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을 집어삼킨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Part 2

답답해서 공부한 ADHD의 뇌과학 - #1.2

by 책판다

안녕하세요,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책판다입니다. 이번에도 연재가 너무 많이 늦어버렸네요. 사실은 글을 계속 쓰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인용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서 인용할만 한 자료인지 검토하고, 또 그걸 체화해낸 후에 글까지 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새 뼈저리게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책이나 논문 쓰시는 분들께 존경심이 우러나오기 시작하네요. 다시 한번 연재가 늦은 점 사과드리며, 남은 글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디폴트 네트워크 모드 Part 1 편을 대폭 수정하게 되었습니다(왜 발행 버튼만 누르고 나면 고칠 곳이 이렇게나 많아지는 걸까요). 혹시 읽기 전이시라면, Part1을 먼저 일독 부탁드리겠습니다!








휴식 네트워크라는 수수께끼


그렇게 뛰쳐나간 생각은 뭘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내 머리는 휴식 네트워크가 일으킨 폭풍에 잠식당했고, 무작정 뭐라도 찾겠다며 뛰쳐나왔던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폭풍 속에서 갈 길을 잃은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뭔가 떠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밤중에 태평양 한복판에 떠 있는 구명보트에서 켠 휴대용 랜턴의 불빛처럼 스치듯 지나치기 딱 좋은 무언가였지만, 분명히 뭔가 깜박이고 있었다. 너무 잘 알던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 것처럼 답답한 마음으로 머리를 헤집어 대던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집에 쌓아놓은 뇌과학과 심리학 책 수십 권을 모조리 꺼내 펼쳐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휘리릭 넘기던 책장의 한 페이지가 눈에 띄면서 폭풍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주의 네트워크는 햇빛보다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논픽션 작가 닉 트렌턴(Nick Trenton)이 쓴 『생각 중독』의 책장을 휘리릭 넘기다 눈에 띈 구절 때문이었다.


“2010년 매튜 킬링스워스와 대니얼 길버트가 발표한 논문 <방황하는 마음은 불행한 마음A Wandering Mind Is an Unhappy Mind>에서는 궁극적으로 뇌가 현재 일어나지 않는 일을 일어나고 있는 일만큼이나 많이 생각한다고 했다. 더욱이 이렇게 함으로써 대개 불행을 느낀다고도 했다. 또한 《신경과학 행동 리뷰Neuroscience & Behavior Review》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불안과 우울로 고통받는 사람이 실제로 DMN이 다른 사람보다 더 활발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DMN이 활발한 사람이 우울증에 취약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1)


제일 먼저 눈에 띈 부분은 “휴식 네트워크가 활발한 사람이 우울증에 취약하다”는 부분이었지만, 곱씹을수록 “뇌가 현재 일어나지 않는 일을 일어나고 있는 일만큼이나 많이 생각한다”는 대목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수험생 시절, 부모님과 친구에게 “생각을 줄여”라는 충고를 더 많이 들어왔던 나였다. 10년 전, 상담 시간에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느냐?”라는 질문에 “매우 불행한 노년기”라고 답해 상담 선생님을 놀라게 했더랬다. 돌이켜 보니, 휴식 네트워크는 내 인생이 걸어온 길목 여러 곳에 생각보다 많은 지뢰를 심어놓은 모양이었다. 인생, 뭘까?


하지만 슬픔 깊은 곳을 향해 홀린 듯 걸어가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위에 인용한 휴식 네트워크의 밉살맞은(?) 특성의 앞뒤에 적힌 상세한 설명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마커스 라이클)에 따르면 특별한 업무가 없을 때 뇌는 세상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이켜보고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사회적 정보와 기억을 처리하고 재처리한다. 말하자면, 뇌는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 진화했다.”2)


휴식 네트워크가 생존의 필수 조건이란 이야기였고, 병 주고 약까지 쥐여 준 휴식 네트워크에 대해 더 알아봐야만 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휴식 네트워크


“팀장님, 회의실에 잠깐 남아주시겠어요?”


