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귤나무 Jun 30. 2021

낭비하고만 싶은 내 시간들에 대하여

나는 늘 내 시간이 아까웠다. 항상 날을 세우고 누가 내 시간을 침범하려 들면 몇 보 뒷걸음질 쳐서 선을 그었다. 생산적이거나 결과물이 남을 만한 것, 성장이나 내 마음의 진전과 관련이 없는 시간들은 낭비하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러던 내가 낭비하지 않고 모아 둔 시간들은 다 어디로 향했나를 왜 돌아보게 되었냐면


몇 주전에 엄마 앞에서 엉엉 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균열과 멀리서만 봐왔던 불행이 늘 나만은 피해 가겠거니 생각해 왔던 것이 어리숙한 교만이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내가 낭비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나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내게 중요했던 것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왜냐면 그 시간들에 비해 보잘것없다고 여겨져 인색하게만 굴었던 순간들이 기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령, 밤에는 홀로 칼국수 집을 보셨던 엄마의 도와달라는 전화를 종종 받았는데 그게 그렇게 귀찮고 싫었다. 칼국수 집에서 보낼 시간이면, 더 생산적인 일 아니면 생산적인 일을 할 준비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내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시간이란 게 있는 것인데- 내가 우물쭈물하면 엄마는 빨리나와- 하고 툭 끊어 버렸다. 그러면 나는 씩씩 거리며 집에서 5분 거리였던 엄마의 가게로 향하며 스스로가 닳기라도 하는 것처럼 억울해했다. 엄마가 버는 돈으로 자랐으면서, 그 돈으로 먹고 마시고 생활했으면서도 그랬다.


오늘, 혼자 외출을 했다가 허기가 져서 들어간 식당은 작은 국숫집이었고, 아주머니 혼자 가게를 보셨다. 그 가게 안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사라진 엄마의 칼국수 집 생각이 났다. 우동를 먹는데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우리 엄마 가게 안의 공기와 늘 허기진 몸을 이끌고 갈 공간이 있었던 것, 그리고 엄마와 함께 일할 때의 즐거움들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우동에 고춧가루를 엄청 넣었더니 속이 아팠다.


어쩌면 내가 낭비라고 생각했던 시간들만이 내게 가치 있는 시간들 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낭비하지 않은 모든 시간을 끌어 모아 쏟아부었던,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되짚어보게 됐다.


잘한다고 인정받기 위해 연습했던 시간, 그 안에서 섞이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마음들, 미숙하다고 느낄 때 올라오는 집착, 비교, 열등감들. 사랑에서 시작해서 아집으로 치달았던 나의 20대를 통째로 집어삼킨 나의 꿈, 그 시간들을 전부 내어 주고도 만져보지 못한 것들.

그리고 미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안간힘들. 타인에게 에너지를 다 쓰고 집에 돌아와서는 잔여 감정들을 흩뿌렸다.


이 것들을 위해 희생되어야 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온전한 마음과 시간들에 대해 나는 내 마음에 아주 깊이, 만약 내 마음이 종이라면 그 종이가 찢어질 만큼 힘주어 세게 적고 있다. 시간을 마음껏 낭비하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작가의 이전글 나무에게 받은 불가해한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