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주 동안의 내 삶을 이 한 문단에 요약할 수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일어나서 씻고 회사에 간다. 점심은 대체로 산책으로 대신하고, 회사에서는 가끔씩은 이렇게 땡땡이(?)도 치지만 비교적 성실하게 일하는 편이다.(일단 일하는 속도가...) 6시 즈음에 퇴근해서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피티(PT)를 가고, 남은 사흘은 집에서 대충 시간을 보낸다. 거의 대부분 티비를 시청하는 게 일이다. 토요일에는 회사에 나오는 날도 있고, 가끔씩은 약속이 있다. 늦게 일어나서 그렇게 대충 하루를 보내고, 일요일에는 마찬가지로 늦게 일어나서 하루 종일 빈둥대다가 오후 늦게부터는 성당에 가서 성가대 활동을 하고 한 주를 마감한다. 월요일이 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라든지 그런 것은 특별히 없다. 주말이라고 뭐 삶이 색다르게 재미있다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들었다. 어렸을 때는 뭘해도 재밌고, 중간쯤에는 재미있는 것만 재미있으며, 나이가 들면 뭘해도 재미가 없다고 한다. 나는 어린 건 아닐테니 뭘해도 재밌는 나이는 아니겠지만, 아직은 재미있는 건 재미있을 나이인데, 지금 나는 뭘해도 재미가 없다. 삶이 무척 권태롭다.
브런치에 워낙 많은 이야기를 해 놔서 알 수 있겠지만, 한때는 우선은 삶을 지속하는 게 목표였을 만큼 힘들던 때가 있었다. 아내를 따라갔던 교회의 목사님께 도움을 요청했는데 결국엔 잘 안 되었다고 마지막으로 나온다고 인사를 드리자 그때 그 목사님께서 '우선 하루만 버텨. 매일 하루씩만 버텨'라고 말씀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상담을 받고, 병원을 갈 때도 당장은 긴 시선을 가지지 말고 그날 그날 하루하루를 버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 그래야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하루씩 하루씩을 버텨 냈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곰곰이 나에게 물어보게 된다. 과연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하루만 버텨 내야 할 만큼 힘든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책 읽는 것으로 비유를 들어보겠다. 한동안 너무 힘들 때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은 글자에만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영상이나 다른 매체에 비해 더 많은 집중력을 요한다. 영상을 보는 것처럼 쉽게 집중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난해를 돌아보면 12월 중순쯤부터는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적어도 올 3월 정도까지는 된다. 지금은 어떤가. 물론 아내와의 관계가 안정적이었을 때만큼 많은 책을 읽고 있지는 못하지만 지금 나는 책을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지난해처럼 200권 이상의 책을 읽진 못하겠지만 이대로 가면 올해에도 넉넉히 100권 이상의 책은 읽지 않을까 싶다. 우선,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나는 어느 정도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지금 내가 하루만 버텨야 할 정도의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건 아니다. 우선은 첫 문단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일주일에 두 차례씩 운동을 꾸준히 나가고 있다. 몇 년쯤 전에 집에 있다가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무얼까 잠깐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 순간 할 수 있었던 일로. TV 시청? 책 읽기? 일? 산책? 나는 당연히 산책이 내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게는 운동이 가장 부족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산책은 산보처럼 가볍게 걷는 게 아니라 정말 힘들여 2시간 가까이 걷는 것을 말한다. 그때에는 그래서 바로 옷을 차려 입고, 집 옆 개천으로 나가서 한강까지 다녀왔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 우선은 건강이 먼저이니 내게는 운동이 가장 필요하다. 요즘은 근력운동을 위주로 배우고 있으니 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게 재미있는 일인가 하면 그건 그렇지 않다. 처음에 운동을 등록할 때 왜 하려고 하느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대답했다. '살려고요.' 나는 특별히 식단이나 다른 운동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한 번 운동을 가면 개인지도가 끝나도, 10, 20분이라도 더하려고 오려고는 한다. 그때가 아니면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이라기엔 사람도 비교적 자주 만나는 편일 거다. 당연히 10년 전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약속이 줄었다. 당장 이번 주만 생각해 봐도... 아무런 약속이 없다. 어제는 그래서 갑자기 무척 쓸쓸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내 나이 또래에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나는 약속이 많은 편일 거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부터도 MBA 동문회 송년모임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예전만큼은 못하단 거다. 그런데... 이게 문제일까?