회의가 마무리되고 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이사님이 팀장님께 요청했다. 그 어떤 팀원도 새겨 듣지 않았던 그 말은 도대체 왜 내 귀에는 깊숙이 꽂혔던 걸까? 심장이 빠르게 진동하면서 혈류를 머리에 보냈고, 나는 혹시라도 잘못한 일이 없는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사님과 팀장님이 회의실에 남아 내 이야기를 나눌 것 같은 기분. 자리로 돌아간 뒤로도 한참동안 내 주의는 처리해야 할 업무가 아니라 회의실에 쏠려 있었다.


몇몇 ADHD인들을 제외하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이게 뭔가 싶으실 것 같다. 사실 그런 내가 정상이 아니었다는 걸 나도 알고 있고, 그래서 그런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이상했다는 사실을 ‘1+1=2’ 같은 논리적 사실로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런 모습이 그냥 불안했다. 그때뿐만이 아니라, 팀장님이 이사님이나 대표님께 불려갈 때마다 그랬다. 주변 사람 속내를 엿보지 않겠다고 2분에 한번씩 마음을 다잡아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해야 할 일도 산더미처럼 쌓인 마당에, 내 방공 시스템은 작디 작은 촬영용 드론 한 대 때문에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려대고 있었다. 인생 난이도가 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힘 센 휴식 네트워크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부작용’ 또는 ‘단점’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ADHD인들이 휴식 네트워크의 과활성으로 인해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내 경우에도 40년 넘게 ‘휴식 네트워크 강점기’를 겪으면서 (내 의사와 무관하게) 뼈에 새겨진, 아니 뇌 깊은 곳에 (어쩌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곳에) 새겨진 아픈 기억이 나도 모르게 솟아오르다 보니, 이걸 못본 척하고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휴식 네트워크에 대한 포위망을 점점 좁혀가던 나는, 그 실체(?)에 다가갈수록 세상 모든 고생을 혼자 다 견뎌냈다며 큰소리 치시는 어르신마냥 “내 얘기 다 쓰면 책 한권 뚝딱이야”라고 읊조리고 있었다. 이게 다 휴식 네트워크 때문이었다. 나는 이 녀석이 정말 싫었다.


휴식 네트워크가 일으킨 사단은 위의 에피소드에서 끝나지 않았다. ADHD인들이라면 매우 공감하겠지만, 이들은 휴식 네트워크의 과활성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는 주의집중이 어렵다는 점이다(ADHD의 사전적 의미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라는 걸 생각해보면 사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한밤중의 하늘을 대낮처럼 밝히는 조명탄처럼 휴식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서 작업 네트워크를 방해하다 보니, 보통 사람에게도 한정되어 있는 주의집중이란 자원은 ADHD인들에게 희귀 자원이 되어버린다. 어쩐지 학창시절 주변 사람들이 “집중력이 부족해”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더라니.


과활성과 함께 툭툭 튀어나오는 휴식 네트워크의 특성도 문제였다. 수업이나 회의 시간에 맥락을 놓쳐 엉뚱한 반응을 하다가 선생님께 혼을 나거나 상사의 실소를 불렀던 일은 셀 수도 없었다. 앞서 이야기한 수업 시간의 공상 여행, 상담 선생님께 고백했던 비참한 미래를 상상하는 버릇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초대 받지 못한 불청객이 모임에 나타나 분위기를 가라앉힌 것처럼, 내 인생도 꾸준히 가라앉아 가는 것 같았다.








