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제가 기쁨을 드리겠습니다
2017년 9월, 동유럽으로 엄마와 첫 모녀 여행을 떠났다. 당시 인천에서 헬싱키로 가는 비행기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보스 베이비]를 보았다. 아가들을 사장님(boss)으로 표현한 영화의 콘셉트가 재미있었다. 영화 속에서 아가를 한 기업의 대장인 사장님으로 표현했듯이, 실제적으로 아가들은 한 가정의 대장이 된다. 부모와 모든 가족들은 아가의 반응 하나하나에 쩔쩔맨다. 가족들의 속도 모르는 아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바쁘다. 계속 울음으로 불만을 표현하던 아가가 어느새 평안을 되찾고 웃음 지으면, 가족들에게는 아가의 웃음이 행복 그 자체가 된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엄마 사진을 많이 찍어 드렸다. 우리 엄마는 앞으로도 계속 예쁠 것이나, 조금이라도 더 젊음의 아름다움을 간직할 때의 사진을 많이 남겨드리고 싶어서였다. (유럽 여행 당시에는 없었으나 작년 2019년부터 엄마 머리에서 흰머리가 가닥가닥 보이기 시작했다. 슬프다.) 당시 엄마 사진 위주로 찍었지만, 랜드마크에서는 당연히 내 사진도 하나씩 남겼다. 엄마가 찍어주신 몇 안 되는 내 사진들이 너무 좋다. 우리 엄마는 내 예쁜 표정들을 잘 잡아주신다. 엄마가 찍어주신 내 사진들을 보며 너무 잘 찍어주셨다고 감탄하면, 엄마는 "내가 너네 어렸을 때 너네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었는데. 예전 감이 어딜 가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어렸을 때의 기억을 곰곰이 떠올려 본다.
애석하게도 엄마가 내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 어릴 적 기억의 대부분은 내가 어떤 걸 좋아했는지, 어떤 걸 싫어했는지 등의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의 기억이 대부분인 것 같다. 서울 어린이 대공원에서 아빠가 사준 전기구이 오징어가 맛있었던 것, 서울대공원의 보트 타는 느낌을 좋아했던 것, 5살이었나 7살이었나 삼팔선에 갔을 때 엄마 뾰족구두와 신발을 바꿔 신고서는 기분이 좋아서 히죽히죽 댔던 것, 아가 찬진이를 안아 보고 싶었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엄마가 못 안게 해서 화가 났던 것, 대구 내려가던 길에 아빠가 사주신 휴게소 음식이 맛있었던 것, 햄버거를 사달라고 졸랐더니 건강한 맛(애기들한테는 맛없는 맛)의 햄버거를 만들어주신 것... 대부분이 내 감정에 대한 기억들 뿐이다. 부모님과 관련된 기억들은 내 맘을 몰라주는 부모님께 화가 났던 것, 내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셔서 좋았던 것들이다. 부모님이 나에게 얼마나 헌신했었는지, 그 헌신이 얼마나 감사한 건지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물론 부모님께서 주시는 배려와 사랑에 당시 나도 '감사'라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그 정도로 배은망덕한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다. 단지 그 감정이 기억이 나지 않을 뿐. 당시의 나는 나 자신이 가장 중요했기에, 부모님에 대한 감사라는 감정은 나 자신의 희로애락의 감정 아래로 묻어버렸다. 부모님이 기억하는 나는 사랑을 줘야 하는 대상, 희생해야 하는 대상이었던 반면,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은 '나를 기쁘게 해줘야 하는 인물'이었다. 이것을 성인이 된 오늘에서야 깨달은 것을 보면, 나는 아마 지난 25년간 계속 대장으로 군림해왔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대장직에서 내려올 때가 됐다. 이제는 내가 당신을 기쁘게 해 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