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기본적인 근무시간은 직업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오전 9시 출근 그리고 오후 5시 퇴근이다. 대부분의 사무직은 근무시간이 유연해서 출근시간, 퇴근시간, 점심시간 등을 자율적으로 매일 선택할 수 있고 미팅 시간과 겹치지 않는다면 외출도 자유롭게 해도 된다.
나는 주로 여덟 시 이십 분쯤 일어나서 여덟 시 사십 분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이유는,
1. 웰링턴의 대중교통은 친절하지만 매우 느리다!
2. 아침에 운동하고 바람 쐬면서 출근하면 하루가 상쾌하다.
3. 사이클은 친환경적이다.
내가 현재 사는 도시는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이다. 웰링턴은 뉴질랜드의 수도이지만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는 아니고, 인구는 50만으로 한국 김포시 정도의 인구이다. 우리 집은 시내 중심도 아니지만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어서 자전거로 회사까지 출근하는 데는 한 15분이면 충분하다.
한 아홉 시쯤 회사에 도착하면, 회사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사무실로 올라간다. 출근하자마자 첫 번째로 하는 일은 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주방에서 동료 직원들과 커피를 내려서 같이 마시거나 동료 직원들과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들고 오면서 마시기도 한다. 이 시간은 커피를 마시고 이메일이나 뉴스를 읽기에 좋은 시간이다.
번외 - 뉴질랜드의 스몰토크 문화
뉴질랜드에서는 스몰토크(small talk - 잡담)가 사회생활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서 회사 주방, 복도, 미팅룸 등에서 다른 직원들을 마주쳤을 때 유쾌하고 위트 있는 스몰토크를 해줘야 한다. 처음 뉴질랜드에 살기 시작했을 때는 매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냥 인사하고 지나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재밌는 대화를 해야 하는 것들이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나는 꽤 위트 있고 사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마트에서, 버스에서, 술집에서 등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이렇게 잡담을 해야 하는 문화는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내가 일했던 IT 회사들은 아침에 항상 스탠드업이라는 작은 미팅을 한다. 스탠드업 미팅은 보통 20분 정도로 짧은데, 내가 어제 했던 업무, 오늘 할 업무, 그리고 혹시 내가 오늘 할 업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승인이 필요한 일인지, 그렇다면 누구의 도움이나 승인이 어떻게 필요한지에 대해서 돌아가면서 말한다.
업무 본격 시작이다. 주로 2주 단위로 프로젝트 계획을 짜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오늘치의 일은 이미 다 정해져 있다. 프로그래밍을 하고, 미팅을 한다.
번외 - 소프트웨어 회사의 암묵적 규칙
많은 뉴질랜드와 미국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는 슬랙(Slack)이라는 채팅 앱을 사용한다. 우리는 슬랙을 통해서 시시각각으로 대화를 하고 필요한 업무 관련 보고사항들을 전달하고 이메일은 주로 회사 외부의 사람들과 소통할 때만 사용한다. 보통 일을 할 때 지금의 회사나 전에 일했던 회사에서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는데, 이는 헤드폰을 끼고 일을 한다는 것은 지금 하는 업무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업무라는 뜻으로 방해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상대방이 헤드폰을 끼고 있는데 질문을 할 사항이 생기면, 보통 슬랙을 통해서 먼저 지금 대화하기에 괜찮은지 물어보고 그다음에 직접 가서 질문을 한다. 단, 이 암묵의 규칙은 소프트웨어 회사에게만 적용되는 것일 수도 있다...!
점심시간은 배고플 때 아무 때나 시작하면 되는데 나는 아침을 안 먹기 때문에 주로 12시가 되지 마자 나의 점심시간을 시작한다. 점심을 먹으러 갈 때에는 점심시간이 특출 나게 길 예정이 아니면 (2시간 정도?)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뉴질랜드에서는 외식 값이 비싸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와서 먹거나 회사 주방에서 간단한 샌드위치 같은 걸 조리해 먹는 게 매우 흔하다. 혼밥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간단하게 샌드위치, 샐러드, 케밥, 초밥 따위의 점심을 사서 공원이나 식당에서 먹고 들어오는 경우도 매우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주로 간단한 샌드위치나 초밥 같은 점심을 사서 회사 근처에 있는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돌아온다. 웰링턴은 작은 도시라서 점심시간에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이 있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기도 한다. 나는 점심 운동을 즐겨하지는 않지만, 점심시간에 조깅, 요가, 스쿼시, 네트볼 등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고 해변으로 수영이나 낚시를 하러 가는 사람들도 있다.
오후에는 오전 일과처럼 업무를 하고 간간이 미팅을 하기도 한다. 업무 중간중간에 몸이 뻐근해지면 체조를 하거나 Hacky sack이라고 콩으로 만든 작은 공을 차면서 하는 공놀이를 하기도 한다. 한 세네시쯤 되어 출출할 때면 홍차와 쿠키를 곁들여서 티타임을 가지기도 한다.
번외 - Pair programming (페어 프로그래밍)
일하다 보면 종종 다른 개발자와 함께 페어 프로그래밍을 하기도 한다. 페어 프로그래밍이란, 함께 앉아서 한 사람의 노트북으로 같이 코딩을 하는 것이다. 레벨이 서로 다른 개발자들끼리 하기도 하고 비슷한 개발자들끼리 하기도 한다. 페어 프로그래밍을 처음 할 때에는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지만 사실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된다.
만약 초급 개발자가 프로그래밍을 하다 막혀서 상급 개발자에게 도움을 청했을 경우, 상급 개발자가 초급 개발자에게 단지 답안만 알려준다면 초급 개발자는 현재 마주한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지언정 후에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는 같은 곳에서 또 막힐 수도 있다. 반면에, 상급 개발자가 초급 개발자와 함께 앉아서 초급 개발자의 노트북으로 문제를 같이 파악하고 해결한다면 초급 개발자는 훗날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부모가 새끼에게 사냥감을 직접 가져다주는 것보다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효율적인 것과 같다.
레벨이 비슷한 개발자들끼리 페어 프로그래밍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함께 코딩을 하면서 본인의 코딩 습관을 인지하게 되고, 전엔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됨으로써 각자의 취약한 부분을 더 발전시킬 수 있다.
번외 - 뉴질랜드의 티타임 문화
뉴질랜드의 모든 사람들이 매일 티타임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점심 전이나 오후에 티타임을 가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뉴질랜드에는 영국에서 온 초기 이민자들이 매우 많고, 또한 뉴질랜드는 구 영국 식민지, 현 영국 연방국가로 영국과 문화적으로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퇴근시간도 출근 시간과 마찬가지로 자율적이다. 나는 주로 5시에 퇴근을 하지만 자녀가 있는 직원들은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기 때문에 더 일찍 출근하고 더 일찍 퇴근하거나 더 늦게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커플 중 한 명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한다면, 그 한 명은 더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더 일찍 출근해서 더 일찍 퇴근하고 아이를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데리고 집에 오는 식이다.
점심을 먹으러 갈 때에는 굳이 다른 팀원들에게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공지하지 않아도 되지만, 퇴근할 때에는 집에 간다고 인사를 하면서 퇴근을 한다. 퇴근도 출근과 마찬가지로 술 마시는 금요일이 아니면 회사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가지고 싸이클로 주로 퇴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