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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Nov 03. 2022

가스라이팅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가스라이팅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가스등(Gas Light)>(1938)이란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가스라이팅은 가정, 학교, 연인 등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이뤄지게 된다.


회사는 가스라이팅을 잘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 그 존재는 꼭 팀장과 같이 상위 직급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직급과 무관하게 애초에 가스라이팅이 몸에 배어있는 인간 유형이 있다.


설득력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탕발림으로 사람을 홀린 뒤 자신의 출세 도구로 이용하는 인간들이 제법 있다. 처음에는 어떤 경우로든 상대에게 호감을 얻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갈수록 알 수 없는 갑을관계가 생기고, 그 관계가 형성되면 자연스레 가스라이팅은 시작된다.




대중의 관심 속 중심이 되고 싶었던 여성 팀원이 있었다. 세련된 외모와 자신감 넘치는 말투, 항상 풀메이크업에 자신을 늘 잘 꾸미고 다니는 모습에 많은 이들의 호감을 사곤 했다.


특히, 사람이 말을 했을 때 오버스럽다 싶을 만큼 리액션을 해주었는데, 아마도 그게 사람들의 호감을 사은 첫 번째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내게 그녀를 회사의 '스타'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회사에 적응해가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말을 건다.


스타: 어머 달하씨, 이전 회사가 대기업이었다면서요? 너무 멋있다~
나: 아.. 뭐 이름만 그렇죠 뭐. 일은 여기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배울 것도 많고.
스타: 어머 겸손하기까지! 달하씨, 우리 친하게 지내요. 그런 의미에서 저녁 어때요?


그렇게 점차 '스타'인 그녀와 가까워졌고 그녀가 나를 여기저기 소개해주다 보니 회사에 예상보다 빠르게 많은 적응을 해갔다. 늘 챙겨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팀장이 내게 맡긴 프로젝트에 대해 조언을 주겠다며 팀장의 성향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팀장은 A라 말했지만 사실은 B같은 것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거라고. 팀장과 그녀는 매우 가까웠기에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틀린 말은 안 하겠지.


예를 들면 팀장은 내게 김밥을 만들고 싶다 했는데, 그녀는 유부초밥을 더 선호하니 내게 유부초밥을 만들어 주면 더 참신해서 좋아할 거다 라는 식이었다. 그녀의 말이 맞겠지 하고 가져갔다가 호되게 혼나고 나와버렸다. 그녀는 어머, 김밥을 저렇게 좋아했었나? 하고는 정보를 하나 더 쌓아서 가져갔다.


서너 번 정도까지 나를 이용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나는 다행히 점점 그녀의 도구가 되어가는 것을 빠르게 인지했고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정보로써 유인가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녀 역시 서서히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 멀어지고 나서 그녀의 시야 밖에서 모두를 바라보니 나와 같이 당하는 동료들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팀장이 있었다. 하루는 팀장이 내게 회사에서 내려온 주요 프로젝트를 맡기려고 했는데, 소식을 들은 그녀가 팀장을 찾아가 회의실에서 펑펑 우는 장면이 목격됐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나는 모르지만, 다음 날 그 프로젝트의 PM이 그녀로 변경된 것으로 보면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렇게 그녀는 수차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팀장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고, 팀장은 그 악어의 눈물에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업무를 재분배하곤 했다.


그녀는 팀장 타이틀이 갖고 싶었다. 교묘하게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온갖 일들을 꾸몄다. 팀장보다 높은 직급의 상사가 관심 있는 일만 골라한다던가 다른 팀원이 했던 일을 자신이 한 것처럼 꾸며 보고하는 등. 그러나 늘 그 앞에는 실력 있고 뛰어난 팀장이 우직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팀장이 되고 싶던 그녀는 이 회사는 올라가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조금 더 규모는 작지만 ‘팀장’ 직급을 준다는 다른 회사로 단번에 이동했다. 팀장은 한순간에 그토록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했던 팀원을 잃었다. 그것이 가스라이팅이었는지 여전히 인지하지 못한 채.






정말 믿고 따르던 팀장님이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내게 팀장님은 내게 오래도록 함께 일하자고, 회사에서 만났지만 인연 소중히 이어가며 즐겁게 일해보자고 이야기를 하셨었다.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팀장이 맞나 싶을 만큼 소탈하고 아빠 같은 느낌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그런 팀장님이 처음부터 참 좋았다. 그분께서 내게 맡긴 프로젝트라면 그 일이 무엇이든 불철주야 뛰었고, 어떤 역할을 맡기던 최선을 다해 일했다. 정말이지, 죽을힘 다해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간은 흘렀고 스스로 발전이 없는 기분이 들더라. 늘 상급자로부터 받는 명령을 수행할 뿐이었다. 스스로 좀 더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팀장님께 의논드리고 싶다며 면담 신청을 했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팀장님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다.


