와 즐겁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의 얼굴과 표정, 말투 행동 하나하나까지 남김없이 이렇게 생하게 살아 있는데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다고 했다. 엄마의 전화가 사실이 아니기를 라며 침대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을 모습을 상상 병원을 향했지만 냉담하고 차가운 현실은 그렇게 또 한 번 나를 비켜갔다. 도착한 병원에서는 이내 나를 영안실로 안내했고 차디찬 공기만이 가득한 그곳 흰 천으로 감 그와 그의 머리칼을 만지며 서 있는 언니 그리고 달리 표현할 길 없는 묵직한 슬픔만이 존재했다. 꿈이기를 꿈꾸었지만 이토록 생생한 꿈이 있을 리는 없었다. 내 기억 속에 남은 그들의 계절은 여전히 여름이었고 내가 두발을 딛고 서있는 계절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들뜬 겨울일 뿐이었다. 살아있는 이의 살결에 닿는 매서운 추위가 현실적이지 않게 야속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고 사랑만 주고 갔어'


듬직하게 자리를 잡은 그와 언니는 꽤 근사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 번의 이혼을 겪은  그를 처음 만났던 나이였던 18살 아들의 엄마가 된 언니는 준비 없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앞으로의 삶이 여러모로 버거워진 듯 보였다. 따스했던 미래가 미지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이 아픔을 거두기까지, 이 모든 일들이 아련한 추억이 되어 언니 가슴속에 간직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만 가능할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허망하고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사랑만을 주고 갔다는 언니의 말처럼 세상 그 어 남자에게도 받기 힘든 완벽하진 않지만 완전한 사랑만을 주고 갔다는 것 그 자리에 온 누구도 의심하 않다. 진실로 받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오로지 언니만을 담아낸 그의 '너른 품의 그런 사랑'이 남겨진 우리에겐 위안이 될지 고통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 었지만 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나머지의 삶을 살아 만 하는 것 고스란히 우리들의 몫으로  남다는 것만 확실했다.


우스개 소리를 통해 '무소유'를 외치며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살던 그장례가 끝이 났다. 갑작스러웠던 그에겐 정리해야 할 짐도, 태워야 할 옷가지도, 그렇다 할 물건마저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나마 아끼던 소유물이라 불릴 만한 물건은 언니와 함께 한 사진과 일을 위해 찍어 놓은 사진이  담긴 휴대전화 하나뿐. 오로지 그것만이 그의 44년간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가엽게 느껴졌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족과 왕래가 없던 탓에 우리 집에 오는 것을 즐기던 그는 집안에 감도는 우리 집만의 따스한 온기를 참 좋아했다. 우리가 '가족'임을 누구보다 행복해했고 자신의 무엇도 아깝지 않아 할 만큼 우리 가족을 챙겼다. 이렇게 그를 그리다 보니 '가장 용감한 늑대는 배고픈 늑대'라는 구절이 생각이 났다. 장례식장에서 뒤늦게 들은 말이지만 우리 가족 앞에서는 한없이 순하기만 했던 그는 부당한 일에는 그 누구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주장했고 그로 인한 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지금의 일들을 당차게 지켜나갔다고 했다. 자신보다 더 힘든 삶은 그냥 지켜보지 못하고 남은 재산을 털어줄 만큼 애잔하게 챙기기도 했다고. 장례식장에서 아들의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정신적으로 아프신 그의 어머니를 보며 헤아릴 수 없는 그의 깊은 가족사를 떠올렸다. 그간 그의 삶이 배고픈 늑대의 몸부림이었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마음이 한켠이 아려다.


조르바와 같은 그의 일생을 감히 내가 어떻게 다 설명해 낼 수 있을까? 약자에겐 너그럽고 강자에겐 강했던 그가 조르바의 성격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유는 면의 결핍과 더불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러 가지 연기를 펼치다 그나마 가장 알맞다고 생각한 생활양식을 선택해 만들어진 라이프스타일이 굳어진 것은 아니였을까. 과연 그는 본래의 자기 자신으로 살다사라진 것이 맞았을까? 아들러가 이야기한 '나의 고유성은 타자에 의해 부여된다'말의 의미가 서글퍼지는 그런 밤이다.


