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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Nov 15. 2024

창조력을 어디에 쓸까요?

<생활 속 예술가>라는 제목으로 매거진을 연재하고 있다. 그림 그리기에 푹 빠지면서 그 주제에 더 몰입하고 있다. 창조적 생활에 대한 글을 자꾸자꾸 쓰고 싶다. 그림 그리기가 재밌는 만큼 창조적 삶에 대한 글쓰기도 재밌기 때문이다.


뭔가를 만들어내면서 느끼는 그 순간의 즐거움으로 모든 보상이 주어진다. 그 시간의 밀도로 난 충만해지고 더 이상 바라는 마음이 없어졌다. 매일 그림을 그리며 나만 아는 조금씩의 성장에 뿌듯해하고 그런 나의 생활을 기록하면서 단정하고 소박하게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기쁘다.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게 된 건 아닌 거 같다.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게 뭔지 싫어하는 게 뭔지 찾으라는 책 속의 조언을 충실히 따라가 봤더니 난 늘 그림과 책, 글쓰기, 음악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는 걸 알아냈다.


어떤 특정 직업을 갖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이유, 내가 찾는 게 뭔지 모호했던 이유 다 창조적 일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두드러지는 재능을 보이는 자에게만 그 입장이 허락되는 거 같았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 매직>이라는 책에 보면 “기록으로 남아있는 인간 예술 행위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 4만 년 전의 작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가장 오래된 증거는 1만 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바로 우리가 가진 집단 진화 의식 속에서 매력적이면서도 실생활에는 불필요한 잉여 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우리가 훨씬 중요하게 여겼음을 입증한다”라는 구절이 큰 재능이 없음에도 내가 이런 일들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창조적 산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 모든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열망이라니. 나 좋으라고 하는 글쓰기, 그림 그리기, 피아노 치기가 인간에게 허용된 가장 유용하고 긍정적인 중독행위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누군가에게는 뜨개질, 인테리어 하기, 요리하기, 옷 만들기 등등 자신만의 창조적인 목록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만일 내가 활발하게 창작에 전념하고 있지 않다면 아마도 활발하게 뭔가를 파괴하고 있을 것이다.(나 자신이나 인간관계 혹은 나의 내적 평화 같은 것들을), 우리 모두 인생을 살면서 뭔가 해 볼일을 찾아야 한다고 거실의 소파를 와작와작 뜯어먹지 않도록 막아 줄 뭔가를 찾아낼 필요가 있다고 확신한다”라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 웨이>라는 줄리아 카메론의 책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엄마는 무서울 정도로 나와 형제들의 인생을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했어. 우리 모두 엄마가 ‘단지’지루해서 그런다는 걸 알지만, 그건 여전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이야” “우리의 창조성은 어떤 식으로든 발휘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의식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내용을 보면 인간의 창조성은 거의 본능과 같기에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발휘되기 마련인데 방향이 잘못 지워지면 주변인을 간섭하고 괴롭히는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자식을 자신의 창작물처럼 대하면서 계획하고 통제하려 할 때 자식들의 고통은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런 고통을 당했거나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문제는 성인인 우리가 다른 이들의 일에 간섭하면 그들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심각하게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분함과 좌절감이 처음의 선한 의도를 가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 자신의 창조성을 훈련하고 더 나은 쪽으로 우리 자신을 확장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일에 참견하느라 노닥거릴 새가 없다. 우리는 만족스럽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불만스럽게 만들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지 않는다.”


그 많은 에너지를 어떻게 분출해야 할지 몰라 술이나 약물에 의존하고 서로를 견제하고 과시하는 불필요한 모임을 하고 과소비를 하고 부정적인 과거를 곱씹으며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렇게 힘을 다 소진한다.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아이에게 쏟는다. 그 힘에 짓눌린 아이는 그 힘을 방어하는데 에너지를 소진하게 되어 자신에게도 창조력이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나에게도 아주 작지만 이런 창조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이유다.


