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관련해 제 업무 동기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요인 하나를 이야기해볼까 해요. 바로 업무 진전감이에요. 이건 이번 에피소드의 상황뿐만 아니라 제가 일해온 시간 전반에 걸쳐 저의 업무 동기를 저하시키는 키워드입니다. step forward 혹은 progress.
예전 직장에서 R&D연구원의 동기부여와 몰입방안에 대한 Task를 한 적이 있어요. 전 동기부여란 주제에 현재는 살짝 회의적인 입장이에요. 다 자란 성인, 각기 다른 배경과 성향을 가지고 처한 상황마저 다른데 동기를 타인이 부여할 수 있는가란 의문이 있거든요. 물론 저도 리더에 따라 열심히 하고 싶어 졌던 적이 많아요. 선배나 동료도 좋은 자극이 되었고요. 반대인 경우도 많았죠. 그런데 갈수록 동기를 부여한다는 건 인풋 대비 아웃풋이 너무 안 나오는 일이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좀 극단적이지만 동기를 DNA에 타고난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구분하자 합니다. 그리고 조직에서 신경 써야 하는 건 최소한 타고난 동기를 꺾지 말자라고. 말장난 같지만 저는 오히려 이렇게 관점을 정리해 채용이나 육성, 헤어짐에 적용하니 훨씬 심플해지더군요.
다시 돌아가 이 Task 결과를 정리하며 하나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동기부여니 몰입방안이니 하는 설문이나 진단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키워드가 떠오르세요?
일의 배경 설명, 일의 의미 전달, 인정, 보상, 좋은 전략, 리더, 동료....
네, 이 연구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식상하리만치 익숙한 저 단어들 속에 관통하듯 전제되는 키워드가 업무 진전감이었습니다.
"언제 가장 몰입하세요?", "언제 가장 일에 즐거움을 느끼세요?"란 질문에 중요하다 생각하는 일을 해낼 때란 답이 가장 많았는데 사실 조직에서 프로젝트를 할 때는 경중은 있어도 다 이유가 있고 중요해서 진행하죠. 그럼 대부분은 몰입하고 높은 동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좀 더 파보기로 했습니다.
이걸 가르는 게 정확히 뭘까 궁금해졌거든요.
그 결과 '업무 진전'이란 개념의 유무에 따라 몰입과 동기의 정도가 확연하게 달라짐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임직원의 사기를 가장 저하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업무의 지지부진한 전개였던 거죠. 업무가치는 좀 떨어져도, 리더십이 그다지 세련되지 않더라도 일이 쭉쭉 진행만 된다면 구성원의 만족도가 의미 있게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보상이나 인정이 매 순간 일어나지는 않고, 리더십도 복불복인 데다 일의 의미도 매번 리마인드 해줄 수도 없어요. 그래도 몰입하고 열심히, 신나게 하는 분은 또 많더란 말이죠. 일만 잘 기대대로 진행되면 이것들을 상쇄하고도 남더라가 결과였습니다.
반면에 리더의 느린 의사결정이나 의사결정의 번복이 동기와 몰입을 저하시킨다는 답변이 많았는데 그 근간에는 업무진전이 되지 않는다는 게 존재했죠.
2020년 오랜 대기업 생활을 뒤로하고 극초기 스타트업에 1인 인사리더로 합류했어요. 전 대체로 에너지가 고른 수준에서 유지되고 인정이나 동기부여를 타인으로부터 받지 않아도 제 만족이 더 중요해 몰입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20년 가까이 별의별 상황에서 대부분 유지했던 평정심을 이 당시 합류하고 고작 두 달 만에 잃게 되었죠. 일의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자괴감마저 저를 괴롭히고 있었어요. 늪에 빠져 죽어라 버둥댐에도 빨려 들어가고만 있단 느낌 때문에요. 이럴 땐 제 능력을 과도하게 자책하는 성격이라 끝도 없이 다운되더군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느 저녁 이유를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떠오른 게 저 Task였어요. 그리고 이 아티클을 찾아냈죠.
