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종 Nov 29. 2023

삶을 발명해 내는 사람들을 찾아서

- < 삶의 발명>을 읽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인 11월이 허무하게 가고 있다. 이번달초부터 감기에 걸려 친구들과 가기로 한 여행도 취소하고 골골대다 겨우 나아갈 즈음에 또다시 A형 독감에 걸려 지금까지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


이렇게 골골대면서도 약 먹고 조금 나아지면 책을 읽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주워 모으고 있다. 내가 정말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많이 쉬고 대부분의 시간을 넋 놓고 텔레비전을 보며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거나 누워있지만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좋아지면 책을 읽거나 예전에 모아두었던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며 그 아름다움 속에 푹 빠져 정신과 몸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요즘 많이 생각하는 이야기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오가와 요코의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에서 발견한 이야기다. 이 작가도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부자로 태어나거나 왕자에게 선택받아서 특별한 게 아니죠. 자기만의 비밀 정원을 가질 수 있고, 자기가 자기이도록 지탱해 주는 장소를 만들 수 있고, 그 장소를 가슴에 간직할 수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야말로 그 사람에게는 특별함이 아닐까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비밀정원이라는 게 있다는 확신과 공중누각을 짓는 것 같은 일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문장에 위로를 받는다. 현실에서 좌절하고 회의감을 품을 때 이 문장들이 날 지지해 준다. 생각을 하고 상상을 해야 현실이 된다. 지금은 한낱 물거품 같고 모래성 같아도 꾸준히 생각하고 상상하며 매일 나아가면 언젠가 나에게도 현실감 있게 나타날 날이 있겠지라고 기대해 본다.


인간의 모든 문명과 발명품들은 모두 사소한 상상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자신의 비밀정원에 몰두해서 이루어낸 것들이다.


세상의 아름다운 이야기, 나에게 좋은 길을 알려주는 이야기, 흔하게 보기 어려운 삶을 창조적으로 일구어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는 일이 너무나 좋다.


최근에 새로 출간된 정혜윤 작가의 <삶의 발명> 아라는 책에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는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큐의 제작자인 크레이그 포스터의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크레이그는 번아웃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어린 시절 자신에게 평안을 주었던 바다의 품속으로 돌아가기로 다. 매일 바닷속에 잠수하던 중 문어를 발견하고 1년간 관찰하며 친밀감이 더해져 교감하게 된 이야기라고 한다.

dinnernin's playlist 블로그에서 가져온 <나의 문어 선생님 다큐> 장면


“찬 바다에 365일 들어가는 것은 크레이그 스스로 만들어낸 즐거움이다. 크레이그는 진정으로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발명해 낸 셈이다. 나는 바로 이런 발명 - 스스로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 이 ‘삶은 소중하다’는 말이 뜻하는 바라고 느낀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우리가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다.”


“그는 이미 수많은 생명이 사는 더 큰 세계와 연결되면서 깨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전에 없던 생명의 에너지가 몸속 여기저기를 흘러 다니는 경험을 했다. 그것을 (크레이그의 친구인) 로스는 (마음속) 주먹이 펴지는 느낌이다라고 표현한다. 아주 멋진 치유와 해방의 표현이다.”


“나는 이렇게 자아를 실현하면서 삶을 살아내는 것을 삶의 발명이라고 부른다.”라고 작가는 덧붙인다.


나는 진짜 바닷속을 탐험하고 바닷속 생물들과 교감할 용기는 없지만 이렇게 여러 책들을 유영하며 좋은 문장과 글귀들을 길어 올리는 삶을 찾아냈다.  


최근에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나 <나를 지키기 어렵다>에 쓴 글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해답을 문장들 속에서 찾아냈다.


다른 삶의 모습을 찾아내고 거기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흥미를 끈다. 나에게 그런 욕망이 많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용기는 없었지만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고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서 희망을 다.


내가 한창 미래를 준비해야 할 20대에도 현실적인 직업을 찾고 추구하는 일보다는 이런 일에 몰두했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그때도 남다른 삶을 살아간 사람들을 책이나 영화에서 찾아보고 연구하는 일에 골몰했었다. 그런 삶에 비추어진 내 현실은 너무 시시해 보여서 창의적인 삶을 살려면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그렇게 어영부영 있다 보니 남들이 가는 길들을 생각 없이 따라갔고 현재에 도달해 있었다.


소극적으로 추구하기는 했었다. 인형극 동아리를 하면서 인형을 만들고 대본을 쓰고 목소리를 녹음하고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내는 일에 큰 매력을 느꼈었다. 그래서 마음이 맞는 친구와 러시아에서 온 인형극단의 공연뿐 아니라 많은 인형극을 보려 다니고 모여서 인형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곤 했었다. 인형극단을 찾아다니며 평생 이 일을 하고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이 일을 하며 사는 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나는 참 한결 같이 평범하지 않은 창의적인 삶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었다. 결혼과 육아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지금도 내가 좋아해서 아픈 것도 잊고 몰두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 난 이야기를 모으고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찾아 나의 정원을 가꾸길 원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현실에서의 성과나 결과물을 가끔 부러워하고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현실감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게 내 본성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회의감에 빠지지 않고 옆도 돌아보지 말고 차분히 나의 길을 가겠다. 두 개의 세계가 반목하고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인으로 잘 살아나가면서도 나의 본성이 원하는 모습을 향해서도 꾸준히 나가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수집, 스몰 컬렉팅>을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