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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OO Nov 19. 2024

일이란..

"살 만하지 않은 날이 있다. 밥벌이가 고되어 씻으러 욕실에 들어갈 기운조차 없을 때, 문득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들 때.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위해 이렇게 슬프고 아프고 치열해야 하냐고 묻는다." 
- 이윤주, '나를 견디는 시간 중'


지난주 고객사 채용 서류 검토 중에 잠시 멈추게 만들고 며칠 째 머리에 맴도는 이력서 한 장.


1949년생, 그 시절 유명 대학에서 석사까지 하신 분. 1975년부터 시작해 세 개 회사에서는 각각 13년, 13년, 16년을 재직했다. 정년퇴임 하셨을 그 이후에도 약간의 텀을 제외하면 22년 말까진 관련 업종의 일을 꾸준히 해오셨다. 


모르긴 해도 지금보다 훨씬 전에 찍었을 듯한 사진, 근 15년 이내에 본 적 없는 양식, 그리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까지 자필로 꾹꾹 눌러쓴 화질 나쁜 투박한 이력서. 


나도 모르게 이분의 정년 퇴임 후 일은 무슨 의미였을까를 어느새 생각해 보고 있었다. 


정말 절박한 생계를 위함이었을지, 뭐라도 하고 싶은 의미였을지, 상실감이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함일지, 그저 충분히 여유롭지만 자신을 위해 급여에 연연 않으며 즐기는 일일지는 알 수 없다. 




지난 2주간 지인들과의 대화와 커리어 세션에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독립 후 꾸준히 받는 질문은 독립하니 좋으냐와 다시 회사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없느냐. 


난 사업자등록을 하는 중에도, 그 이후에도 쭉 늘 회사에 가고 싶단 생각을 해왔다. 물론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냐의 문제는 아니다. 오랜 대기업 생활을 뒤로 하고 초기 스타트업만 골라 합류하며 일해 온 건 성장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며 나의 한 방도 채우고 싶어서였다. 아직 그 경험을 하지 못했고, 나이가 있기에 한 번은 제대로 그런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단 열망이 여전하다. 늘 이슈 많고 정리하기 바쁜 조직에서 일했고, 고객사도 주로 이슈 해결이 주였기에 성장하며 앞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조직에 대한 로망도 여전하고. 


물론 그러기엔 스타트업에서 부대끼며 환상은 없어진 지 오래고 독립 후 훨씬 커진 기회비용과 높아진 눈높이를 쌍방으로 충족할 회사를 만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 번 가슴이 뛰는 회사를 만난다면 지금의 누림을 미련 없이 털고 언제든 합류하겠단 마음이 있다. 그래서 지금 더 열심히, 많이 일한다. 독립했다 별 볼 일 없어 회사 간단 말 듣기 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류했단 뿌듯함을 갖고 싶어서. 


저분의 이력서를 보며 일이란, 직업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내 나이보다 한참 어린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중반의 이력서가 채용시장에 넘쳐나고 있다. 주에 500건 정도는 보는 이력서, 이렇게 나오는 사람만 있고 뽑는 회사가 적으면 어쩌냐는 나라 걱정도 한다. 동시에 행복한 저울질을 하고 아직은 열망이니 하는 속 좋은 소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월급쟁이라서, 먹고 살자고.

일의 의미, 비전, 사명, 소명. 


흔하지만 너무나 중요하고, 너무나 중요하면서도 쉽게 폄하되기도 하는 말들을 곱씹어 볼 때다. 조용한 퇴사니, 받은 만큼 일하느니 하기엔 자는 시간 외에 좋든 싫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는 게 일 아닌가. 대충 하거나 안 맞는다 도망다니는 데에 허비하긴 아깝다.


대단한 자의식까지 담진 않아도, 적어도 내 리소스 중 대체 불가능한 시간을 이만큼 쓰고 있다면 무조건 소중하게 잘 다뤄야 하는 게 맞다. 그래서 소중히 다룰 가치가 있는 곳이고 일인지를 잘 생각해야 하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주어진 '인생의 의미'라는 것은 없다.
'인생의 의미'는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 장명진 (그림작가)
그림작가, 장명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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