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찬희 Nov 20. 2021

양말들이 낡아간다

지난 3주 동안 양말 3켤레를 버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구멍이 나서다. 기념사진이라도 찍어둘걸 그랬나. 아무튼 낡아가는 양말을 보니 참 기분이 이상하다.


2012년 벌링턴의 한 스타벅스에서. 양말 두 켤레를 구매 한 뒤 한 카페에서 신어보았다. 외출 착장은 아니라는 점.

대학생 때는 양말을 패션의 한 아이템으로 생각했었다. 그때는 지나가다가 예쁜 양말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기도 했었고, 일부러 착장에 맞는 양말을 찾아 사러 나가기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참 다양한 종류의 양말들을 신었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 땡땡이 목양말, 자줏빛 바탕에 흰색 꽃무늬 목양말, 연보라색의 뜨개 무늬 양말 등등. 양말을 참 다양하게 골라서 신었던 때가 있었다. 


애용하던 양말에 구멍이 나서 참 슬퍼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 만났던 남자 친구가 '그깟 양말 다시 사면되지'라고 핍박을 줬었던 기억도 난다. 아무튼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나의 양말 사랑은 계속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베이징에서 직장을 구하면서 생활이 예전보다 많이 검소해졌다. 예전에도 뭐 사치스러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직장을 구하고 첫 2년 동안에는 아버지에게 용돈을 타서 쓰는 마당에 사치스러운 생활이 용납되리란 없었다. 


또, 혼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패션에 대해 소홀해지게 되었다. 한국인이 많이 있지도 않은 동네에 혼자 처박혀 지내다 보니 외출이 줄어들었고, 회사 업무도 사무실 구석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글이나 영상을 편집하거나 번역하는 일이다 보니, 화장을 하고 다닌다거나 예쁜 옷을 입고 다니는 데에 흥미가 떨어졌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지난 수년간 패션을 패션으로써 좋아했다기보다는 그냥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 튀기 위한 수단으로써 좋아했던 것 같다.


매일 입던 옷만 입고, 매일 신던 양말만 신어서인가. 최근부터 어째 옷들이 낡기 시작했다. 올봄에 겨울옷을 정리하면서 낡은 옷들을 모두 정리해서 버렸다. 집에서 자주 입는 평상복을 제외하고 외출복이 낡아져서 버리는 경우는 30년 인생에 거의 처음인 것 같다. 가을 겨울이면 자주 입었던 아이보리색과 초록색 골지 니트는 팔꿈치 부분이 다 헤어져서 버렸고, 소매가 낡은 겨울 코트는 버리려다가 아까워서 장롱에 다시 고이 넣어두었다. 뭐 다들 오래된 옷들이긴 하다. 아마 대학교 3, 4학년 때도 입었던 옷들 같은데, 그렇게 치면 한 8-9년들 된 옷들인 것 같다.


옷들이야 그렇다고 치고, 양말들도 같이 낡기 시작했다. 재밌는 건, 다 같은 시기에 같이 구입했던 양말들이 하나둘씩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주 신었으니 낡을 수밖에. 다른 양말들도 보니 많이들 낡아 있었다. 예전에는 아침에 무슨 양말을 신을까 고민하며 이 양말 저 양말 집어 보기도 했었는데, 요즘에는 집히는 대로 신는 나를 보니, 나도 참 많이 변했구나 싶어 재밌다.


아무튼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외출을 해서 새로운 양말을 좀 사야겠다. 양말 통속의 양말들이 낡아가고 새로운 양말들이 채워지는 것처럼 나와 내 주변도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다. 새로운 양말이 낡아갈 즈음에는 나는 지금처럼 그대로이려나 아니면 달라져있으려나.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작가의 이전글 정 여사보다는 국두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