누군가는 내 삶에 왔다가 금방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곁에 머물지만 그들 모두 내 가슴에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당신이 내 삶에 나타나준 것에 감사한다. 그것이 이유가 있는 만남이든 한 계절동안의 만남이든 생애를 관통하는 만남이든 <류시화/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해 언제일지 모를 우리부의 죽음 떠올려보았다. 그동안 우리 부부의 삶은 꽤나 심플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물건 사지 않고 아껴 쓰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지구와 환경을 지키면서도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 다. 나를 안타깝게 바라볼지도 모를 타인의 시선신경 쓰지 않겠노라며 (실상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데 ) 나를 옭아매며 있지도 않은, 혹여 있더라도 소수일 뿐인 타인 시선을 거둬내기 바쁘기만 했다. 계기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지 타인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은 못돼'  내안에서 나를 다그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네가 그렇게 자신을 못살게 굴며 되고자 한 모습들은 요 근래 네가 세운 강력한 목표 중 하나일 뿐이었으며 출가 한 스님처럼 타이트하게 그 삶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야기 했다. 네가 의미를 부여한 대부분의 삶은 오롯이 너의 선택에 달린 문제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말을 덧붙이면서.


그랬다. 평범해질 용기가 부족했던 나는 나 자신에게 특별함을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 까지 큰 의미를 채워 넣으며 야금야금 나를 소진해가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누구를 동경하며 닮아가려 애쓸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유지했던 삶이 나에게 도움이 되고 안 되고는 다만 내가 선택하면 될 일이었다.  모든 것은 순수하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였고, 나를 옥죄며 이번 생에 꼭 해내야만 하는 숙제도 아니었다. 그동안의 나는 좋아 보이고 훌륭해 보이는 그 누구를 따라 하는 한 사람이었을 뿐 진정한 나로 살진 못한 셈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그렇게 또다시 나 자신을 알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자비심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 자비심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고 내 것을 빼앗기면 화나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을 보면 부럽고 질투 나는 그냥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어떨 때 행복하고 기쁜지' 내면 깊은 곳의 내 영혼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심플한 미니멀라이프의 삶은 그렇게 잠시 접어두기로 마음먹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나는 남겨진 아이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지 않도록 물건이든 생활이든 적당히 좋은 것들도 내 삶 속에 채워 넣겠노라 다짐했다. 유서 그따위 것은 저승에 가서도 이승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심을 못 버리는 사람이 쓴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미니멀이라는 이름을 빌려 단출한 살림을 유지하던 나의 내면의 얄팍한 술수가 허무하게 탄로 난 셈이다. 내가 이토록 떳떳하게 살아갔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었던 나만의 욕심이었다는 생각을 다시금 돌이키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떠날 때 남겨진 게 없어 남은 자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 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내 형편에 넘치지만 않으면 적당히 쓰면서 살아야지. 이참에 환경 생각, 가계생각을 하며 사지 않았던 장바구니에만 머물러있던 옷을 사고 신발을 사고 가방도 사버렸다.




