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사시미, 후토마키, 전복내장볶음파스타
입장부터 정신없었다
예약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죄책감 때문인지
어둑한 겨울밤과 대비되는 요란하게 번쩍이던 간판 조명들 탓일지
몸에 아려있는 치열했던 지난 파티의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버무려진 상황 때문일 수도 있을테지
기노는 위치부터 이 모든 것들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차분했다.
따뜻하게 적신 수건을 감긴 눈 위에 올린 듯
입장과 동시에 나 역시도 이내 차분해졌다.
편안함에 모든 신경들이 절전 모드로 바뀌었던 것인지 세세한 디테일들은 좀처럼 기억나지 않고 몇 가지 장면들만 기억난다.
바싹 옆으로 당겨 앉은 의자, 마주 잡은 두 손,
시답지 않은 이야기만으로도 씰룩거리는 눈과 입의 꼬리들, 어쩐지 우직해 보이는 셰프님의 인상과 응대, 그리고 이를 고조시키는 음식들
고정된 장면들 속에서도 즐거움은 피어났다.
사진을 꾹 누르면 당시의 감정이 튀어나오는 라이브 포토처럼
(곰곰이 당시를 떠올려보면 음식 맛을 보곤 물개박수를 치던 우리는 그다지 차분한 것 같진 않지만 적어도 차분함 속엔 있었다.)
소란스럽거나 빠르지 않고
천천히, 지긋이
도무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눈과 입의 꿈틀거림과 함께
*글, 기노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Mateo Stoneman의 The Very Thought Of You라는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