10가지 휴식 네트워크 가설


인생 곳곳에서 나타나 걸림돌이 되어 왔던 휴식 네트워크가 어떻게 “생존하기 위해서” 진화했다는 걸까? 내 입장에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대체 하는 일은 무엇이며, 이런 게 필요한 이유가 대체 뭐야? 이런 생각을 나만 했던 게 아닌 모양이다. 실제로 휴식 네트워크의 개념화 가능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고, 반대 진영에서는 “휴식 상태에서 일관성있게 활성화되는 영역이 있다고 해도, 이론적 종합 없이 휴식 네트워크 개념이 큰 의미가 없다”며 휴식 네트워크 개념을 부정하기도 했다.3)


‘그러면 그렇지!’ 내 통찰력이 꽤 써먹을 만 한 것 같아 어깨를 으쓱하려던 순간(이 순간에 으쓱하는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의지와 달리 어깨가 축 처져버렸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휴식 네트워크 연구 논문이 도서관 하나를 가득 채울 기세로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구들은 휴식 네트워크가 우리 뇌에서 아주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쩐지 내 짐작이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 싶었는데 역시나….


지금까지 이뤄진 휴식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들을 2025년 브라질의 펠리페 아자리아스(Felipe Rici Azarias) 연구팀이 종합 검토해 휴식 네트워크의 역할에 대한 가설을 총 10가지로 정리했는데,4) 그 가설들은 아래와 같다.


표 1.png


일단 내가 할 수 없었던 일, 그래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확인했다는 점은 분명한 수확이었다.


내적 정신 활동 가설(Internal Mental Activity Hypothesis)5)부터 시작해보자. 이 가설에 따르면 휴식 네트워크가 자기 성찰이나 개인적 기억 회상, 과거나 미래에 대한 정신적 시뮬레이션을 담당한다고 한다. 가령 상대방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마음 상태를 짐작하는 사회성이나 며칠째 붙잡고 있던 제안서의 실마리가 갑자기 풀리는 것은, 휴식 네트워크의 내적 정신 활동이 이루어진 덕분이다. 다만, 내 경우엔 휴식 네트워크의 텐션이 ‘왜 저래?’ 싶을 정도로 부담스럽게 높았고, 너무 멀리 데려갔다. 휴식 네트워크가 충분히 억제되지 않았고, 이 활동이 나를 지나치게 먼 곳까지 이끌고 간 것이다. 자기참조 활동이 부정적 방향으로 고착될 때 반추와 우울한 사고로 이어진다는 걸 고려하면,6)7) 습관처럼 불행한 미래를 떠올렸던 것은 브레이크 없이 달려나간 ‘내적 정신 활동’이 멀리 끌고 가다가, 결국 날 감옥에 집어넣은 것이다. 그렇게 학창 시절에는 공상 여행을 떠났고, 다 자라서는 불행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감시자 가설(Sentinel Hypothesis)은 어떨까? 휴식 중에도 잠재적 위협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휴식 네트워크가 활동하며 주변 환경을 탐지하는 이 기능은8), 내가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기능이 없었다면 우리 조상들은 마음 놓고 식사를 즐기거나 잠을 자다가 천적에게 멸종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이 본능이 우리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거고, 더 큰 문제는 내가 그 기능을 필요 이상으로 발달(?)시켰다는 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뇌 안의 방공망은 민감도 최상의 상태로 가동되었고, 파리 한 마리까지 잡아내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공습경보가 사람을 얼마나 멍들게 하는지 다른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수렵채집인은 상상할 수 없는 안전한 도시 한복판이었지만, 그때와 다르지 않은 불안 때문에 늪 바닥을 향해 빠져들고 있었다.