뜻밖의 죽음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에 비해 서둘러 사라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때론 공포소설보다 더 무서운 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는 우리에게, 늘 거기에 있었지만 우리가 보지 못했 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 고민하면서도 당장의 눈앞의 일들을 해치우느라 바빴던 나는 죽음을 내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 오판하는 오만한 한 사람일뿐이었다. 당장 코앞에 벌어질 한 치 앞의 일도 모르면서 언제 올지도 모를 먼 미래를 그려나가느라 현재의 나를 챙기지 못하고 못살게 느라 너무나도 바빴다.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가지 말고 눈에 보이는 지금 이 자리에서 주어진대로 나 자신을 사랑해야한다. 내가 우주고 세상이고 신이 되어야만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내 마지막 삶을 목표만 쫒다가 보내면 안  일이었다. 이것이 목표인지 내가 살고자 했던 삶인지 구별해 낼  있는 눈을 길러야만 한다. 그러자 문득 윤슬 가득한 바다를 볼 수 있는 내 두 눈과 거기까지 갈 수 있게 해 준 건강한 육체에 대한 감사함이 쏟아지듯 밀려왔다.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는 것과 아직까지 탈없이 건강한 신랑과 두 아이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고 길을 걷다 느껴지는 코끝에 닿는 바람의 스침과 길가에 핀 꽃 한 송이와 지나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지.. 어느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 날을 만났다. 매일 주어지는 일상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것이 아닌가 되돌아보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새기기로 했다.


사람들은 살아온 대로 죽는다고 한다.

자신의 본질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내려면 그만큼의 고통이 따를 것이다. 나의 본질이 어떠한지 고독과 사색을 통해 끊임없이 묻고 답을 해야 할 것이다. 마음속 한편에 티끌만 한 걸림이라도 있다면 그건 무언가가 어긋난 것이 틀림이 없다. 그 티끌을 없애는 것이 나의 영역이 아닐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스스로 구분해나가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저절로 손을 떼고 지켜볼 수 있게 될 것이며 그 사실을 하게 받아들이며 흐르는 시간에 나를 내 맡길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는 늦지 않게 마무리 짓는 것이 내가 나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 아닐까.  


'아침에 일어나면 조용히 앉아 나는 금방 죽는다고 서너 번 중얼거린다. 그러면 적어도 그날 하루는 덜 쩨쩨해질 수 있다. 최소한 그날 오전까지만이라도 덜 쩨쩨해질 수 있다. 나 자신을 번잡하고 부산스러운 곳에 두는 일을 그나마 조금 줄일 수 있게 된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급한 일이 쓸 수 있게 된다. 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사는 것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보면 나는 아직 덜 죽은 것이 분명하다. 더 철저하게 죽어버려야겠다' <최진석/경계에 흐르다/소나무출판>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운전하는 순간/길을 걷는 순간/수영을 하는 순간/인파가 모인 곳에 가는 순간/등 나는 늘 일상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의 모호함을 느낀다. 사실은 일상에서 그 모호함을 느끼고자 일부러 더 애를 쓰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할 수 없어 알 수가 없을 뿐 우리는 그 어떤 순간에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한 날이면 말이라든지 물질적이라든지 행동이라던지 베풀 수 있는 마음의 너른 품이 생긴면서 하루를 의미있고 소중하게 살아갈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좋지 않은 말은 삼갈수 있고 되도록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관계가 회복되거나 가까워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받는 것은 마음 한에 부담으로 남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베푸는 것은 동정으로 치우치지만 않는다면 내가 잘 살아가고 있다는 표식이 되기도 한다.


'섬진강 가 집에 나를 방문하는 그녀도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거겠다 싶으니 그녀를 맞는 내 마음은 더 애틋해졌다.'<공지영 산문/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이 한 문장이 내 마음속 깊이 녹아든다. 늘 같은 일상과 상황들에 치여 미래만 보며  어차피를 외칠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모든 삶을 애틋하게 살아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한다. 아이의 눈을 한 번 더 마주치고 살결을 스치며 서로의 체온을 느끼 살아있음에 감사해야겠다. 내게 주어진 오늘 이 하루가 어제와 같은 일상이 아니라 오늘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하루인 듯 소중하고 애틋하게 살아야겠다. 가슴을 연채로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 안의 영혼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내면과 외면의 균형을 잘 이루어 나가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내 안의 늑대의 불평불만을 잘 어루만져 진실된 나로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묻고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어제와 같아보이지만 전혀 다른 오늘을 나는 또 살아갈것이다.

그것만이 살아남은 이들의 도리가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고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에게.

<눈이 부시게/김혜자 내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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