다행히도 운 좋게 다니는 병원마다 의사 선생님께서 정말 심혈을 기울여 진료를 해 주신다. '이렇게까진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마음의 상처 때문에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지난번엔 병원에서 상담을 하다가 내 삶의 본격적인 문제에 대해서 들여다보게 되었다.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싶나? 내가 원하는 건 무언가? 나에게 소원은 있나? 한 십수 년 전까지 나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정말 명확한 사람이었다. 하고 싶었던 일도 이루고 싶었던 꿈도 가고 싶었던 길도 다 명확했고 분명했다. 어쩌면 그래서 그때는 삶이 더 즐겁고 신났는지 모르겠다. 특히 나는 그때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유별난 사명감'을 부여받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들이 모두 없어져 버렸다. 그러고 보니 결혼도 그 뒤에 한 셈이다.
딱히 가지고 싶은 것도 없고, 이루고 싶은 꿈도 없으며, 하고 싶은 일도 없다. 물론 지금 회사에서 내게 부여한 일은 성실히 하려고 하지만,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닌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는 삶인데, 재미있고 신날 수가 있나. 그렇다고 매일 즐겁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나는 사람들을, 때로는 아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그 만남에서 깨닫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많은 즐거움을 느끼는 편인데 그 기회조차도 비할 데 없이 줄어버렸다. 그러니 삶이 재미없을 수밖에.
재미 타령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권하는 게 여행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물과 기름처럼 잘 맞지 않았던 나와 아내가 유일하게 잘 맞았던 부분이 비행기 타고 여행 가는 것이었다. 나는 공간에 따라 사람을 연상하는 능력이 엄청 뛰어난데 그래서 아내 생각이 날 것 같아서 도저히 공항에는 가지 못하겠다. 공항뿐만이 아니다. 실은 지난 봄에도 호남 광주에 있는 친구 집을 방문했었는데, '아, 예전에 아내와 같이 놀러와서 친구 집의 저 방에서 같이 잤었지' 하는 생각이 떠올라서 갑자기 무척 울적해졌던 생각이 난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도 여행 가는 건 좋아했었지만, 졸지에 나의 가장 좋았던 선택지마저 잃어버린 셈이다.
내 삶에 재미가 없었던 것에 아내 탓을 해 본 적 없고, 그래서 이혼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아내는 분명히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내가 그런 부분을 충족시켜 주지는 못했다는 것은 명확하단 생각이 든다. 심지어 가끔씩 나는 템플스테이를 떠나고는 했었다. 그것도 새로운 여행이자 자극이 될 수 있었을테니까. 그런데 아내는 독실한 개신교도여서 템플스테이에 동반한 적은 없었고, 지방 여행을 가서 절을 방문해도 시큰둥한 편이었다.
아내도 말은 하지 않았어도 내 삶이 권태롭다는 걸, 특별히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나도 재미가 없는데 자신도 재미없다는 걸 느끼지 않았을까. 물론 내 삶은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렇듯 결혼 초에는 처음 해 보는 결혼생활에서 오는 재미라는 것이 또 몇 년간은 유지되게 마련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버텨 왔지만, 영원히 그렇게 살 수는 없었던 거다.
나도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재미있게 사는 건 아니란 걸. 나처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아니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가운데에서도 여유조차 없어서 꾸역꾸역 그저 일상이 반복될 뿐인 삶을 사는 사람이 더 많을 거다. 그러나 나는 좋아하는 책도 읽고,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보며,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고, 가끔씩은 가고 싶었던 곳에도 가는 삶을 사니 그들과 비교하면 얼마나 낫나.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자기 위안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사람마다 느끼는 재미의 역치가 다르듯,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과 지금의 삶을 또 생각하게 되는 까닭이다.
얼마 전 올해에 가장 큰 보름달이 떴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달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소원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내 삶이 재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당장 엄청난 것이 '뿅' 하고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는 해서도 안 되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작은 것이라도, 작은 것부터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해 보고 싶은 일, 가지고 싶은 것. 작은 것 하나부터 새로운 것도 해 보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면서 조금씩 나아간다면 권태로운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부디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덜 권태로웠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