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저녁까지 카톡을 주고받으며 일상을 보내다 퇴근 시간 때가 되면 카톡이 무색할 만큼 통화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정말 친한 지인들이 있다.
몇 해에 걸쳐 그 관계들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소재가 끊긴 적이 없다. 그런 사소하면서 편한 대화를 이어가던 중 느끼지 못했으나 고쳐야 하는 나의 대화법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한대의 칭찬과 격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몰랐다. 특히 회사에서 상사에게 깨지거나 동료들과 마찰이 있을 경우 어떤 상황인지 너무 빤히 보였기에 내가 당한 것처럼 상대방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속이 개운할 정도의 욕(^^;;)과 상황적 판단을 같이 해주고는 했다.
그리고 지인들은 내가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 잘하고 있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괜찮다며 잘할 거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A가 말했다. “조심스럽기는 한데 너의 칭찬과 격려에는 영혼이 느껴지지 않아. 처음에는 좋았는데 들을수록 와닿지가 않아.”
두둥! 왜지? 나는 그저 내가 알고 있는 A에 대한 생각을 그저 표현했을 뿐인데…. 혹시나 B에게도 그런 감정이 느껴졌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B. 지인과 통화를 하다 내가 하는 칭찬이 어느 날부터 와닿지 않는다 하는데 혹시 그렇게 느꼈어?”
“응, 솔직히 말은 안 했는데 나도 그런 점이 있었어. 웃기지만 어느 날 하도 너에게 칭찬을 많이 들어서 진짜 내가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자만을 가지게 되는 날도 있었어. 웃기지?”
별거 아닐 수 있겠지만 이것저것 나의 언어습관들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요즘 가끔 한강으로 운동 겸 산책을 갈 때가 있다. 무더위로 헉헉대던 밤 어슬렁어슬렁 마스크 하나 챙기고 한강으로 다녀오는 길에 문득 A에게 해줄 말이 생각났다.
편지를 썼다. 칭찬과 관련된 글로 짧게 쓰려했는데 평상시 하고 싶었던 말을 쓰다 보니 한 줄이 두줄이 되고, 쪽지는 편지가 됐다.
A에게
어젯밤에 한강을 다녀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좀 했어. 별거 아닐 수 있는데 그냥 말해주고 싶더라고. A에게서 나도 몰랐던 내 이야기를 들으며 관찰력에 쓰이는 여러 가지 조건 중 따뜻한 관심이 많이 포함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어제는 말로 표현 못했는데 고마워. ^^
참, 내가 요즘 노력하는 것인데 나의 대화법 중 습관처럼 느껴진다던 상대방에게 영혼 없게 느껴질 수 있는 ‘칭찬과 격려’를 자주 할까 생각해봤거든.
통화에서도 말했지만 A가 말해주기 전까지 잘 못 느꼈던 거 같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해주면 더 응원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과잉적인 상황이 벌어진 거 같아.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개선을 해야 할 필요는 있겠다 싶었어.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과잉 칭찬과 격려’의 말이 쏟아진다면 정말 그건 나의 진심이라 여겨줬으면 좋겠어. 많이 모자라고 부족한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라도 힘을 주고 싶을 때 더 반복되는 거 같아.
그렇지만 너무 자주 반복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아껴서 할게. 그만큼 효력은 더 커질 테니까. 무의식적인 칭찬을 하게 될 때 환기를 하게 만드는 좋은 포인트였어. 혹시나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또 이야기해줘. 나도 생기면 말해줄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이보다 중요한 건 삶을 살아가는 세계관 혹은 가치관, 그리고 A가 말했던 서로를 존중해주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8살 어린 내 동생을 가끔 언니로 생각할 때도 많아. 개인적으로 30대가 넘어가면 나이와는 상관없이 삶은 누구에게나 고단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이 있어. 당연히 더 생각 깊거나 인생관을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지. A처럼.
이 버릇 쉽게 고쳐질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의식적으로 입 밖으로 나온다 싶은 순간을 제어하며 조절하니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그러나 정말 상대방에게 힘이 되어 주는 적재적소에 쓰이는 칭찬의 때를 노리며 내 마음은 알아주겠지 하고 있다.
마음은 표현하는 게 맛이라 아쉽지만 큰 거 한방으로 창찬의 달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