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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하나 Feb 28. 2021

(1) 아빠처럼 되긴 싫었어

(1) 아빠처럼 되긴 싫었어 

'내가 아빠처럼 되나 봐라.'

그 말은 자석처럼 강력한 힘이 있는지 곧 현실이 되었다.


엔지니어로 오래 일하신 아버지는 어느 순간 잠정은퇴를 선언하셨다. 다섯 식구의 가장으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항상 후순위에 두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미 딸 둘 장성해서 사회에 발을 내디뎠고 어머니도 일을 조금씩 하기 시작해 더 이상 그 짐을 혼자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런 아빠가 선택한 건 '주식'이었다.


아빠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가서 하는 일하면 안 돼?
아빠는 그런 일 이제 안 하고 싶대.


주식을 잘 모르는 내 눈에 아빠는 꼭 노는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뭘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비하해 '룸펜'이라고 비하하기도 했었다는데 우리 아빠가 딱 그 모습이라는 게 견딜 수 없었다.


아빠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 7시쯤 일어나셔서 한글파일로 정리한 관심 종목과 전날 주가 및 등락폭을 쫙 뽑는다. 9시가 되기 전에 노트북을 켜서 책상 앞에 앉는다. 점심을 먹는 11시 30분까지 그 상태로 있다가 1시쯤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가로로 누워 낮잠을 잔다.(굳이 불편한 자세로 자는 건 깊이 잠들지 않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1시 30분쯤 다시 일어나셔서 다시 책상 앞에 앉은 다음 4시까지 모니터를 응시한다. 그리고는 5시가 넘으면 노트북을 덮고 그제야 거실로 나와 운동을 하고 텔레비전을 본다.


아빠, 그거 뭐 하는 거야? 그거 왜 맨날 들여다봐?
"돈이 벌리기는 하는 거야?


하지만 아빠는 한 번도 속시원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을 해준 적이 없다. 그러니 더더욱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려 해도 손으로 얼른 가리니 돈을 버는 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백번 양보해 이해한다 쳐도 다음의  가지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하나, 24시간 켜놓은 증권방송


아빠가 일을 하는 등 뒤에서 놀다가 텔레비전을 보려고 채널을 돌리려 하면 혼쭐이 났다.


그거 보는 거야. 냅 둬.
아빠 컴퓨터 하잖아. 안 보잖아.
나 보고 있어.


밤에도 새벽에도 텔레비전은 쉬질 못했다. 증권방송은 24시간 돌아갔다. 꿈에서도 주식이 나오는 게 분명했다.


둘, 평일에는 가족 외출 불가


일을 파트타임으로 바꾸면서 평일에 쉬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한가한 평일에 밥 한 끼 먹자고 외식을 권해도 영화관 나들이라도 가자하면 절대 안 된다고 손을 내저었다. 주식장 때문이었다. 특히 월요일부터 목요일 사이에는 절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가족끼리 여행을 가고 싶어 넌지시 말을 꺼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평일이 껴있기 때문이었다.


가려면 다 정리해야 해. 근데 요새 시장이 안 좋아서 그렇게 못 해.


셋, 주가에 따른 급격한 감정 기복


시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관심도 없고 알 길도 모르는 내가 아빠의 그날 기분을 등락으로 점칠 수 있었다. 방광염때문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소리에 도대체 뭐하냐고 소리치는 날은 파란불이 켜진 날이었다. 밥상머리에서 콧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흘러나온 노래에 게다리춤을 추는 날은 빨간불이 켜진 날이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그래서 집안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는 변덕스러운 저 놈의 주식이 싫었다.


 그런 내가 10년 만에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렇게 싫다던 아빠의 뒤를 밟게 되었다. 상상도 못 할 이유로 그것도 급작스럽게 말이다. 그건 '코로나19'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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