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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일구 Oct 26. 2024

최고의 음색과 최고의 음색이 만날 때

24. 10. 25 빈 필하모닉 내한공연 리뷰

빈 필과 조성진의 음색


내가 조성진의 연주와 음반을 끊임없이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단연 '음색'이다. 헨델의 소박한 미뉴에트도, 드뷔시가 노래하는 기쁨의 섬도, 젊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3번도 조성진의 연주로 듣기 전에는 매력을 딱히 못 느낀 곡이었다. 그러나 조성진의 해석 위에서 빛나는 피아노 음색은 무한재생을 부추겼다.


빈 필하모닉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론 세계 최고의 악단이지만 빈 필하모닉은 기복이 꽤 많은 편이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만큼 악단 내부적으로 변화도 많다. 그런데 빈 필하모닉은 기회가 될 때마다 무조건 듣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음색 때문이다. 'Wiener Klangstil'이라고 부르는 빈의 음향은 정말 특별하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까지도 그들은 오랫동안 이 사운드를 수호해 왔다.


넬손스와 조성진의 베토벤


넬손스는 조성진을 좋아한다. 음악가로서도, 인간적으로도. 세계 최고의 커리어를 달리는 마에스트로가 선호하는 협연자인 것이다. 넬손스는 4곳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조성진은 이 4곳에서 모두 넬손스와 호흡을 맞췄다. 오케스트라를 바꿔가면서 두 사람은 음악으로 뜨겁게 만나고 있다.


오늘 10월 25일 예술의전당에서의 연주는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며, 새로운 차원을 선보인 시간이었다. 1악장 전주가 나올 때 바로 들려온 것은 오케스트라의 다층적인 음색이었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교차하는 입체적인 사운드가 일품이었다. 피아노 솔로가 나오자 조성진은 그 다채로운 음색을 그대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예리하면서도 자유로웠다. 넬손스는 조성진의 생각에 조목조목 동의한다는 듯 재빠르게 오케스트라 음색을 조율했다. 오케스트라가 먼저 배경을 마련해 주면, 그 위로 피아노가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지휘자와 협연자의 호흡이 돋보였다. 카덴차에서 보여준 연주는 조성진의 성장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분명 이전의 조성진보다 더 깊고 짙었다.


2악장에서는 반대로 피아노가 깊은 음색과 감정을 먼저 드러냈다. 목관 주자들은 피아노의 음색과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며 연주했다. 피콜로 주자로 유명한 볼프강 슈미트가 1부에서 플루트 수석을 맡았는데 멋진 연주를 들려줬다. 2악장에서 그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관객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연주에 몰입했다. 3악장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가장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클라리넷, 팀파니는 대비가 큰 악상차에도 피아노와 호흡을 매끄럽게 맞추어 갔다. 피아노가 만들어낸 역동성을 따라가지 못한 오보에의 밋밋한 연주는 다소 아쉬웠다. 오케스트라의 음량이 충분히 큰데도 민첩한 악상 조절로 피아노가 또렷이 잘 들렸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바삐 오가며 음색의 향연이 펼쳐졌다.


여러모로 2023년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에는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가 형성한 두터운 벽 안에 협연자가 가둬진 느낌이 들었다. 다 완벽한데 왠지 모르게 답답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번 빈 필하모닉과 조성진의 연주는 양쪽이 다 자유로웠다. 공간이 충분한 곳에서 재밌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미처 보여주지 못한 음색을 앙코르 연주로 들려준 점도 너무 좋았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듯,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듯한 음색과 가만히 듣고 있던 첼로 수석이 깜짝 놀랄 만큼 선명한 악상 대비까지.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내가 경험한 최고의 영웅의 생애


두어 번 눈물이 핑 돌았다. 얼핏 카라얀이 보이기도 했고, 스승 얀손스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음악의 스케일 측면에서는 가장 거대했다. 공연 전 넬손스 지휘자를 만나 물어보니 빈에서 딱 한 번의 리허설을 했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이번에 빈 필하모닉은 엄청난 분량의 프로그램을 들고 초대형 아시아 투어에 나섰다. 잠시 나열해 보자.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말러 교향곡 5번,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 드보르작 7번, 몇 개의 앙코르들. 그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곡은 단연,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가 아닐까. 수많은 명반과 레퍼런스를 보유한 걸작이니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다.


