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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원 Jan 15. 2023

고량주 한 모금 후의 '푸우우'(feat. 보보식당)

피단두부, 마라소스 가지튀김, 동파육 with번, 버터탕수육

'지금 서 있는 땅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

싸구려 재난 영화 포스터에 적힌 문구 같지만 아니다.


막연한 미래와 그 불안감에 대한 얘기다.

무엇이든 되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허무맹랑한 패기는 색이 바랜 졸업앨범 마냥 서랍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오랜 친구들을 만날 때나 꺼내 추억으로 안주 삼기 좋다는 점에서도 영락없이 졸업앨범과 닮아있다.


오히려 뜨거웠던 패기는 수 천 번의(아직 그 정도 수에는 못 미칠 수 있지만 체감상) 제련 끝에 높은 곳에 있던 시선을 아래로 내려 현재 딛고 있는 지점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제련한 만큼 단단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점은 오히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원대했던 꿈이 점차 소박해진다는 것

직함이나 구체적 액수의 복권 당첨금액, 사회적 문제해결 같은 꿈은 이번 프로젝트가 잘 끝나길 바라는 마음, 좋은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 이슈없이 평탄한 상태와 같은 모습으로 시점이 오늘 근방으로 맞춰진다.


적어놓고 나니 소박하다고 말한 것들이 전혀 소박해 보이지 않지만



좋은 사람들과의 맛있는 식사가 가장 소중하고 꿈이다

대낮에 칭다오 맥주를 식전주로 허기에 불을 붙이고

이후 주문한 고량주로

피단두부, 피단의 치즈를 닮은 꼬숩고 신선한 고수의 향을 머금고 '푸우-'

마라소스 가지튀김, 바삭하지만 속은 즙이 가득한 가지튀김에 얼얼한 마라의 촉감을 머금고 '푸우-'

촉촉한 동파육 with번과 달코롬한 버터 탕수육으로 내뱉어지는 '푸우-'


대화 속 뱉어지는 말들을 보충하듯

더해진 입안에 담은 음식들의 여운에 고량주를 붓는다. '푸우우' 하고 새어 나오는 술의 기운엔 불안감과 오늘의 꿈이 뒤섞여 있었다.



*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250의 로얄블루란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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