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의『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고 느낀 것들
솔직히 박완서 작가를 잘 몰랐고 그의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트위터(지금은 X라고 불리는)에서 어떤 기자의 추천사를 보고는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는 못하겠더라. “저는 박완서 작가를 도스토옙스키보다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하는데요.” 도스토옙스키에게도 큰 관심은 없었지만, 책장에 꽂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마음의 짐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위대하다고 하는데, 심지어 그런 이가 한국의 작가라고 하니 읽지 않으면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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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 ‘어그로’에 낚여 (어디 한번 두고보자는 마음으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었고, 내 감상 이랬다. ‘기자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네.’ 아니, 마음속에 잔뜩 낀 거품을 걷어내지 않고 말하자면, 이보다 잘 쓴 (한국어) 이야기를 읽어본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아니, 한국어뿐 아니라 내가 읽은 모든 이야기를 통틀어봐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대체 이런 글은 뭘 먹으면 쓸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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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이 소설에서 되새겨 본 제일 큰 의미는 그 어떤 역사책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점이다. 1930년대 중반 즈음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이야기를 읽으며 그 시절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개성에서의 (나에게는) 꿈 같았던 작가의 어린 시절, 서울로의 이주와 함께 마주한 여러 고민들, 해방 이후 시대상, 그리고 전쟁의 비인간성을 묘사한 대목까지. 마치 그 시대를 살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역사책으로는 얻기 어려운 감동을 처음 책을 읽을 때부터 덮을 때까지 느꼈다. 그래도 소설 좀 읽어봤다고 생각했는데, 문학의 힘을 이만큼 느끼게 해 준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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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인생 소설’에 오르기에 차고 넘치지만, 우리의 대문호 선생님은 여기에서 멈출 생각이 없으셨던 것 같다. 내게 위의 감동 이상으로 인상적인 부분은 작가의 자기 객관화였다. 사람들은 보통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그때가 좋았다’는 말을 자주 되뇌곤 한다. 나 역시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서,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볼 때마다 “좋을 때다!” 한 마디씩 건네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막상 그 시절 기억을 파고들면 딱히 좋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10년 전 또는 20년 전, 내 머리를 어지럽혔던 고민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저 그 모든 일을 지나 보냈기에 아름답게 착각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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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나 같은 경우엔 지난 시절의 나에 대한 연민을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그렇게 ‘과거의 나 불쌍해’를 남발하다 망한 글이 대체 몇 개인지, 생각만 해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이 작품의 화자는 자신이나 가족에게 섣부른 연민을 보낼 생각이 전혀 없다. 엄마의 이중잣대, 오빠의 속 편한 용기, 자신의 과오까지, 에누리 없이 독자에게 펼쳐보인다. 그렇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단순한 회상을 넘어,입체성 가득한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로 거듭났다. 이런 경지에 다다른 작가를 언제 만났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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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문호를 몰라뵈었다니 빚 보증 잘못 선 수준의 손해를 본 기분이 들었고, 그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최대한 빠르게 읽어보자고 마음먹었다. 혹시 나처럼 이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으신 책스타그래머가 계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 하나를 놓치는 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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