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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Mar 11. 2024

대화 중 기억해야 할 것들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한다. 난 I와 E성향이 비슷한 정도지만 E성향이 조금 더 많은 거 같다. 친구나 사람들을 한동안 만나지 못하면 기운이 빠지고 자꾸 저 아래로 꺼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혼자라도 나가서 마구 걸어 다니거나 정기적으로 친구들을 만나 수다도 떨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에너지가 생긴다.


그런데 E이기만 한 것이 아닌 게 그렇게 즐거운 만남을 하고 돌아와서는 '내가 너무 혼자만 말을 많이 했나? 누군가의 말에 괜히 토를 달았나? 너무 잘난 척하는 거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걱정을 한다. 그래도 요즘엔 그런 순간들을 알아차리려는 노력을 해서 좀 나아졌지만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정신 줄을 놓으면 따라잡을 새도 없이 말들이 저 앞을 달려 나간다.


뒤늦게 머리채라도 잡아와서 “그러냐”고 혼내주고 싶지만 내 말들은 이미 여기저기 쏟아져버린 후다.


많은 자기 계발서나 영성 책들에서 ‘말을 조심하라, 침묵을 지켜라’ 같은 말의 무게에 대한 심각성을 알려주는 내용을 넘치게 읽었음에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다시 한번 다짐하는 의미로 대화 중 조심해야 할 내용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1. 타인이 이야기 중일 때는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라! -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집중해서 듣기보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와 비슷했던 경험을 덧붙인다. “나는 더 했어”라는 뉘앙스로.


처음에는 공감의 의미로 ‘나도 그런 경험을 했는데 ’라고 시작하지만 결국 더 흥분해서 이야기를 주절대며 관심을 나에게로 옮겨오는 경우가 많았다. 제발 ‘그냥 들어, 말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라’는 말을 해주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 많다.


2. 불평불만을 말하지 말자. - 지나간 빌런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꾸 꺼내게 된다. 그 당시 반박하지 못한 억울함이 남아 그런거는 이해하는데 자꾸 안 좋은 옛날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과거 엄마에 대한 불만, 나에게 잘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똑같은 이야기를 자꾸 꺼낸다. 반복해서 듣는 상대방을 생각해서 이제는 그만 투덜대자. 내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고 남들 앞에서 불평불만을 그만 말하자.


3. 꼭 할 말이 없을 때는 침묵하는 게 더 낫다. - 난 대화의 공백을 잘 못 견디는 사람이다. 침묵이 생기면 어색해서 대화가 끊김 없이 이어지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침묵을 견디는 힘을 기르고 싶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에너지를 침묵의 어색함을 견딜 수 있는 힘으로 바꾸고 싶다. 이렇게 말이 많다 보니 실언을 하는 횟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실수하느니 어색함을 참는 게 낫다는 걸 명심하자.


4. 할까 말까 망설이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 할까 말까 망설이던 말을 해서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 특히 다른 사람 이야기일 때 그렇다. 아무리 뒷담화가 아니라 그 누군가를 위해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망설임이 일어나는 일에는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낫다. 망설일 만한 일은 먼저 입에 올리지 않는다.


5. 조언이나 충고하지 않는다. - “인간의 영혼은 조언을 듣거나 바로잡아지거나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주고, 들어주고, 동반자가 되어 주기를 원할 뿐이다.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의 영혼에 깊은 절을 할 때, 우리의 그러한 존중은 그 사람이 고통을 극복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류시화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라는 책에서 파머라는 학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나이 들어 경험이 많아지고 아는 게 많아지면서 자꾸 조언이나 충고가 튀어나오려는 순간이 많다. 충고를 듣는 입장에서 너무 힘들었던 경험이 있기에  안 하려고 노력하지만 조금만 느슨해지면 튀어나오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이러니 저러니 조언을 하면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지금 이 고통을 겪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할 뿐인데 본인은 잘나서 그런 일 따위는 겪지 않는 듯이 위로를 가장한 충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힘들겠다. 그래도 잘하고 있어’라는 한마디면 족한데 이래라저래라 하면 분노가 폭발한다.


엄마를 모시고 살 때 그렇게 이야기하는 주변인들이 있었다. 그저 “힘들겠다. 치매 엄마 모시는 일이 얼마나 힘든데”라고만 하면 되는데 “그러려니 해야지”, “치매에 걸린 엄마가 너무 안됐다고 생각해야지”라고 이야기하면 내가 그러려니 못하는 속 좁은 사람같이 느껴지고 치매 걸린 불쌍한 엄마 욕이나 하는 나쁜 딸인 거 같아 절망스러웠다.


지금까지도 그 일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엄마를 모시면서 그러려니 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화내고 그 누구보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그런 말들은 말할 수 없이 큰 상처가 됐다.


그런 상황에 있어본 적도 없으면서 입바른 충고를 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그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만을 표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마음의 품이 넓고 병든 부모를 안쓰러워 하는 착한사람인 척 하는거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의 고통에는 관심도 없고 자신의 이상적 자아상만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경험으로 누군가 힘들 때 조언하고 충고하는 일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알게 됐다.


아직도 다 고치지 못한 대화 중 저지르는 나쁜 습관들을 정리해 놓고 또 후회가 밀려들 때 찾아봐야겠다. 자주 찾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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