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날 첫 출근이라니!
쉐어지스에서의 첫날은 만우절이었다. 나는 항상 만우절이 되기 오래전부터 만우절에 사람들을 어떻게 속일지 철저히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쉐어시스의 첫날에는 '그래도 첫날인데 조금 더 진지한 첫인상을 보여주자'는 생각에 만우절임에도 불구하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기가 막힌 드립들을 끝끝내 삼켜내느라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곧 2020년의 만우절이 다가온다. 그 말인즉슨 올해는 또 어떻게 사람들을 즐겁게 골릴지 곧 계획을 짜야한다는 뜻이고, 또한 내가 쉐어지스로 이직한 지도 어느덧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참에 이번에 지난 일 년에 대한 블로그를 작성해 보기로 했다.
뉴질랜드에 사람들이 초기 이민 오기 시작할 때만 해도 2-3개월만 저축을 해서 집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집값도 싸고, 은행 이자율도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뉴질랜드의 은행 이자율이 점점 낮아지면서 젊은 층들이 부모님의 도움 없이 돈을 모아서 스스로 집을 사고 자산을 확장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는 은행 저축으로만 집을 구매하기에는 오래 걸리는 세상이다. 쉐어지스는 뉴질랜드 웰링턴에 있는 직원 40명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IT 핀테크 회사로 쉽고 재미있게 소액 투자를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앱을 만들어 투자를 해 본 적이 없고 투자에 관해 아직 잘 모르는 비 기득권층이 투자에 대해 배우고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나는 쉐어지스로 이직하기 전부터 쉐어지스의 고객이었고, "5달러를 가진 사람에게 50만 달러를 가진 사람과 똑같이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라는 회사의 목표가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밖에도 쉐어지스로 이직을 해야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마음을 굳히게 된 건 쉐어시스에서 기술 면접을 볼 때였다.
뉴질랜드에서 개발자로서 취업을 할 때는 면접을 최소 두세 번은 보는데, 그 중에 기술 면접(Technical interview)은 직업에 필요한 기술을 지원자가 갖추고 있는지 평가하는 면접이다. (참고 - 뉴질랜드 IT회사의 개발자 채용과정) 예상했듯이, 기술 면접은 많은 개발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면접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기술 면접을 하기 위해 회사에 도착해서 매우 떨리는 가슴으로 면접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쉐어지스의 CTO(최고 기술 경영자)인 리처드와 개발팀 팀장인 마틴이 면접을 보기 위해 들어왔다. 리처드는 자리에 앉자마자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물론 영어로).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저는 쉐어지스의 최고 기술 경영자이지만 저도 완벽하지 않고, 이 쪽에 앉아있는 마틴도 완벽하지 않아요. 하지만 마치 퍼즐 조각처럼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협력하고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팀워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오늘 저희의 질문에 대답할 때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 모두 면접 과정에서 빠르게 답변하기가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혹시나 답변을 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희가 잘 이끌어 주도록 할게요.
대박...
리처드가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반응은 "대박..." 이였다. 면접을 보기 전에 이렇게 면접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따뜻하게 배려해주는 리더가 있는 회사라면, 분명히 회사의 다른 직원들도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일 것이고, 회사의 근무 환경도 이와 같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기술 면접을 봤을 때는 이미 쉐어시스의 몇 명과 인터뷰를 한 후였는데, 쉐어지스에서 만났던 세 명의 직원들이 모두 리처드와 같이 친절하면서도 회사의 목표에 대한 뚜렷한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리처드가 이렇게 따뜻하게 나를 배려해주면서 면접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면접 질문에 대해 답변할 때면 긴장해서 등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은 여전히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면접하는 내내 리처드와 마틴은 농담도 하고 재미있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이어갔고 내가 편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물 흐르듯 부드럽게 잘 이끌어갔다. 면접이 끝나자 리처드는 나를 회사 문 앞까지 배웅해 줬고, 악수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어떠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네요. 다른 개발자들과 함께 프로그래밍에 관해 대화하는 건 항상 즐거워요. 오늘 좋은 시간 되셨길 바라고 그러면 제가 추후에 면접 결과에 대해서 연락해 드리도록 할게요. 너무 감사했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언제나 면접이 끝나고 나면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분위기는 어땠나, 걱정되고 찜찜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그 날은 최소한 내가 리처드와 마틴의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집에 가는 길의 발걸음이 너무나 가볍게 느껴지는 기분 좋은 하루였다.
내가 그 날 기술면접에서 느꼈던 직감은 너무나 옳았다! 쉐어지스에서 일한 지 이제 어느덧 일 년, 나는 매일매일 출근해서 내가 그날 면접에서 느꼈던 친절함, 즐거움, 그리고 열정을 느낀다.