저는 속도가 무척 중요하고 성장과 방향도 중요하며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유형이다 보니 '완결'이란 키워드까지 갖춰져야 신나게 몰입하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수술 직전 몸이 만신창이 수준일 때 하지도 않던 등산을 혼자 가겠다며 한라산을 오른 적이 있어요. 남들보다 서너 시간 더 걸려 백록담을 간신히 밟았죠. 한 번 왔으니 다음엔 백록담까진 오지 말아야지 했지만 백록담까지 가는 코스가 하나 더 있더라고요? 네.... 그래서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체력이 어떻건 산을 가면 무조건 정상을 찍고야 맙니다. (이젠 좀 많이 내려놨어요. ^^;;)
20년의 제 상황에 적용해 보면 저런 제가 왜 그리 다운되었나를 보니 '진전'과 '완결'을 두 달간 거의 경험하지 못한 데에 이유가 있었죠. 극초기 스타트업이라고는 하지만 계열사가 20여 개 있는 지주사가 신사업을 하며 4개 계열사를 합치며 시작한 회사였기에 이전 히스토리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어요. 서류 하나 정리는커녕 '이 문서가 어디에 있기는 한가?"라며 '없는 걸 확인하는' 데에 정말 많은 시간을 썼거든요.
회사도 동료도 제품의 비전도 진심으로 애정했기에 충분히 몰입하고 즐겁게 일하면서도 바로 이 진전감과 완결을 체감하기 어려워 스트레스를 극도로 받고 있던 거였습니다. 원인을 알아냈으니 그럼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를 고민해야 했는데 제 결론은 집중할 수 있는 연속된 시간의 확보였어요.
쉴 새 없이 울리는 슬랙, 면담 요청, 퇴사자들의 문의, 회의로 1시간도 하나에 집중할 수 없었으니까요. 자리에 앉아 있으면 누군가는 "시간 괜찮으세요?"라며 옆에 와 앉아 있었거든요. 의도적으로 집중할 일의 범위를 좁혀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상황이기에 제가 택한 건 "노트북 들고 튀자!".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오늘은 정말 이걸 해야 해란 일이 생기면 회사 인근 카페로 도망가 있곤 했답니다. (사무실로 불려 올라오고 마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요)
일반 직장에서도 유사한 상황은 많이 있지만 리더가 주의해야 하는 부분도 바로 이 점 같아요. 많은 리더십 책, 글, 교육에서 리더는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일의 의미를 꾸준히 알려주며 인정해 주라고 합니다. 하지만 두루뭉술한 그런 얘기를 그래서, 어떻게, 언제, 얼마나 해줄 수 있는가는 손에 잡히질 않아요. 이걸 다 해준다 해도 정작 일에 진척이 없으며 도루묵인 건 말해주는 곳이 별로 없지요. 업무 능력이 아직 미흡한 팀원이라면 뭘 도와주면 일이 진행될 수 있는지를, 알아서 몰입 잘하는 팀원이라면 일의 진척을 가속화해줄 방안을 좀 더 고민해 주시는 게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우유부단한 리더가 최악의 리더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단순히 번복, 기다림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게 본질이더군요. 성장욕구가 강한 팀원일수록 내가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아야 즐거울 수 있고, 자신감이 없는 팀원이라도 걱정 한가득 담아 일하는데 돌아보면 이 만큼 왔네란 느낌이 그를 자극할 수 있거든요. 팀장이 위에 있는 임원 때문에 일을 진전시키기 어려워라 한다면 그 임원의 뭘 건드려주어야 일이 진행될 수 있는지를 찾아보고 그걸 해보세요. (물론 불합리하거나 비위를 맞춰주란 얘기는 아니고요)
그리고 동기부여와 몰입 방안을 고민할 때엔 일의 의미를 부여를 더 해야 하나, 의사결정 번복 때문에 그런가에서 하나 더 나아가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를 생각해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 결과는 어떤 요인이어도 많은 경우 하나로 귀결되곤 하거든요. 관통하는 걸 찾아보세요.
여러분의 업무진전감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