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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Dec 23. 2024

생활 속 예술가 되는 법

프롤로그

<유아 문학 교육>을 강의할 때 교재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아이를 매일 미술관에 데리고 갈 수 없다면 그림책을 보여주면 된다.’ 문학적, 예술적 가치가 있는 훌륭한 그림이 담긴 그림책을 매일 본다면 일상에서도 아이의 예술적 소양을 키워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화풍과 기법으로 그려진 흥미진진한 내용의 그림책을 보여줄 때 ‘생활 속 예술가’로 살아갈 기초가 다져지게 된다.


'아이들은 화가로 태어난다', '음악가로 태어난다', '과학자로 태어난다'와 같은 표현이 실제로 유아미술교육, 유아음악교육, 유아과학교육 교재 1장에 나온다. 그렇게 우리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고 태어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고 실험해 본다.


아이들이 평소에 듣는 생활 속 소리, 자연의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와 노래들이 모두 음악이 된다. 아이도 그런 소리를 만들어 보기 위해 밥상에서 숟가락을 두드리고 누나의 책을 쭉쭉 찢어본다. 문제를 일으키려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음악을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감정을 아직 언어로 충분히 표현하기 서툰 아이들은 그 마음을 마구 칠하는 붓질로, 최선을 다해 그린 찌그러진 동그라미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서툰 그림으로도 따뜻한 의사소통을 경험한 아이는 평생 그 소중한 또 하나의 의사소통 기술을 떠나보내지 않을 수 있다.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의 창시자인 로리스 말라구찌는 ‘아이들의 백 가지 언어’라는 철학을 제시하며 아이들의 그림, 동작 표현, 작업물, 발명한 글자로 만든 모든 것을 의사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자발적 탐구와 표현을 중요시하며 관심을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유아 예술교육 과목들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나 자신도 다시 한번 유아기로 돌아가 예술가로 키워지는 거 같았다. 다시 피아노를 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아이 때의 천진난만한 행복감을 느꼈다. 그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서 다른 순간적 유희들은 그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예술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강의하면서 내 속에 숨어있던 예술가를 깨울 수 있었다. 23년간 강의하면서 유아들이 하는 활동들을 연구하고 만들면서 내가 더 재밌었다. ‘아 나도 지금이라도 저렇게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다’, ‘이 기분을 나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하는 게 그렇게 신나고 재밌었던 건 바로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예술과목들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악, 미술, 문학 과목을 공부하며 강의할 때 너무 재밌어서 자료들을 찾고 교구와 책들을 준비해서 같이 나누는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내가 진심으로 관심이 있고 즐거웠기에 그 마음이 전달되어 선지 그런 과목들을 강의할 때 유독 수업 분위기가 좋고 학생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쉬웠다.


무기력해 보이던 학생들의 눈빛이 살아나면서 같이 몰입할 수 있었고 학생들 속에도 숨어있던 예술가들이 나타나는 과정은 경이로웠다. 처음엔 유아들이나 하는 활동이라 시시하다고 생각했는지 시큰둥 하던 학생들도 그 활동의 의미와 교육적 효과등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해주고 학생들 속에 있던 유아기때 이후 숨어버린 예술가를 깨어나게 하자 점차 몰입하며 놀라기도 하고 재밌어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분명히 봤다.


아이들이 하는 동극을 교사로서 준비하고 해 보면서 미처 몰랐던 연기에 대한 열정이, 어떻게 하면 유아들이 더 재밌게 할지 연구하며 준비하는 미술활동에서 넘치는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는 과정들이 12년간의 주입식 교육에 피폐해진 대학생들에게도 성취감과 자신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굉장히 뿌듯해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까지 행복했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생활 속 예술가 되기’라는 주제가 떠오른 것이. 천재적 재능이 있는 사람만이 예술가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많은 시간 지루하고 힘든 이 삶 속에 예술을 아주 조금이라도 들여놓게 되었을 때의 경이로움과 행복감을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그때부터 싹트고 있었다.


그 생각들에 자주 접촉할수록 그 길로 가는 과정이 저절로 이어졌던 거 같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이 나타나고,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고, 다리를 다쳐 집에 머물면서 그림에 푹 빠지게 됐다.


이 모든 과정이 어느 날의 결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지나고 보니 아주 오래된 과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모으던 이미지들, 문학에 대한 사랑,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은 과목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결국 찾아낸 예술에 대한 사랑이 나를 지금 여기에 있게 만들었다.


이제야 나를 찾은 거 같다. 매일 해도 질리지 않고 더 하고 싶은 아름다운 일들을 하며 많은 것들과 화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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