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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Apr 10. 2024

근로기준법, 적과의 동침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근로기준법이 악인 냥 대놓고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3~4년 전만 해도 인사담당자가 근로기준법을 운운하면 인사쟁이가 어떠니, 한심한 소리 하고 있다느니, 이상적인 얘기나 한다느니 심하게 비판받곤 했죠. 저는 좋게 말하면 '유도리'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편법이라 할 수도 있을 텐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되 우선순위를 조절하는 방식을 쓰기도 합니다.


인사담당자 입장에서는 나중에 문제가 될 때 꽤 큰 리스크 대응 비용을 걱정하여 이건 꼭 해야 한다 말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물론 경험치에 따라 그 리스크 발생 가능성과 실제 발생 시 이슈 대응 비용, 영향력을 인식하는 차이에 상당한 갭이 있긴 합니다. 경험이 적을수록 모든 리스크를 강강강으로 인식하며 다 틀어막으려 하기도 하는데 이건 HR이 유의해야 할 점이고요.


자원이 한정적인 스타트업에서 근로기준법을 부담스러운 강제사항으로 여기는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적이 아니라 내편, 기회요인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는 각설하고.


한 스타트업은 퇴사자들에게 수천만 원 이상의 연차수당을 미지급해 근로감독에 적발되어 과태료 1,000만 원 이상을 내야 했습니다.


2020년 A회사는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의 위반으로 19억 여 원의 과태료와 과징금을 부과받았습니다. 연차휴가 미지급, 법정근로시간 위반 등이 포함되었죠. 물론 여전히 사업과 별개로 A회사는 선망하는 회사이며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은 기업입니다만 기껏 쌓아 온 좋은 기업의 이미지 하락은 물론이고 배달기사들의 소송이 잇따랐습니다.


B회사도 직원의 과로사를 기점으로 노동환경 문제가 도마에 올랐고 21년 특별근로감독에서 109억 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습니다. C회사도 22년 근로기준법, 개인정보보보호법 위반으로 9억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었죠.


근로기준법이 아니어도 인력 운용 관련해 다양한 제도들이 있습니다. D회사는 병특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등기 임원 신분에도 임원 돌연 사퇴 후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며 위법을 알고도 묵인하던 게 드러나며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직원들에게 지급할 걸 주지 않다가 과태료로 결국 내게 된 것과는 별개로 이로 인한 회사의 평판 추락, 이 과정에서의 조직분위기 저하, 나쁜 회사라는 프레임의 씌워지는 건 일시적 과태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정성적 비용이 됩니다. 각종 소송 리스크, 이로 인한 우수 인력 이탈, 인력의 악순환 등은 일시불로 내는 과태료가 아니라 두고두고 언제 탕감될지 모를 사채빚이 되어 버리죠.


무엇보다 이제는 누구나 인터넷에서 구체적인 법, 판례를 찾아볼 수 있고 정보가 많아졌습니다. 불과 몇 년 만에 직원들의 권리 인식이 높아져 조직의 입발림이나 어설프게 넘어가려는 건 안 하니만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저만 해도 구조조정을 상시로 해왔지만 근 몇 년 사이에 일하는 상황에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전에는 대화로 자진퇴사의 비율이 더 높았다면 지금은 서로 조건 맞춰 권고사직하는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대표님들에게도 헤어짐 자체가 목적이라면 최대한 조건 협상을 해야지 감정과 편법 찾기에 에너지 소모를 하지 마시라 말씀드립니다.


최근 초기 스타트업 중 초기 멤버들과의 이슈로 분쟁 있는 몇 곳의 자문을 진행했습니다. 동일한 건 근로계약이나 취업규칙의 미비 (처음에는 그것까지 챙길 여력이 없어서, 그다음에는 괜히 만들었다가 회사가 불리해질 거 같아서)로 쉽게 풀 수도 있었을 문제를 눈덩이처럼 불려 버렸다는 점입니다. 그 와중에도 다른 회사 대표들도 다 어쩌라 했다며 합리화하시는데 따끔히 말씀드립니다. 대표 단톡방에서 그런 거 듣지 마시라고! 그럼 또 야근도 많은데 수당 다 챙겨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돈이 없으니 돈 걱정이야 당연한 거고 속 없는 말씀드리자는 건 아니지만 본인 사업하면서 사람을 쓸 때엔 줄 거 주고받을 거 받는 게 당연한 겁니다. 초기 멤버들은 그런 거 말 않고 헌신했는데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약았다느니 내 맘 같지 않다느니 하며 새 사람들에 비판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헌신적으로 해준 사람이 고마운 거지 그게 당연하면 안 됩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먼저 주고 요구할 거냐 보여주면 주겠다 할 거냐. 대표님들은 지금은 어렵지만 잘해주면 보상해 줄게가 더 많습니다. 물론 진심이겠지만 입장을 바꿔본다면 어떨까요? 대표가 아니라 본인이 직원이라면 왜 헌신하지 않느냐, 왜 일일이 따지느냐, 스타트업에 그런 게 어딨냐 하는 말에 동의할 수 있을까요?


스타트업에서 의무와 책임보다 권리를 훨씬 더 많이 챙기는 직원들도 많습니다만 그건 그거고 대표는 대표 입장에서 할 걸 해야 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게 바로 최소한의 규정 정비고요. 앞으로 관련해 글을 더 올릴 텐데 이게 대표님과 회사를 지키는 명분이 될 겁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걸 할 뿐인데 든든한 무기가 될 수 있어요.


규정은 경영자와 직원 양측 모두에게 칼과 방패, 칼과 칼, 방패와 방패가 됩니다. 일방적이라는 건 잘못 쓰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셔도 됩니다.


잘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셔야 할 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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