나는 항상 사회 정의와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내가 하는 일은 부자를 더욱더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것뿐이라는 느낌에 일이 즐거워도 어딘가 찜찜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쉐어지스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비 기득권층과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투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투자 옵션을 제공하면서 이제는 조금이나마 내가 매일매일 사회정의와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어느 정도의 공헌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쉐어지스에서 일을 시작한 이래로 나의 프로그래밍 실력이 확연히 늘었다는 것을 매일 몸소 느낀다. 나도 한 때는 과연 프로그래밍이 내 적성에 맞는지, 과연 나의 실력이 앞으로 늘 것인지 확신이 안 서 막막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큰 그림들이 빠르게 눈에 그려지고 나의 프로그래밍 방법에 대해 자신하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예전에는 맨몸으로 뭣도 모르고 정글을 헤쳐나가는 느낌이었다면, 요즘은 비싸고 좋은 도구를 이용해서 정글의 끝에 뭐가 있을지를 미리 보고 효율적으로 모험을 하는 느낌이다.
쉐어지스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빨리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았다.
1. 나는 매일 10명 정도의 다양한 다른 레벨의 개발자들과 함께 일한다. 프로그래밍 이후에는 항상 함께 서로의 코드를 리뷰하고, 페어 프로그래밍 (함께 앉아서 한 노트북으로 같이 코딩하는 것 - 페어 프로그래밍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뉴질랜드 개발자의 하루 일과 참고)도 자주 한다. 나는 4년 차 중급 개발자로서 상급 개발자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초급 개발자를 돕기도 하는데, 초급 개발자를 도우면서 내가 다시 배우는 부분도 어마어마하다.
2. 매 2주마다 전체 개발팀 직원들이 모여서 tech talk라는 미팅을 하는데, 첨단 기술, 코딩 기술,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 등에 대해서 자유롭게 주제를 가져와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3. 쉐어지스에서는 매년 각자 매니저와 함께 올 한 해 개개인이 스스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목표와 계획을 세운다. 이 목표는 직무와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여도 괜찮다. 예를 들어, 나는 작년에 매니저 마틴과 함께 한 해 계획을 세웠는데, 계획으로는 '3년 내에 상급 개발자가 되는 법', '75미터 이상 수영하기', 그리고 '첫 자가 구매를 위한 저축 계획 세우기' 등의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일 년 목표를 세운 후에는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회사에서 정해진 금액의 지원금도 나온다. 나는 지원금을 사용해서 개발 관련 컨퍼런스들도 많이 가고 내가 더 배우고 싶은 분야에 대한 강의를 수강하기도 했다.
쉐어지스에는 웰빙(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몸과 마음을 모두 건강하게 가꾸는 것)을 위한 사내 프로그램이 많이 있는데 그중의 몇 개를 예로 들어보겠다.
명상의 시간에 함께 모여서 HeadSpace라는 앱을 사용해 15분에서 20분 정도 명상을 한다.
몸과 마음을 재 균형화하기 위해서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활동을 함께 한다. 훌라후프 돌리기, 산책하기, 요가하기, 작은 화분에 선인장 심기 등의 활동을 한다. 하루는 내가 Re-balance 시간을 주최해 보겠다고 자원해서 다 같이 한국어로 서예를 했는데 다들 매우 신기하고 재미있어했다.
마음의 소리 시간에는 원하는 사람들만 개인적으로 미팅룸에 들어가서 회사에 있는 정신 상담 도우미와 일대일로 대화를 할 수 있다. 업무 관련 이야기, 스트레스받는 사건들 뿐만 아니라 내가 오늘 느끼고 있는 감정, 혹은 사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고 대화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웰빙이라 하면 왠지 거창하게 느껴지고, 나는 이미 행복한데 왜 굳이 웰빙을 더 챙겨야 하나 하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쉐어지스에서 일을 하면서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많이 생기게 되었고, 나의 웰빙을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을 규칙적으로 투자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것은 진짜 큰 행운이다. 왜냐하면 매일매일 회사를 가는 일이 설레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함께 모닝커피를 마시고, 가끔 점심도 같이 먹고, 점심시간이나 오후에 같이 공놀이도 하고, 3-4시쯤 되면 티타임도 가지고, 금요일에는 함께 수제 맥주도 마신다 (자세한 내용은 뉴질랜드 개발자의 하루 일과 참고). 같이 얘기하고 일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시간이다. 회사에 출근한 후부터 퇴근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빨리 가는지!
멋지고 본받을 만한 사람들이 회사에 많다는 것도 정말 큰 장점이다. 쉐어지스에 일하면서부터 나는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을 통해 환경보호, 기후변화, 정치, 리더십,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법, 사회에서 다양성을 수용하는 방법 등 내가 관심 있어했던 많은 분야에 대해 배웠다.
쉐어지스로 이직한 후의 일 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다수의 큰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개발 업무를 담당했고, 신기술을 만들고 그에 대해서 고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바로바로 피드백을 받았다. 쉐어지스에 일한 이래로 파티 같은 곳에서 우연찮게 쉐어지스의 고객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내가 만든 앱을 사용하는 고객들과 함께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건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신기하다. 나에게 투자라던지, 핀테크라던지, 이런 것들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어떻게 돈을 관리하는지,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줄 만큼 이 미지의 분야에 대해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에 매니저와 작년에 함께 세운 나의 1년 계획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그중에 많은 목표들을 달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연 올 한 해는 또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곧 매니저와 함께 내년 계획을 다시 세울 날이 온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회사의 한 해 계획도 세울 것이다. 나와 쉐어지스가 함께 곧 새로운 도약을 할, 다가올 또 다른 한 해가 너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