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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찬희 Jul 08. 2020

예쁘게 낳아주신 손

어차피 모나질 손 왜 그리 아끼셨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우리 엄마는 내 손이 참 예쁘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손 콤플렉스가 있는데 딸자식 손은 예쁘게 낳아줘서 '성공'했다고 하셨다. 가끔 내 손을 꼭 잡고서는 소중히 보듬어 주신다. 나는 내 손이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나 가끔 다른 사람들로부터 손이 예쁘다며 칭찬을 듣는 것을 봐서는 예쁜 손에 축하긴 한가보다 싶다.


우리 엄마 손은 약간 뭉툭하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많이 하신 탓일 거다. 일찍 철든 막내 외동딸이었던 우리 엄마는 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많이 도와드렸다고 하셨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 바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계신 밭으로 나가 밭일을 돕고, 밥때가 되면 외삼촌들 밥도 꼬박꼬박 잘 차려드렸다고 했다. 대학 생활 때까지 이런 생활의 반복이라고 하셨다. 학교, 집안일, 공부, 학교, 집안일, 공부...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우리 아빠와 결혼을 해 우리 삼 남매를 낳아주셨다. 우리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돌아보면 사실 나랑 내 동생들도 우리 엄마를 그렇게 잘 도와드리는 편은 아니었다. 집안일은 전적으로 우리 엄마 몫이었다. 초등학교 때 설거지를 몇 번 도와드린 적이 있는데, 사실을 고백하자면 엄마를 도와드려야겠다는 효심보다는 설거지를 받고 용돈을 받고자 하는 욕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우리 엄마는 그때 당시 설거지를 하면 우리에게 1000원씩 용돈을 주셨다. 망할 중2병에 도취되어있던 청소년기에는 도와드리지는 못할 망정 엄마한테 '왜 우리에게 더 잘해주지 못하냐'며 황당한 떼를 쓰기도 했다.


우리 엄마가 우리 삼 남매를 오냐오냐 버릇없이 키웠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삼 남매는 나름 엄한 가정교육 하에 자랐다. 그저 우리 엄마 스타일이 우리에게 딱히 집안일을 시키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가끔 집안 대청소를 할 때에는 청소기 돌리기나 걸레질 등의 사소한 임무를 우리에게 부여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그때도 사실 물에 손이 닿아야 하는 걸레 빠는 일은 엄마가 하셨다. 락스나 세제물에 손이 닿아야 하는 등 유해물질을 다루는 일은 항상 항상 '어른'인 우리 엄마 몫이었다. 우리 엄마는 항상 이런 일은 어른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엄마는 이렇게 험한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우리도 이제 성인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몸에 유해한 일은 엄마 일이다.


3년 전부터 베이징에서 홀로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 내 손도 자연스레 점점 거칠어져 가고 있다. 요리, 설거지, 손빨래 등등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다는 게 바로 이것이구나 싶다.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면 귀티 나게 빵빵해진 똥배와는 다르게, 양손 손가락 끝은 주부 습진 때문에 피부가 다 갈라져 있다. 몰아서 손빨래를 하는 날이면 손목에도 무리가 갔는지 손목 통증이 1-2주는 지속된다. 손이 부르텄으니/ 손목에 무리가 갔으니 당분간 손을 쓰지 말자고 해도 집안일을 하다 보면 손을 안 쓸 수가 없다. 이럴 때면 항상 엄마를 생각한다. 우리 엄마도 그 당시에는 휴식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손가락이 칼에 깊숙이 베어도 반창고를 하나 붙이고 부어오른 염증의 통증을 참아가며 손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셨겠지. 집안일로 인해 손목이 아파도 울며 보채는 우리를 안아 올리셨겠지.


내 손 피부가 예전에 비해 거칠거칠하고 손목과 팔뚝도 예전보다 점점 두꺼워지는 것을 보면 우리 엄마 손도 아주 원래에는 예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엄마에게 "그동안 죄송했어요" "얼마나 힘드셨어요"라고 직접 말하기는 부끄러워, 막상 혼자 살아보니 집안일이 참 힘들고 손 피부도 예전 같지 않다고 몇 번 하소연을 해봤다. 그때마다 우리 엄마는 "그렇지, 집안일을 하면 아무래도 손이 망가지지. 그래도 네 손은 여전히 예뻐. 앞으로 관리 잘하면 돼."라고 답하셨다.


엄마가 약 10년 전 물려주신 시계로 손목에 생긴 흉터를 가리고 엄마에게 '시계를 아직 잘 차고 다닌다며' 사진을 찍어 보냈다.

최근에 바보스럽게도 스쿠터를 타다가 방향을 잃고 넘어지는 바람에 얼굴과 손에 상처를 입었다. 얼굴 상처가 꽤 심각했어서 얼굴 상처를 돌보느라 손과 손목에 난 상처는 조금 소홀히 했다. 습윤밴드를 붙였지만 아무래도 손과 손목은 쓰임이 많은 곳이라 붙여도 몇 시간 후면 떨어졌다. 다행히 얼굴에는 흉터가 거의 안 남았으나 양쪽 손과 손목에는 거뭇거뭇한 흉터 자국과 볼록한 흉터가 남았다. 손에 흉터가 남은 게 정말 속상하다. 우리 엄마가 나보다 더 속상해하실 것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니 어떻게 보면 다행이다. 아마 내년 설 때쯤 되어야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까지는 흉터가 어느 정도 사라지길 바란다. 어차피 이렇게 모나질 손. 왜 그리 아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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