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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원 Mar 26. 2023

밀약과 성실 이행자 그리고 고향(feat.체부동잔치집)

해물파전, 들깨칼국수

서촌에겐 실제 고향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이상적 고향에 다다른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이 안도감 역시 상상력에 기반한 것이겠지만)

근처 북촌이나 안국역 일대에선 느끼지 못하는 감정인걸 보면 이데아에서 역시도 양반은 아니었나 보다.


막연히 떠나고 싶거나 복잡한 것들로부터 물리적 거리감이 필요할 때면 눈앞의 것들은 흐려지고 어릿 속 서촌의 풍경은 더욱 뚜렷 해진다. 하지만 누군가 “서촌은 어디가 좋아?”라는 질문엔 선뜻 답을 하기 어렵다. 고향은 경계선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마주하는 익숙한 풍경들이 건네는 나름의 '따스함'이 있었기에. 그런 이유에서 서촌은 늘 목적이었고 무언가의 배경은 아니었다.


가만히 서촌의 풍경을 보고 있자면 동네 사람들끼리 밀약이라도 맺은 듯하다. 유난이란 소리를 들을까 분명 은밀하고도 조심스럽게 협약을 논의하고 합의했을 것이다. 동네의 모습을 통해 미루어 보자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1조. 조화를 해치는 뽐내는 건물이나 눈을 사로잡는 것들은 존재해선 안된다.

2조. 어느 누구도 열등감이 들지 않도록 *건물의 높이를 포함해 그 무엇도 경쟁해선 안된다.

*초등학생들이 옹기종기 줄을 서있는 것처럼 다 고만고만한 크기로 존재해야 한다.

3조. 골목길 어귀에서 *‘차분함을 방해하는 것들’은 즉시 신고한다.

*그게 설령 고양이 일지라도


‘일절’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이기에 물론 예외적인 공간도 드물지만 존재한다. 하지만 그 공간 역시도 흰 옷에 튄 김치국물 마냥 거슬리기보단 주변 보다 조금 더 활기차고 유쾌한 정도 일 것이다. 체부동 잔치집은 그런 장소 중 한 곳이다. 시끌벅적해도 요란하지 않고 계속 손이 가지만 자극적이지 않다. 잔치라는 단어의 선입견 때문에 예외적 허용을 두었을 테지만 체부동 잔치집은 그 누구보다 성실히 협약을 이행하고 있었다. 서촌이라는 공간의 이데아 측면에서도


*글과 식당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검정치마의 '내 고향 서울엔'이라는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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