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도심운전자의 속마음
구름이 몽글몽글 지나간다. 그의 생김새는 탐스러운 물갈퀴가 달린 말의 모습이었다. 무작정 달리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걸까. 물을 무서워하는 주제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끝자락에 시선이 닿는다. 바람이 내 머릿속을 쓸고 지나간다. 스윽. 나를 잠식하고 있던 두려움이 조금씩 쓸려내려간다.
한 손 가득 움켜쥐고 있는 키링때문인지 애꿎은 손바닥이 저려온다. 엄지 손가락 옆으로 삐죽 머리를 내밀고 있는 키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흰색 49cc 오토바이와 작고 얇은 오토바이 키가 있다. 가냘픈 몸체를 가진 키에게는 다소 과분한 부피의 키링이 두 개나 달려있다. 아직 여분의 키를 만들지 못해 언제 잃어버릴까, 언제 부서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키링의 커다란 부피는 불안함이 만든 허상의 존재감이다. 아아 존재감에는 그에 따란 의미가 필요한 법. 이들 역시 그냥 키링은 아니다. 하나는 내 이상적 감성이 담겨있다. 해변까지 밀려온 파도의 찰나를 포착한 듯한 파도 모양 키링. 종종 이 아이를 손에 쥐고 있으면 부서지기 바쁜 파도를 잠시 쟁취한 느낌이 든다. 다른 하나는 추억이다. 몇 년 전 한 친구가 건넨 여행 선물이다.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라며 철없게 입을 삐죽이는 내 표정은, 다시 떠올려도 참 얄궂다.
사실 난 일주일 전, 첫 도심운전을 시도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8차선이라는 무시무시한 던전 입구에서 좌측 깜빡이를 켜보지도 못한채 곧바로 골목으로 우회했다. 살아움직이는 것 같은 사륜구동이 나를 한 입에 집어삼킬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척, 원래부터 동네산책이 목표였던 것처럼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걷고 있는지 날고 있는지 구분이 안되는 느낌도 오랜만이었다. 곧 바로 택시에 몸을 실었다. 레퍼런스 조사라는 명분으로 스스로에게 주는 기회였다. 다른 오토바이의 동태를 살필 것. 눈 역시 몸의 일부아닌가, 눈으로라도 8차선의 감을 읽힐 것. 허사에 불과할 지언정, 그럴듯한 용기의 실마리가 필요했다. 오토바이를 타겠다며 동네방네 선언하고 다닌 나의 지난날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렇다. 난 도저히 도심운전 실패자가 될 용기는 없었다.
지금이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사소한 것에 몰두했을 뿐인데, 그럴싸한 뽕을 맞은 기분이다. 자비 없이 달려드는 네 발 생물과 같은 선 상에서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배포가 생겼다. 그래,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아니야. 이 오토바이의 단종보다 내 단명이 빨라지면 어쩌지. 오토바이 운전자에게는 초보운전이란 없다. 사회가 인정하는 초보운전은 적어도 세로 210mm 가로 297mm 흰 종이에 대문짝만 한 글씨라도 써 붙여야 하는 것이다. 안도감과 창피함을 동시에 얻는다는 마법이 일어날지언정, 지금이라도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서 종이를 챙겨 와야 하나. 아니지. 나를 더 얕보면 어쩌지. 역시 마법의 흰 종이는 차마 내 등짝에는 붙이지 못하겠다. 아니지. 그렇다고 험난한 대교를 건너는데 감히 초보가 나를 알리지 않는다는 건 도박 아닐까. 나를 과대평가해버리면 어쩌지.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하겠다.
초심으로 돌아간다. 다시 구름을 바라본다. 이번엔 물갈퀴가 달린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마음을 다잡아 본다. 어제 분명 나는 3시간 동안 유튜브를 보며 공부했다. 나의 눈과 손을 대신한 유튜브 속 라이더는 이렇게만 하면 된다라고 나에게 힘을 주었다. 그래.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지만, 나에게는 보편적이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위를 살피세요. 2차선 진입을 위해 왼쪽 사이드 거울을 바라보세요. 자, 깜빡이를 키세요. 뒤에 달려는 네 발 생물은 그저 당신과 같은 도시생활자입니다. 그의 분주함을 배려해주세요. 자, 다시 주위를 살피세요. 당신은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저 겁이 날 뿐이에요. 지금까지와 다른 세상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어서오세요, 이 험난한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