어쨌든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줄 알았던 휴식 네트워크의 마수(?)에서 탈출해 목적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지금, 가슴 뚫린 거대 싱크홀 하나를 메운 것 같았달까. 그러나 해방감의 실체가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휴식 네트워크를 취재하면서 나는, 날 가둔 장벽 하나를 허물어낸 기분이 들었다. 이 막연했던 성취감은 뭘까? 반복해 읽은 휴식 네트워크의 특성에서 답 하나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몰랐던,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


어쩌다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한참 뜸을 들인 뒤에야 쭈뼛쭈뼛 대답을 하곤 했다. “아, 그게, 제가, 사실 특별한 취미는 없고, 책 읽는 걸 좋아하긴 해요.” 이렇게 답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함께 움츠러들곤 했다. 독서가 다른 취미와 비교할 때 접근성이 매우 낮은, 아마도 0에 수렴할 듯한 ‘평범한’ 취미였고, 그러다 보니 취업준비생 시절 면접 스터디를 할 때마다 “취미 질문에 답하지 말아야 할 취미”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아주 드물게 “어떤 책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이들이 없지 않았으나, 그들조차 책 이야기가 세 마디를 넘기기 전에 이미 2시간 강연을 들은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이쯤 되면 어깨가 움츠러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책을 좋아하다 보니 (책만큼은 아니지만) 글쓰기에도 취미를 붙이게 됐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글 좀 쓰네?”라는 칭찬을 받고 어깨 패드를 여러 장 붙이고 다니기도 했다. 홍보용 사보 기획자로 일하던 시절엔 내 원고를 읽은 담당자가 “판다 대리님은 글쓰기로 성공하실 거예요.”라는 말을 대략 351번 정도 하고 또 하는 바람에 오히려 민망해지기 일쑤였고, 한때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패션지에 잠깐이나마 칼럼을 연재해보았으니, 써왔던 글이 썩 나쁘진 않았던 모양이다.






난데없이 길게 늘어놓은 책과 글쓰기 이야기에 몇몇 분들께선 많이 당황하셨겠지만, 인생 궤적으로 보나, 이번 장의 흐름으로 보나 내게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어서 그랬다. 독서와 글쓰기는 내가 그나마 좋아하고 잘 했던 일이었고, 취재 과정에서 이런 일들을 잘 해낸 비결이 바로 나를 그토록 괴롭혀 왔던, TPO를 개의치 않고 활성화되었던 휴식 네트워크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니 아무도 모르던 독신 삼촌이 유산의 상속자를 나로 지정했다는 메시지를 받은 기분이었는데, 뭔가 얼떨떨하면서도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던 것이다. 아니,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라고 해도 괜찮겠다. 맥락에 따라선 아주 괜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구체적으로는, 내가 몇몇 분야에 흥미를 느끼고, 나아가 (작지만 소중한) 성과까지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앞서 표에서 소개한 휴식 네트워크의 역할 중 몇 가지를 근거로 삼을 수 있을 텐데, 대표적인 것이 정신적 예견 가설(Mental Foresight Hypothesis)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휴식 네트워크가 과거의 기억 단편들을 재조합해 새로운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하는데, 독서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저장고에 쌓아둔 기억을 가져다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해내는 능력이 휴식 네트워크란 신경학적 기반에 빚지고 있다는 거다.9)10) 정신적 예견 가설 외에도 자전적 기억 가설(Autobiographical Memory Hypothesis)이 설명하는 능력을 활용해, 경험 인출 및 자기 성찰 수행, 일관된 서사 구축 등의 수행함으로써11)12) 독서와 글쓰기를 해왔다는 해석도 가능하겠다.


몇몇 연구들은 휴식 네트워크와 창의성 사이에 적잖은 연관성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로저 비티(Roger E. Beaty) 연구팀은 발산적 사고 능력이 높을수록 하전두이랑(Inferior Frontal Gyrus, IFG)과 휴식 네트워크의 연결성이 높은 것을 관찰했는데, 창의성 높은 개인의 경우 휴식 네트워크에서 비롯된 상상을 하전두이랑에서 잘 통제함으로써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것이다.13) 모든 ADHD인들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나는 심지어 마케터였는데도 창의력이 바닥을 맴돌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확인하고 매우 씁쓸했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 함께 정리해보았다.