팀장님께 이런 내 사정을 알리면 내게 좀 더 성취감 있는 일을 배정해주시겠지 내심 기대를 했다. 그런데, 대뜸 일이 일이 여유롭냐고 화를 내는 것이었다. 갑작스레 영문도 모르는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지금 대화가 어려울 것 같으니 나가라고 소리쳐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나의 발언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대체 왜 그렇게 그는 화가 났을까.


팀장님은 이내 미안했는지 내게 자신이 잠시 슬럼프가 찾아온 것 같다며 맛있는 저녁이나 먹고 풀자며 나를 인도했다. 그래, 내가 아직은 그에게 검증이 안됐나 보다, 때가 아니구나 생각하고 팀장님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렇게 시간은 다시 흘렀다.


하루가 모자랄 만큼 수많은 회의와 속이 꽉 막힌듯한 타 팀과의 전쟁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시간은 그렇게 계속 흘렀고 회식자리가 생겨 술도 한 잔 했겠다, 팀장님께 나의 힘든 마음을 다시 조심스레 표현했다. 그랬더니 팀장님은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너만 힘든 거 아니라고, 다 힘들다며 또다시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또 무엇 때문에 화가 났을까.


다음 날, 자신이 좀 취해서 화를 냈던 것 같다고 미안하다며 다시 잘해보자고 열의를 다지자고 했다. 처음에는 정말 단지 술로 인한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술이 아니어도 사장님께 깨지고 온 날이나 자신의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항상 나에게 화를 내는 일이 반복됐다. 그리고는 더 많은 일이 내게 해내라고 명했다.


정말 놀랍게도 그럼에도 괜찮았다. 팀장님이 나를 신뢰하고 믿으니 내게 이렇게 일을 맡기는 거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고, 어느 날 갑자기 생전 없던 하혈을 했다. 너무 놀라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확인해보았더니 특별한 문제는 없는데 수면은 잘하냐고 묻더라. 그제야 돌아보니 내 평균 수면시간은 3~4시간이었다.


물리적으로 잠이 부족했고 정신도 피폐했다. 그럼에도 팀장님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기에 해야 될 일을 모두 마치고 면담 신청을 했다. 몸도 안 좋고 너무 힘이 든다고, 물리적으로 일이 너무 많아서 좀 덜어내고 싶다고. 누군가는 과로로 죽는다고 하는데, 내가 꼭 그 꼴이 될 것 같다고.


그랬더니 팀장님은 그제야 살며시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고 네가 해내야 될 역할이 있는데 그렇게 나약해서 어쩌냐고, 어차피 너는 내 곁에서 평생 일할 거니 체력을 키우라고.


그 얘기를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장 가깝고 의지했던 나의 팀장은 내가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 맞았을까, 돌아보게 됐다. 일이 많아서 죽기 직전까지 간다고 해서야 미소를 짓는 그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루를, 일주일을 그렇게 몇 달의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나는 팀장님께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회사를 떠나오고 나서야 몸은 다시 건강해졌고, 알 수 없이 늘 경직되어있던 내 몸은 이내 편안해졌다. 정상적인 사고를 했고 수면시간은 늘었다. 새로 사는 기분마저 들었다.


여전히 팀장님께 고마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온전하게 가스라이팅만 당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어쩌면 예상보다 깊게 당한 걸 지도 모른다) 당시 상황을 돌아보니 그렇다.


그것은, 가스라이팅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는 것은 내가 상대를 이해하며 생기는 당연한 일 같지만, 사실은 이해보다는 희생일 확률이 훨씬 높다. 나의 뼈와 살을 깎아가며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에 의해서 말이다.


멀어져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이해를(희생을) 하고 있다면 돌아봐야 한다. 나는 나로서 존재해야 하지 상대에 대한 의존성이 깊어서는 안 된다. 설령 그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존경하는 사람이라 해도 깊어진 의존성은 끊어내야만 한다. 관계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누군가의 존재가 내게 힘들고 버겁다면 과감하게 눈 질끈 감고 관계를 내려놓아야 된다. 물론, 사람과의 관계는 너무 소중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 소중함을 서로 느끼게 해 주고, 존중해야 하는 게 맞다. 관계를 빌미로 과몰입을 강요하거나 과도한 부담을 준다면 그것은 사실 가스라이팅일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돌이켜보고 반성한다. 이토록 경계하는 나는 과연 안 그랬을까? 부끄럽게도 돌아보면 나는 누군가를 가스라이팅하지 않았다고 확신을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늘 나의 태도를 상기시키곤 한다.


소중한 관계는 그 자체로 소중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도 나도 서로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로 인해 나는 지금 온전하게 기쁜지, 행복한지. 불편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상대에게 그 불편한 감정을 건네보자. 돌아오는 대답에서 나는 상황을 인지할 수 있다.


그것은 가스라이팅인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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