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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Aug 10. 2021

게으름이 끄집어낸 기억들

2018 여름 문학동네를 읽다가

무려 8개월을 유튜브와 OTT 플랫폼에 흠뻑 빠져 다. 정신없이 놀다가 여름 정례행사인 책 정리를 시작했다. 책을 정리하는 과정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책을 모으지 않기로 한 결심이 생각난다.'충분히 다 읽은 책들 1년에 한 번씩 팔거나 버리자. 여름 시즌마다 '다. 

그러나 정리할 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      

어휘력이 한때 뛰어났던 적이 있다. 물을 삼키듯 책을 삼킬 때였다. 그때 깨달았다. 책 읽기와 어휘력은 비례관계에 있다는 것을. 그 이후 어딜 가든 작고 가벼운 책이라도 늘 가방에 있었다. 여전히 들고 다니기 쉬 문고판 책들을 버리지 못한다.      


제일 먼저 한 것은 TV를 끄고 핸드폰을 멀리하는 것이다. 5단 서랍장 3개를 노려봤다. 3년 안에 책장 2개를 비우기로 결심 허무했다.   


책장을 한참이나 노려보다 2018년(여름) 문학동네를 꺼냈다. 무거웠다. 600페이지 가까운 두께 속 깨알같이 박힌 활자들의 무게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읽는 책이 새롭고 낯설었다. 전에는 읽지 않던 책 광고까지 한줄한줄 읽었다.  9페이지 중간에 시선이 멈췄다.


'호텔에 알바를 하던 그 시절, 조도 낮은 조명과 따뜻한 공기가 특별히 울기 좋다는 사실을 배웠다.’라는 대목이었다.      


나에게도 호텔에서 알바를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호텔 직원들을 지원하는 업무였다.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중학교를 기점으로 살은 나이만큼 찌기 시작했기에 그 시기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색 치마는 몸에 차고 넘치던 시기였다. 그러나 나와 인터뷰를 한 젊은 여자 직원은 상급자와 의논하지 않아도 자기 역량으로 선발할 수 있다 했기에 안심했다.


사무실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시선이 따가웠다. 그리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여자 직원은 미안하다고 인원이 초과되어 나 힘들 것 같다 이야기를 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뻔했다. 실망 자존심이 상했다. 한동안 위축감에 어떤 알바도 구하지 못했다.      

호텔에서의 경험이 희석될 무렵 첫 번째 직장에 들어갔다. 나절만에 잘렸지만. 성북구에 있는 병원 사회복지사로 채용됐다. 면담을 했고, 다음날 출근을 시작했다.


출근을 하니 남자 직원 명이 있었다. 그들은 자리업무도 주지 않았고 대화도 걸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니 직원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라는 이야기로 처음 말을 걸었다.


밥을 먹고 돌아오니 남직원 둘이 지하에 있는 병원 직원들이 사용하는 비품, 소품들을 정리하라 지시했다. 

지하는 축축하고 어두웠다. 조도가 낮은 2개가 더욱 음침하게 만들었다. 5~6줄로 서 있는 철장에는 정리가 안된 물건들이 촘촘하 엉켜있었다.


시기는 겨울이었다. 잘 보이려 입은 옷깃이 예쁜 코트 아까웠지만 온기를 찾을 수 없는 공간은 허용하지 않았다. 지는 움직이는대로 붙었다.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올라오라 했다. 사무실에는 무스탕을 입은 아줌마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를 빤히 쳐다 나를 채용한 직원을 쳐다봤다. 그는 나에게 잠시 옆방으로 가라 했다. 내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뻔한 분위기였다.  닫힌문을 보며 귀를 기울었다.    


“굳이 재를 왜 데리고 있어야 해? 내가 아는 애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 걔 지금 집에서 놀고 있으니 자격증 빌려달라고 하면 되지. 돈만 더 들잖아”     


잠시 후 문소리가 났다. 여자가 나간 듯했다. 그리고 직원이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미안한데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이유가 있나요?”


“사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필요했는데 자격증을 가진 다른 사람이 있어서요.”     

하얀 봉투를 받았다. 아오는 길 위에서 열어보았다. 만 원짜리 3장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흘리는 눈물이 무고 부끄러웠지만 안구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흘렀다. 눈물은 손가락으로 감당 안될 만큼 주룩주룩 나왔다.   


문학동네 9페이지 열 번째 문단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에는 분별 안되던 그저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싶던 어린 나이의 기억이 겹쳐졌다.  


한 달 전 기억은 생각도 안 나는데 억울한 기억은 왜 오래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는데 말이다.      


줄 긋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줄을 그어가며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과 단어들을 수집할 생각이다. 책 정리는 내년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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