잃어버린 나를 찾으러 다시 출발


눈에 띄지도 않을 작은 신호 하나를 좇아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생각지도 않게 멀리까지 와버렸다. 그렇게 도착한 목적지는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는데, 내가 생각한 휴식 네트워크는 초속 수백 미터 이상의 폭풍이 몰아치면서 남미 대륙 크기의 번개가 끊이지 않는 목성 표면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맥락 없이 나타나는 혼란스런 곳이긴 했다. 그로 인한 불편함도 여전할뿐 아니라, 한 걸음 잘못 내디뎠다간 실패의 지뢰를 밟고 마는, 분에 넘치는 긴장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다만 ADHD 진단을 받은 후 휴식 네트워크를 처음 알았을 때와 이곳에 다다른 지금, 나를 사로잡는 감정의 거리는 서울과 부산, 아니 대한민국과 우루과이만큼이나* 멀어졌다. 이 혼란스런 세계가 방해물이 아닌 가능성의 세계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남다른 애착, 그리고 글을 쓸 때 몰입하는 나는 그나마 내가 사랑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모습이었다. 이걸 이 혼란의 세계가 전해준 선물일 수도 있다는 게, 뭔가 아이러니하면서도 고마웠던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 어망처럼 나를 옭아맸던 다른 네트워크 영역에 숨어 있는 비밀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금처럼 그곳에서도 뜻밖의 선물을 받아낼 수 있을진 모르겠다. 다만, 뭔가 예감이 썩 나쁘지는 않다. 휴식 네트워크의 폭풍은 아직 내 머릿속에서 휘몰아치고 있지만, 서 있기조차 힘들었던 예전과는 달라진 기분이 든다. 딛고 선 땅은 더 단단해졌고, 코어 근육에 울끈불끈 힘이 솟는 기분이다. 다음 목적지에서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아니, 사실 선물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아프기만 했던 지난날을 설명해낼 수만 있어도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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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우루과이는 우리나라의 대척점에 위치해 지구에서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까지 직선 거리는 약 19,000km 이상으로, 지구 둘레의 절반에 해당한다.




미주(참고문헌)


1) 닉 트렌턴, 『생각 중독』, 박지선 옮김, 갤리온, 2024, 27~28쪽에서 인용


2) 위와 같은 책, 27쪽에서 인용


3) Morcom, A.M., Fletcher, P.C., Does the brain have a baseline? we should be resisting a rest., NeuroImage 37, 2007, 1073–1082.


4) Azarias, F. R. et al., The Journey of the Default Mode Network: Development, Function, and Impact on Mental Health, Biology (Basel). 2025 Apr 10;14(4)


5) Christoff, K. et al., Mind-wandering as spontaneous thought: a dynamic framework, Nature Reviews Neuroscience, 2016, volume 17, pages 718–731.


6) Sheline, Y. I. et al., The default mode network and self-referential processes in depression, PNAS, 2009, 106(6), 1942–1947.


7) Hamilton, J. P. et al., Depressive Rumination, the Default-Mode Network, and the Dark Matter of Clinical Neuroscience, Biological Psychiatry, 2015, 78(4), 224–230.


8) Raichle, M. E., 2001; Azarias, F. R., et al., 2025


9) Addis, D. R., et al., Remembering the past and imagining the future: common and distinct neural substrates during event construction and elaboration, Neuropsychologia. 2007, 45(7):1363–1377.


10) Buckner, R. L., et al., The Brain's Default Network: Anatomy, Function, and Relevance to Disease, 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2008, 1124, 1–38.


11) Buckner, R. L., et al., 2008;


12) Spreng, R. N., Mar, R. A., & Kim, A. S. N., The common neural basis of autobiographical memory, prospection, navigation, theory of mind, and the default mode: A quantitative meta-analysis. Journal of Cognitive Neuroscience, 2009, 21(3), 489–510.


13) Beaty, R. E. et al., Default and executive network coupling supports creative idea production, Scientific Reports, 2015, 5, 10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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