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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Jul 15. 2024

경외심을 찾아서

- <AWE 경외심>을 읽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일이 수치심이나 죄책감 같은 부정적 감정을 곱씹거나 누군가를 비난하고 미워하면서 보내는 일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다라는 것을 나에게 계속 일깨우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노력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 찾아오는 생각들은 대부분은 그런 부정적 감정들이다. 늘 똑같다. ‘엄마가 저지경이 되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었을까?’라는 끝없는 생각, 누군가의 의미 없는 말을 오해하고 넘겨짚으며 곱씹고 있거나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다.


그런 감정들이 싫어 기껏 피한다는 게 드라마 몰아보기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유튜브에서 길을 잃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더 기운이 빠지고 몸이 나빠진 느낌이 든다.


그 감정들에서 날 보호하기 위해 허상의 영상 속으로 피해 다녔지만 또 다른 불필요한 감정들이 생겨나고 교묘한 사회적 부추김에 걸려들고 만다.


그러고 남는 생각은 허무주의와 염세적 세계관이다. 이런 의미 없고 불쾌한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은 손쉽게 우리를 점령한다. 뭔가 대단한 발견이고 내가 똑똑해서 알아낸 진리가 아니라 깨어있지 못하고 제대로 내 생각을 들여다보지 못하면 결국 이렇게 흘러가는 게 인간의 사고 체계다.


부정적 감정이나 염세주의는 큰 노력 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끌려가는 생각이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그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허무주의를 합리화하기보다는 아름다운 것과 경이로움을 찾아내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그런 순간을 찾기 위해 모색하는 동안의 내가 훨씬 좋고 살만하다고 느껴진다. 인생의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라는 질문이 사라진다.


좋은 것을 의식적으로 찾아 나서는 게 인간적 의지를 발휘하는 일이다. 그것이 어쩌면 더 성숙한 삶의 자세일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어린 시절 계곡에서 잠수하며 느꼈던 그 조용하고 아름답던 물속의 평화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영화 <E.T>를 보고 매일 마당에 나가 별을 찾아보며 느꼈던 벅차오르는 감정이 사춘기 시절의 우스운 짓이 아니었다.

알라딘에서 가져 온 책표지


<AWE : 경외심>이라는 책에서 “스필버그는 그 빛, 수많은 별들, 광활한 밤하늘,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별빛을 만들어 내는 경외심을 자아내는 패턴을 똑바로 응시하기도 하고 시야 가장자리를 스치듯 보기도 하며, 다양하게 관찰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이것이 바로 <E.T>와 <미지와의 조우>를 통해 그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삶의 경이였다.”라는 내용을 보았다.


그의 경외심이 만들어낸 작품은 그 영화를 본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같은 감정을 선사했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오랜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어린 시절 느꼈던 그런 감정을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또 다른 경외심과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내가 평생 가지고 온 그런 흔치 않은 순간들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경외심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경외심은 끊임없이 종알거리는 자기비판적이고 위압적이며 사회 지위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마음속 자아의 목소리를 잠재움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타인과 협력하고 경이에 마음을 열며 삶의 심오한 패턴들을 알아차릴 수 있는 힘을 얻게 해 준다”라는 내용이 내가 느낀 그 순간들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남아 나를 위로하는지 알게 됐다.


작년 8월에 블루문이 떴다. 한 달에 두 번 보름달이 뜨는 경우 두 번째 뜨는 달을 ‘블루문’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이 두 보름달 모두가 슈퍼문이 되는 것은 2018년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그 기사를 보고 그날 달이 뜨는 시간부터 계속 베란다를 내다봤다.


드디어 블루문이 떴는데 그렇게 환한 달은 생전 처음 봤다. 해만큼 환하게 빛나는 달을 보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밖으로 나가 가까이에서 보니 그 경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감정을 혼자 간직하기 벅차 친구들 카톡 방에 올리고 가능하면 나가서 보라고 알려 주었다. 친구들 중 몇 명도 나가서 봤다고 한다. 각자 본 달 사진을 올리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직접 찍은 블루문


그 크고 밝은 달은 계속 내 마음속에 남아 나를 밝혀주고 위로해 주고 있다. 인생이 이토록 평범하고 하찮아 보이는 하루하루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확신을 준다. 그 달을 보는 순간은 현실의 자질구레한 걱정들이 사소하게 느껴지고 좀 더 큰 사람이 되게 해 준다.


“경외심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일부인 상실과 트라우마를 딛고 치유와 성장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라는 내용도 우리가 왜 좀 더 자주 경외심을 느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역사 속 인물을 예로 들면 뉴튼과 데카르트는 모두 무지개를 보고 경외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 경외심으로 위대한 역사적 성과를 이루었다고 한다.

최근 몇 년간 본 무지개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할 것이 바로 이런  아닐까? 태어나면서부터 영어를 들려주고 숫자를 알려주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학습 전시회에 끌고 다닐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놀고 경험하게 해주는 일이 가장 필요한 일일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너무 어린 시기부터 자극적인 영상에 익숙해지면 아름다움과 경외심을 느낄 능력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것이 너무 안타깝다. 무지개와 달과 별조차 과장되게 표현된 영상보다 못하게 느껴질까 봐 속상하다.


우리 세대는 그래도 어릴 때 자유롭게 자연 속에서 실컷 논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아무리 좋아하는 연예인과 영화가 있어도 TV에  나오지 않으면 볼 수 없었고 그 외의 시간엔 책도 읽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이 많았다.


요즘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인터넷으로 24시간 들여다볼 수도 있다. 여유시간 전부를 그렇게 영상 속 허상에서 보낼 수도 있게 됐다. 별과 달을, 무지개를 볼 수 없게 됐다.


별을 보고 희대의 명작을 만들어낸 스필버그나 “은하계에 경외심을 퍼뜨린 사람”이자 <스타워즈>의 모티브였던 신화 속 경외심에 이끌린 영웅들의 여정을 “ 다루는 책을 쓴 종교 학자이자 신화학자인 조지프 캠벨이 더 이상 세상에 나오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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