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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이 Jan 19. 2021

감자, 감자, 왕감자

월간덕질보고서_Vol.3 감자와 나


"도희 씨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저는 음, 감자요."

"감자요?"

"네 감자요. 감자로 만든 음식은 다 좋아해요. 감자는 엄청난 식량인 것 같아요. 물론 더 선호하는 가공음식은 있습니다. 이를테면 감자튀김, 감자칩, 찐 감자에 샤워크림, 감자밥, 옹심이, 감자 붕어빵까지. 구황작물을 다 좋아하진 않아요. '구황작물' 하면 떠오르는 건 고구마가 있죠. 고구마는 달아요. 저는 이상하게 그 단맛을 찾게 되진 않더라고요. 감자의 퍽퍽함, 투박함. 그게 제가 감자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예요. 휴, 감자를 향한 제 열정이 정말 컸네요. 하하. 그럼 오늘 점심메뉴는 메밀막국수에 감자전 어떠세요? "




모든 음식재료는 쓰임이 다양하다. '무의 맛' 이더라도 어떤 첨가제를 만나냐에 따라 그 맛이 풍성해지기도, 혹은 심심한 맛을 내기도 한다. 좋아하는 음식 TOP3를 물어봐도 이중 단연 으뜸은 감자다. 하고 많은 것들 중 감자라니. 대창, 소고기, 회, 치킨 등 세상에는 어마어마하게 음식들이 넘쳐나는데, 왜 굳이 감자란 말인가. 차라리 소금이 좋다 외치지 그래!라는 답변도 들어봤다. 감자는 어떤 아이와 만나느냐에 따라 감자의 세계는 무한하게 확장된다. 갑자기 소금을 고르게 뿌려 삶은 감자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싶다. 왕-!


물론, 감자 특유의 맛이 있다. 1분간 감자 특유 본연의 맛에 대해 설명할 문구를 생각했으나. 딱 정의 내리기 어려웠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다면, 감자의 맛을 알려주세요. (급 질문)


감자, 감자, 왕~감자~ 정말정말 좋아요~


사실 내가 감자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맛'때문만은 아니다. '감자'라 하면 떠오르는 수식어가 있다. '수수한, 투박한, 옹골찬'. 이 수식어들은 하나같이 꾸밈없이 단단한 느낌을 풍긴다. 아마도 나라는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나와 닮은 것을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나의 연인이 자세히 보니 나와 닮아있는 것처럼.


감자는 투박하다. 나 역시 투박한 사람이다. 내가 투박하다고 의식하기 전부터 무의식적으로 감자를 좋아해 왔지만. '감자'라는 음식이 주는 느낌은 내가 '나'라는 사람과 나의 삶을 대하는 방식과 닮아있다. 사근함보다는 투박함이 어울리고, 다정함과 애교보다는 아재 같은 털털함으로 중무장했다. 또 속이 가득 찬 감자처럼 옹골차다. 방황하는 부랑자처럼 매일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지만, 내가 가지 않을 길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쓰임에 따라 다양한 맛을 가지지만 본연의 향을 잃지 않는 감자처럼, 나도 그런 사람이고 또 그런 사람이고 싶다.


사실 감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초등학교 교과서에 보았던 주렁주렁 감자 식구들이다. 비 오는 날 감자를 캐올 리면 흙 속 깊이 퍼져있는 감자 식구들이 주렁주렁 올라온다. 일종의 감자 네트워크? 나는 이 감자 네트워크를 보면 왠지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감자에 나를 투영하자면, 내 주변도 마치 감자 네트워크처럼 사람들이 주렁주렁 있었으면 좋겠다. 무심한 사람이라 말로는 스스로에 대해 주장하지만, 사실은 여행지에서 엽서를 한 움큼 사서 선물하는 정 많은 털보 아재st?


안돼! 감자의 맛에 집중해야 해!

감자에게로 돌아가보자.


감자로 할 수 있는 요리는 무궁무진하다. 감자튀김, 감자칩, 샤워크림을 듬뿍 얹은 찐 감자, 감자밥, 옹심이, 감자 붕어빵. 후 - 한 박자 쉬고, 감자조림, 감자탕, 감자 샐러드, 감자 크로켓, 감자볶음, 감자전...


감자튀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얇게 썰어 튀긴 맥도날드 재질의 감자튀김, 굵게 썰어 감자의 식감을 살린 버거킹 재질의 감자튀김, 버거킹보다는 덜 굵게 썰려 후춧가루를 입힌 맘스터치 재질의 감자튀김까지. 어쩌지, 아직 언급하지 않은 감자튀김들이 많다. 스마일감자, 해쉬브라운, 웨지감자.....


출시한지는 꽤 되었으나 아직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있다. 바로 감자빵이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출시된 이 감자빵은 '가을의 맛을 듬뿍'이라는 이름의 감자빵이다. 감자빵 포장용기에서는 귀여운 감자송이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지난가을에 출시된 빵이다. 아직까지 못 먹어봤다는 것은 감자덕후로서, 매우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자쟁이가 아직도 안 먹어보았냐며 친구들에게도 혼났다. 후, 그렇다면 내친김에 집 가는 길에 냠냠해야지! 오늘은 꼭 먹을 테야!


친구가 보내준 감자빵 사진


감자와 같은 선상에서 늘 비교되는 친구가 있다. 바로 고구마. 부먹파와 찍먹파가 있듯이, 감자파와 고구마파가 존재한다. 나는 늘 외친다. 당연히 감자죠! 고구마는 김치 없이 못먹잖아요! 라는 말에 고구마파에게 혼쭐이 나지만 말이다. 감자를 애찬하는 나로서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고구마는 단맛이 강해, 섣불리 음식에 넣을 수 없다. 그렇지 않는가? 특히 많은 음식이 한 번에 들어가는 탕류를 생각하면 그렇다. 김치찌개, 부대찌개, 된장찌개 등 감자가 못들어가 가는 곳은 없다. 고구마는 고민이 필요하다. 고구마를 넣게 되면 고구마 자체가 물러질 수 있고 단맛이 음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자는 주식대용으로도 가능하다. 모든 반찬과 어울리는 밥과 같은 존재랄까.


고구마의 장점도 명확하다.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다이어트 음식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호박고구마, 밤고구마 등 다양한 식감과 맛을 보유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고구마는 고구마만 먹어도 심심하지 않지만, 감자의 경우 감자만 먹으면 퍽퍽하고 심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감자의 포슬포슬한 식감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다. 사실 우열을 가릴 순 없다. 감자 특유의 맛과 식감을 선호하는 사람과 몽글몽글하고 달달한 고구마를 선호하는 사람이 존재할뿐. 부먹 찍먹도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정답은 없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할 수 있다.


sweet potato? 단 감자, 고구마


감자 생각하니 또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것이 있다. 연남동에 있는 이자카야에서 꼬치구이와 함께 샤워크림을 가득 올린 찐 감자를 주문하고 싶다. 한라토닉은 필수. 오늘도 도감자로써 충분했다. 감자를 닮은 '나'를 향한 사랑이 멈출 수 없듯, 나와 닮은 '감자'를 향한 나의 애정 또한 영원하리.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글쓴이가 감자를 좋은 것만큼은 알 것 같은 '감자 애찬기'를 읽어주셔서 감자합니다.


"감자, 감자, 왕- 감자. 정말정말 좋아요-"



p.s. 사진 협찬해주신 저의 먹메이트 노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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