넬손스는 지휘봉을 들면 거침이 없다. 누구도 하지 않은 해석을 들고 와서 신나고 확실하게 지휘한다. 다소 위험부담이 있는 해석이면 어떠하리. 악기가 빈 필인데. 초반에는 조금 어수선한 느낌이 있었다. 현악기보다 금관악기가 조금씩 늦으면서 타이밍 오차가 생겼다. 다행히 곡이 진행되면서 이 타이밍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었고, 각 파트의 소리는 점점 자신 있게 뻗어갔다. 각 악기의 연주자들은 아주 매력적인 음색을 들려주었다. 조금 모호한 표현이지만 넬손스는 악기 간의 타이밍이나 각을 맞추는 식의 지휘가 아니라 악기 간의 캐릭터를 조합하는 지휘자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2악장에서 플루트 파트를 비롯한 목관악기의 연주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연주를 보여줬다. 플루트 수석은 23일 연주에 이어 25일에도 칼-하인츠 쉿츠(Karl-Heinz Schütz)가 맡았다. 의심의 여지없이 엠마누엘 파위와 더불에 세계 최고의 플루트 연주자이다. 악장이 전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지만 중간 지점에 있는 쉿츠가 관파트 전체를 동작과 소리로 영웅처럼 리드해 나갔다. 나올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던 클라리넷과 바순, 현악기와 대화를 주고받는 잉글리시 호른의 고즈넉하면서 사색적인 연주도 일품이었다. 육중한 음향을 앞뒤로 두고도 중심을 잡아내는 목관파트 전체의 힘이 대단했다.


악장의 경우 사실 호네크나 다나일로바의 솔로가 궁금하긴 했다. 이날의 악장은 슈토이데(Volkhard Steude)였다. 그런데 그에게서 빈 사운드의 절정을 들을 수 있었다. 단정하고 확신에 찬 연주였는데, 따뜻한 음색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호른은 야네치치(Ronald Janezic)가 연주했는데, 호른이 가진 양쪽 면모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는 마지막에 가서 바이올린 솔로와 함께 용맹한 영웅이 자신만의 고독한 세계에 이르는 과정을 뭉근하게 그려냈다.


전반적으로 현악기와 금관악기의 표현 폭과 음색이 무궁무진했다. 역시 각자가 마에스트로라 불리는 빈 필하모닉 다웠다. 넬손스는 모두의 개성과 능력을 존중한다는 듯 연주자를 풀어두는 편이다. 이렇게 해서 나오는 장점과 단점은 넬손스 지휘자에 대한 호불호가 된다. 나는 압도적으로 '호'쪽이다. 영웅의 생애는 특히 각자의 목소리와 존재감이 강력해야 하며, 그 상태로 어우러질 때 폭발력을 갖는다. 느리고 서정적인 부분도 꽉 잡고 가기보다는 음악의 흐름과 연주자들의 루바토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랑거렸다.


또 넬손스는 마치 브루크너의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처럼 음악을 처리할 때가 많았다. 공백을 두어서 여음이 홀 전체에 충분히 울리는 것을 허락한 후, 그 고요한 틈을 뚫고 다시금 음악을 시작하는 것이다. 특히 영웅의 치열한 전장에서 영웅의 평화로운 업적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 이례적으로 커다란 공백을 두었다. 공연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이런 순간에 이날 현장의 관객들은 철저히 그 침묵을 지켜주었다. 덕분에 공연이 모두 끝난 후 10여 초의 정적 또한 모두가 함께 누렸다. 


라이브 공연은 흠이 많다. 음정이 불안하고, 타이밍이 엇갈리고, 지휘자나 연주자의 실수도 잦다. 게다가 자리 선택에 따른 편차가 아주 심한 것이 공연장이다. 그런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황홀한 순간들은 공연장 안에서 나온다. 그런 순간들은 공연장의 마법처럼, 가슴 깊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울지는 않으려고 한다. 계속 들어야 하니까. 내가 경험한 최고의 영웅의 생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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