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그리고 서른넷의 8월
오랜만의 낮잠으로 늦은 밤 잠이 오지 않는 너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잠을 자서 잠이 잘 안 오지?’라고 이야기해주는 엄마이길 바랐는데, 역시나 잠이 오지 않아 자꾸만 잘 준비를 하지 않는 너에게 오늘도 화를 냈어. 아… 정말이지 상냥하고 친절한 엄마는 어려운 일이구나 싶구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일인지 엄마는 엄마가 되기 전까지 정말로 알지 못했어.
평소에 아이들을 좋아하고 잘 돌보는 편이었는데도 한 사람을 평생 그리고 내 아이를 키우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지.
아마도 여름밤이었던 것 같은데, 예전에 엄마가 결혼도 하기 전 그러니까 대학생 때쯤 영실이 이모네 집 놀이터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고 하는 엄마의 말에 영실 이모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도 결국 결혼을 한 이상 아이를 갖게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었지. 그때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엄마는 한 생명을 낳아서 기른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음 지금 생각해보면 무섭다기보다 그 책임이 너무 막연할만큼 크게 느껴져서, 그래서 무섭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까 해. 내가 엄마가 되고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에 영향을 받고 자라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도 안되지만 막연하게 너무나 큰 일 같았거든. 지금도 역시나 엄마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는 너를 보며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몸소 경험하고 있어. 기본적인 생각은 그렇지만 순간순간 생겨나는 감정들은 아직 엄마도 다루기가 쉽지가 않아. 대표적으로 ‘화’가 그렇지. 아니 거의 대부분의 ‘화’에 관련된 걸까? 감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말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간혹 가다 내가 감정 자체가 되어버리는 상황들이 왕왕 있어. 그러고 나면 꼭 후회가 밀려오지. 엄마는 네가 엄마보다는 스스로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데, 엄마가 먼저 그렇지 못한 모습들을 보여주다 보니 배울 수 없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육아가 한창 낯설고 수면부족으로 체력도 없었던 아기 시절엔 단순히 육아 스트레스나 수면부족의 이유로 절제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직도 ‘화’를 다스리는 게 어려운 걸 보면 원래 그랬던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어. 그전의 나는 어땠는지 생각이 잘 안나기도 하고… 기억을 곱씹어 보면 오히려 아주 큰일들에 대해선 냉정하고 침착했던 편이어서 감정의 기복이 밖으로 표출되는 일이 적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그걸 어떻게 하는 거였던 거 싶기도ㅎ 아 그래 큰일들에 대해선 지금도 그런 편인데 육아를 하면서 올라오는’화’는 좀 다른 결의 문제인 것 같다. 주로 엄마가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것 같아. 그 ‘화’가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는 너에게 좀 더 자주 향하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과연 이렇게 작고 예쁜 네가 엄마에게 확실하게 꾸지람 혹은 훈육을 받을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를 따져보면, 신체가 위험할 수 있는 일들을 제외하고는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좀 많은 것뿐인데… 훈육이라는 핑계로 너무 자주 다그치는 게 아닐까? 엄마도 엄마가 이렇게나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리는 발성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거든ㅎㅎㅎ 이 글을 쓰면서도 평소에 잘 참아야지. 소리치지 말아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참 속상하고 그래.
아직 그저 해맑은 너는 엄마의 조기교육 탓에 난 결혼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곤 하는데, (엄마는 결혼 절대 하지 마!라고 말하지 않았어ㅎㅎ 다만 결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괜찮은 일이니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단다. 그랬더니 찰떡같이 알아들은 너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 것 하면서 살고 싶다고 대답해주었지ㅎㅎㅎ) 혹시나 나중에 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된다면 엄마가 느끼는 이런 감정들을 느끼게 될까?라는 궁금증도 생겨. 그때의 너는 이런 감정이나 고민들을 오롯이 엄마로서 혼자가 아닌 부모로서 짝꿍과 함께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엄마세대도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주양육자를 당연하게 엄마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쉽게 바뀔 것 같지가 않아. 그래서 적어도 네가 엄마가 될 때쯤에는 엄마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육아의 책임감이 아빠에서도 많이 느끼고 단지 성별의 다름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 엄마는 감정적인 부분이 아주 잘 발달한 양육자 여서 상대적으로 이성적인 부분이 아주 잘 발달된 아빠가 훈육에 있어서는 적임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실제로 엄마 아빠의 차이라기보다 사람마다 가진 성향의 차이이기도 하고 말이지.
당장의 너의 육아가 한창 진행되는 지금 미래의 네가 겪을 육아까지 생각하다니 멀리 가도 좀 멀리 간 것 같지?ㅎ 그래 일단 엄마의 육아에 집중해야겠어ㅎ 이렇게 글로 남기기까지 했으니 부디 내일의 엄마는 너에게 소리치지 않는, 단호하고 정확하게 필요한 때에만 최소한의 훈육을 잘하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잘 자고 우리 또 만나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