속세의 일상과 주어진 역할을 넘어서 내가 되는 시간을 창조적 활동을 하면서 가질 수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시간은 누구의 엄마도, 딸도 아닌 그냥 나 자신으로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림을 그리면서는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하고 명랑한 내가 드러나고 글을 쓰면서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성찰하고 고민하는 어른스러운 내가 나타난다. 뭐가 됐든 속세의 나보다는 더 바람직하고 내가 좋아하는 나로 설 수 있는 시간이다.


 “어쨌거나 그러면 당신은 도대체 뭘 하면서 이 지구상에서 시간을 보낼 것인가? 뭔가를 만들어 내지도 않으면서 재밌는 일도 하지 않고?”라는 <빅매직> 속의 이 질문을 한 번씩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 많은 시간을 남이 만들어 놓은 것만 구경하며 보내기에는 늘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아무리 좋은 영화와 드라마를 봐도 보고 난 후 헛헛함이 밀려들 때가 많았다. 남들은 저런 것들을 만들어내며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난 소파에 앉아 남이 만들어 내는 세상을 구경하는 주변인으로 살다 죽겠구나 싶어 마음이 우울해지곤 했다.


이상하게 뒤틀린 거친 그림을 그리고 시시한 글이나 쓰는 우스운 사람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게 하는 힘이 있는 일이다. 남이 만든 화려하고 멋진 작품보다 별거 아니라도 내 것을 만들어내는 시간의 매력이 그 모든 것을 감수하게 만든다. 글을 쓰면서 겨우 이 정도 생각밖에 못하는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낱낱이 까발리며 납작하게 평가받는 장에 나서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하다. 마음이 경이로움에 가득 차고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거 같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남의 작품을 평가만 하던 나는 그 보다 나은 사람인 거 같은 착각이 들어 오히려 자만심을 채울 수 있기도 했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저런 작품을 보고 문제점을 찾아낼 정도면 더 나은 것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그랬기 때문에 잘 아는 심리다. 그렇게 수준 높은 취향과 생각을 갖은 사람인척 살았지만 그저 남의 작품을 구경만 하는 주변인이었고 나의 창조적 에너지는 자꾸 파괴적인 방향으로 흐르곤 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몇 날 며칠 곱씹고, 아이들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다.


지금은 그럴 틈이 없다. 내일 그릴 그림을 위한 사진이나 풍경을 찾아다녀야 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연구를 하느라 하루가 부족할 지경이다.


내 그림이 뭔가 미묘하게 뒤틀리고 어색한 것은 구도 잡는 법이나 원근법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선을 긋는 기본기도 안 되어 있어 그림이 늘 휘어져 있다. 대학 입시를 위해 하루 12시간씩 그림을 그린다는 전공자의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그런 문제점을 찾고 개선하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색연필에 물감까지 사용해 보면 어떨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나 인스타나 유튜브로도 배우다 보면 누군가의 거슬리는 말이나 행동을 곱씹을 시간이 없다.


원근법에 맞게 그려보기 위해 책도 사서 공부하고 있다. 더 좋은 색연필의 색감이 어떤지 알아보고 연습용 스케치북을 사러 문구점 나들이도 한다. 그 모든 일들이 다 설레고 기분 좋은 일들이다.


이렇게 할 일이 많다. 글도 일주일에 한두 번 올리기 위해 내가 썼던 글들을 뒤져보며 연관된 내용을 잘 연결하기 위해 메모도 해야 하고 관심 있는 새 책들이 쌓여있다.


내 일로 촘촘하게 채워진 일상이 맘에 든다. 인간관계에 대한 불만이나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이런 일에 만족감을 느끼기에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스스로 단단하게 서 있는 느낌이 든다. 남에게 의존하는 게 아니라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족들에게도 나의 의무는 다 하지만 서운함이 들지 않는다. 그냥 내 삶에 집중하게 되고 만족스럽다. 언제까지 이 일이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마음으로는 죽을 때까지 그만두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행복하기 때문에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질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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